분자의 세상으로 본 나의 존재
나는 매일 무엇인가를 먹는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때로는 커피나 와인을 즐긴다. 입을 통해 들어온 음식은 내 안에서 부서지고, 녹고, 분해된다. 그저 외부에서 온 물질일 뿐이었던 것들이 내 몸의 세포 속으로 들어와 나의 일부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너무도 당연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가끔, 나는 문득 멈춰 서서 생각한다.
‘지금 내 몸을 이루고 있는 이 분자들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내 피부를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 혈액 속을 흐르는 산소, 뇌 속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전해질들. 그 모든 것은 한때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던, 어딘가에 존재하던 물질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먹고, 마시고, 들이쉬었고, 지금 이 순간 내 몸을 이루고 있다. 그토록 낯설던 그것들과, 지금은 이토록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물리학자 슈뢰딩거는 물 한 컵에 있는 분자들에 모두 표지를 붙여 바다에 흘려보냈다고 상상해보자고 했다. 그 물을 7대양—북태평양, 남태평양, 북대서양, 남대서양, 인도양, 북극해, 남극해—전체에 완전히 골고루 퍼지게 한 다음, 지구 어디서든 바닷물 한 컵을 다시 떠올리면, 평균적으로 그 안에서 표지된 분자 약 100개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나를 전율하게 만든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 내가 지금 마시는 한 모금의 물에는, 수천 년 전 공자나 예수가 마신 물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내 몸을 구성하는 분자는 과거에 별이 폭발하면서 뿌려진 먼지였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 분자 하나하나는 너무 작아서, 우리가 사용하는 단위인 센티미터나 밀리미터로는 상상조차 어렵다. 한 개의 물 분자는 지름이 약 0.275 나노미터, 즉 0.000000275 밀리미터에 불과하다. 인간 몸 속에 있는 원자의 수는 약 7×10²⁷개, 즉 7 옥틸리언 개 정도다.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느낄 수 없을 만큼 작다.
그러나 이 작디작은 입자들이 모여, ‘나’라는 존재를 이루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내가 느끼는 감각—통증, 온기, 배고픔, 사랑까지도—결국은 이 분자들이 만든 반응의 총합이라는 것이다. 무언가에 부딪혀 다치면, 그건 실은 원자들이 직접 부딪힌 것이 아니라, 전자기적 반발력 때문이다. ‘닿는다’는 감각조차, 실은 닿지 않음에서 오는 전자기장의 응답일 수 있다. 이처럼 나의 감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미세한 움직임 속에서 생성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계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나’라는 존재는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분자와 에너지를 교환하며 만들어지는 하나의 ‘열림’이다. 내가 마신 물, 내가 먹은 음식, 내가 들이쉰 공기는 곧 ‘나’가 된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몸이 해체되어 흙이 되고, 공기가 되며, 다른 존재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이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관계를 맺는다.
이 작은 분자의 세계에서 나는 결코 작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그 모든 순환과 연결 위에, ‘의식’이라는 경이로운 형식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분자들의 움직임을 느끼고, 의미를 부여하고, 감사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존재의 특권이며, 인간됨의 신비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무수한 분자들의 춤 속에서 살아 있다. 그 춤은 보이지 않지만, 내 안에서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그 춤 위에 놓인 의식이고, 관계이고, 감각이며, 생명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존재’이다.
✨ 보이지 않는 분자들의 춤 위에, 나는 존재한다.
이 글은 <하늘은 돔이 아니다 – 일상의 틈에서 만난 생각들>의 연재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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