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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수지 Feb 09. 2023

반려동물 간병의 고단함 1

처방식 먹이기 너무 힘들어요

 

반려동물 간병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다. '간병'이라는 단어를 반려동물 뒤에 붙여서 낯설 뿐, 심각한 병이 아니어도 안 아프게 돌보는 모든 일이 간병에 들어간다. “나만 없어 댕댕이, 나만 없어 고영희”란 철 지난 유행어처럼 이미 많은 인구가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있고,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기에 머지않아 익숙해질 것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반려동물과의 시간 한편에는 그들의 질병과 노화가 자리 잡고 있고, 필수적으로 간병의 시간이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려동물 간병이라 함은 말 그대로 아픈 반려동물을 곁에서 돌보는 일이다. 단순하게 병원에 데려가고 약을 먹이는 일에서부터, 위생적인 관리와 질병에 따른 식이 관리와 체중 관리, 운동 제한, 재활 운동까지 포함하는 꽤 넓은 영역의 일이다. 사람 간병인이 하는 대부분의 일을 해야 하고, 환자가 얼마나 아픈지, 어떤 걸 원하지는 알 수 없는 답답함과 막중한 책임감까지 더해져 사람을 간병하는 것보다 감정적으로 더 힘들 수 있다.


1인 가구라면 더 어렵다. 사람의 경우 간병인을 고용할 수도 있지만 반려동물의 경우는 다른 손을 빌리기가 어렵다. 대신할 인력을 구할 수 없고, 구했다고 해도 아픈 반려동물이 낯선 손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경련 때문에 10년 넘게 하루 두 번 약을 먹이던 한 보호자는 다른 사람이 약을 먹일 수가 없어 1박 2일 여행조차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중증 환자의 경우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반려동물 간병에 전념하는 보호자도 종종 있다. 거기다 우리의 피간병 동물은 어디가 아픈지 말하지 못하며, 질병 관리를 위해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고, 질병에 대한 치료 의지도 크게 없어 보이며, 약을 먹이려는 우리를 피해 도망다니고 물기도 하며, 입에 안 맞는 처방식은 냄새만 맡고 돌아서는 냉정함을 가지고 있어 보호자를 속상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보호자로서 이 역할 역시 잘 수행해야 한다.


간병에 많은 영역이 있지만 가장 기본이면서도 어려운 관리가 식이 문제이다. 그동안의 식습관과 관련성이 크기 때문에 바로 바꾸기가 어렵다. 사람 환자처럼 맛이 없어도 몸에 좋으니 참고 먹거나 회복을 위해 억지로 한술 뜨는 일은 없다.


꽤 오래전에 본 환자 중에 하루에 **치킨 한 마리가 주식인 개가 있었다(꼭 ** 브랜드 치킨만 먹는다고 했다). 식욕 부진, 구토 증상을 보여 병원에 왔었고, 만성 신부전증으로 진단받았다. 고령이라 걱정을 했으나 다행히 며칠의 입원을 통해 수치가 개선되고 상태도 좋아졌지만 처방 사료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랜 기간 치킨이 주식이었으니 일반 사료도 아닌 신장 처방식이 입에 맞을 리가 없었다.

 

처방식을 처음 접하는 대부분의 환자가 비슷하다. 질병에서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입맛이 약간 돌아온 경우라도 처방식은 거부한다. 어지간히 맛이 없는 모양이다. 심장, 신장 처방식은 염분이 제한되어 있는데, 간을 전혀 하지 않은 음식을 계속 먹는다고 상상해보면 거부하는 이유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특정 질환을 장기적으로 관리할 때 식이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 원하는 것을 주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굶는 것보다 뭐라도 스스로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원하는 것만 먹다 보면 대개는 질환이 다시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맛있는 것을 조금 먹는 것보다는 회복기 동안 필요한 칼로리를 적절히 보충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동안 간식과 사람 음식을 주식으로 먹고, 사료를 간식처럼 먹은 경우에는 이 과정이 특히 어렵다. 환자도 힘들지만, 이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보호자에게도 힘든 일이다. 그래서 식이 관리의 필요성을 보호자에게 반복해서 설명하고, 언젠가 잘 먹을 날이 있을 거라 위로하며,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다. 이는 전세계적인 경향인지 외국 전공 서적 자료에서 처방식을 안 먹으면, 한  끼 굶기면 먹는다는 다소 냉정한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이 내용에 힘입어 보호자에게 이 전쟁에서 물러서지 말고, 우리가 승리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우리는 보호자 아니던가!

 

한두 끼 굶어서 안 먹으면 그때부터 ‘강제 급여’라는 방법을 선택한다. 하루 필요량을 계산하여 정하고, 그 양을 강제로 먹이는 것이다. 고양이는 콧줄을 장착하여 먹이는 경우가 흔하고, 개의 경우는 입천장에 처방 캔을 발라주거나 물과 함께 갈아서 주사기로 먹인다. 가끔 숟가락으로 먹이는 게 편하다고 하는 보호자도 있다. 예전에는 처방 캔을 물과 섞어 믹서기에 갈아서 급여해야 했는데, 요새는 칼로리가 표기된 액상 사료들이 나와서 좀 더 수월하게 먹일 수 있게 되었다. 싫어하는 건 변함없다. 사료 회사에서 처방식의 기호성을 높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지만 간식을 이길 수는 없는 모양이다.

 

강제 급여를 시작하면 물리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더 큰 부분은 안 먹으려고 발버둥치는 애들을 보는 일이다. 며칠 해보고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도저히 못 하겠다, 그냥 먹고 싶어하는 거 주면 안 되냐, 무슨 사는 낙이 있겠냐 호소한다. 지난번 진료 때 설명한 내용들은 사라지고 없다. 답답함을 들어주고, 처음 입원했을 때 안 좋았던 상태를 상기시키고, 조금은 안정된 수치를 보여주면 어쩔 수 없이 다시 해보겠다며 씁쓸히 집으로 돌아간다. 왜 그 마음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이 고비만 넘으면 좀 더 나은 상황이 기다리고 있기에 단호하게 얘기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환자는 나이도 많고, 치킨이라는 강력한 음식에 길들여져 어떤 방식도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보호자는 강제 급여를 시작했다. 처방식을 물과 함께 갈아서 죽처럼 만든 뒤 큰 주사기를 준비하고, 신문지를 깔고 먹이면 반은 먹고 반은 뱉는다고 했다. 신문지를 까는 이유는 먹은 걸 뱉고 털고 해서 주변이 난리가 나기 때문이라면서 밥을 먹이는 데 한나절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보호자는 그렇게 6년을 보냈고, 환자는 신부전이 아니라 노화로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사료만 줘도 그릇을 싹 비우던 애들이 간식과 사람 음식에 눈을 뜨고 어느 순간 맛있는 것만 먹으려고 한다. 애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변화이다. 사람의 경우에는 편식이 좋지 않으니 고치려고 하지만 반려동물의 편식 습관에 대해서는 쉽게 용인하는 경우가 많다. 한우 아니면 귀신같이 알고 안 먹는다는 경우도 있었고, 비엔나소시지만 12년 먹은 환자도 본 적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주고 싶은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해 없던 병이 생기기도 하므로 예방 차원에서 어릴 때부터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보호자들이 식이에 대한 주도권을 뺏기지 않았으면 한다.

 

파이와 비비는 식사 루틴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치석 예방 껌을 하나씩 준다. 6년째 같은 껌을 먹는데도 질리지 않는지, 아침이면 어서 달라고 성화다. 점심 때는 사료를 준다. 사료는 하루 한 번 주고, 대부분은 주면 바로 먹는다. 가끔 양배추 삶은 게 있거나, 양상추, 사과, 토마토가 있으면 따로 조금씩 준다. 섞어 주는 게 습관이 되면 사료만 주는 경우 안 먹을 수 있어서 반드시 따로 급여한다. 아무리 좋은 사료라 해도 가공 식품이기에 신선 식품을 조금은 챙겨주려고 한다. 가끔 특식으로  닭 가슴살을 삶아주거나 삶은 계란을 주기도 한다.


퇴근하고 와서는 조금씩 다른 종류의 간식을 준다.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식탁에서 식사하다가 내가 먹던 음식을 나눠 주는 일은 결코 없다. 그래서 식사 시간에는 쿠션에 가만히 앉아 있다. 집에서 고기를 구워도 자기들 먹을 음식이 아니란 걸 알기에 관심이 없다(한 친구는 정녕 구운 고기 맛을 모르는 거냐며, 우리 집 애들이 불쌍하다고 했다). 이런 상태라서 사료가 바뀌어도 웬만하면(진짜 맛없는 거 빼고) 저항감 없이 먹는 편이다. 종종 애들이 사료를 안 먹는다고 시중에 나온 사료를 거의 다 돌아가며 먹여봤다는 보호자도 있는데, 사료가 문제가 아니라 대개는 다른 음식을 많이 먹어서 사료를 안 먹는 경우다. 그들은 사람들이 잠자리에 든 (자기에게 음식을 줄 사람이 없는) 야심한 밤에 허기를 달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그작 아그작 사료를 먹는다. 이것이 밤에만 사료를 먹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우리 애들이 처방식을 잘 먹을 것이라고 생각 하지는 않는다. 아파서 입맛이 없을 때 입에 당기는 음식을 먹고 싶은 건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하지만 내가 주는 음식을 거부하는 일 없이 적극적으로 먹는 습관이 배어 있기에 상대적으로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언젠가 파비앙이 질병이 생겨 자발적으로 먹는 것을 멈췄을 때 강제 급여를 해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 여느 보호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시간이 고통스럽겠지만, 묵묵히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긴 간병의 시간을 끝내고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보호자가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말했다.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보호자와 그들의 반려동물에게 응원의 힘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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