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수지 Jan 18. 2024

<서평> 사는 동안 행복하게 - 손서영 지음

자연과 동물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삶

작년 11월 내과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본인이 책을 썼는데 내게 한 권 보내려 한다고 했다.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 책을 보내준 것에 대한 답례로 감상평을 쓰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에서야 책을 폈고,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늘 그렇지만 어떤 책을 읽게 되는 일은 인력만으로는 안 된다(핑계 아님).


고마운 손글씨


옛날이야기를 좀 하자면, 내가 대학병원 팀장으로 있을 때 갓 들어온 인턴으로 서영이를 만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수롭지 않은 차이인데, 그때는 3년의 차이가 꽤 컸고, 아마도 나는 그에게 꽤 어려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책을 보면 서영이는 고된 대학원 시절에 굽 높은 신발을 포기하지 않아 ‘곧 죽어도 하이힐’이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p123). 내 기억 속 서영이는 뭐든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때가 되어 병원을 떠났고, 그 뒤로 누가 졸업하고 어디에 취직했다는 소식만 간간이 들려왔다. 서영이의 소식은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마지막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시골에서 유기견과 함께 사는 수의사가 쓴 글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다시 ‘손서영’이라는 이름을 마주했다.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그가 서울에서 5시간 거리의 시골 과수원에서 유기견들과 함께 산다니, 그의 행보가 너무나 의외라서 놀라움과 반가움에 더해 걱정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YouTube에 올라온 영상은 나의 기우를 해소해 주었다. 넓은 초록색의 과수원에도 시선을 빼앗겼지만, 그곳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개들과 그들을 보살피며 즐겁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반가움이 한층 더해져 단숨에 전화를 걸 안부 인사를 나눴다. 통화 말미에 사는 곳에 한번 들리겠다고 했으나 아직까지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그러다 그의 책을 먼저 만나게 된 것이다.


내게 서영이는 인생의 한 때 알던 사람이지만, 많은 시간이 흐르기도 했고 작가이자 시골 수의사인 손서영은 모르는 사람과 진배없다. 그래서 알면서도, 잘 모르는 그의 책을 읽어가는 일은 긴장되면서도 설레는 시간이었다. 글은 그가 사는 곳의 환경만큼이나 고요하고, 평온했다. 사계절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눈여겨본 그의 시선이 글 속에 녹아있었고, 함께 하는 동물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 찐하게 동물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속세의 시선에 주의를 두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32마리의 개와 7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자연의 품 안에 살아서일까? 그의 삶은 충만하고 아름다웠다.


서영이는 수의사가 천직처럼 보였다. 어려서부터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남달랐고, 유년시절 병아리를 닭으로 키워내고 그런 반려닭을 안락사 한 이야기, 수의예과 때 날지 못하는 비둘기를 데려가 교수님께 진료를 받으려고 했던 일. 그 일로 학교에서 유명해졌다고 했는데, 그것이 ‘용기를 갖고 해야 하는 행동인지 몰랐고 그저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라는 담담한 설명을 읽고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너무 당연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쉽사리 당연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일을 그때부터 해왔던 모양이다. 그런 그이기에 수의학과 학생으로, 또 수의사가 되어서 마주한 동물과 생명에 관한 불합리한 상황들이 그를 영국으로 떠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책 중간중간 실린 사진들을 통해 지금 지내는 곳을 엿볼 수 있었다. 푸르른 자연환경에 감탄하고, 밝은 애들 표정에 덩달아 웃음이 나고, 목줄이나 하네스 없이 서로 어울려 산책하는 모습에 몹시 부러워하기도 했다. 산책 길 위의 그들은 마치 이러쿵저러쿵하며 대화도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자유로워 보이는 개들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요즘은 길에서 목줄 없는 개를 만나는 일도 드물지만, 만나게 되면 몹시 당황스러운 지경이다. 찰나에 집을 나온 건 아닐까? 또는 배고픈 떠돌이 들개로 공격성이 있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게 된다. 평범한 도시의 개들은 어딘가에 묶여있어야 하는 것이 숙명이 된 것이다. 그래서 사진 속 그들이 더더욱 진짜 ‘사는 것’처럼 보였다. 더불어 그들과 함께 하는 서영이도 진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책에서 인용된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삶처럼 말이다. 자연과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주는 모양이다.


그가 32마리의 개와 7마리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도, 때때로 봉사활동을 간다는 사실에는 존경심이 들었다. 나는 고작 강아지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와 살면서도 이따금 혼자만의 휴식이 필요하다며 징징거리는데 말이다. 그런 그에게도 보호소는 혼란스러운 곳이었다. 열악한 환경에 마음이 아프고, 데려와야 할 것 같은 아이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잔인하기 때문이다. 서영이는 그런 사실들을 외면하지 않고 두려움을 마주하며 봉사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그에 대한 이유 역시 단순하고 명쾌하다. - ‘내가 그 아이들을 모두 품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깨끗한 물과 밥을 챙겨주고, 간식을 주는 일은 할 수 있다.’ (p.201) - 서영이 같은 수의사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 부끄러운 마음 들었다.


서영이와 나는 한 때 목표가 같았다. ‘실력 있는 수의사가 되어서 좋은 병원에서 안정적인 급여를 받으며 대체 불가능한 수의사로 자리 잡는 것’ (p.211) 나는 여전히 그 목표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고 서영이는 다른 길을 택했다. 함께 사는 아이들이 서영이를 다른 길로 인도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높은 수준의 의료를 지향하며 이를 위해서 고가의 비용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서영이는 의료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음지의 동물들을 위해서 비용을 내려 병원의 문턱을 낮추었다. 기술력 높은 의료도 중요하지만, 보편적 의료의 혜택이 다수에게 돌아가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병원이 날로 번창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최종 감상을 말하자면,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는 수의사로서, 보호자로서 그의 역할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고, 자기 앞의 일들부터 차근차근해나가면서 세상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그의 삶을 열렬히 응원한다.


배꽃이 흐드러질 때쯤이 좋을까, 감나무와 배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때가 좋을까?  언젠가 그가 사는 곳에 방문해야겠다. 비비, 파이도 가면 좋아하려나?


작가의 이전글 [서평]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