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 속에서 경험하는 자유
자유란 무엇일까? 말로 표현하기에 쉽지 않은 단어다. 한때 대한민국에서는 '욜로의 삶'이 유행이었다. 이왕 인생을 사는 것, 하루하루 즐기면서 사는 것이 진정으로 자유의 삶이라고 여겼다. 오늘만 즐기면서 살면 그게 바로 행복이라고 정의했다. 또 다른 현상도 존재한다. '돈이 많으면, 재물이 많으면, 아파트와 자동차가 있으면 행복하다'라는 인생의 공식은 지금도 계속 한국에서 유효한 공식이다. 재물이 많다. 재물이 많으면 이것저것 다할 수도, 다 가질 수도 있으니 결과적으로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자유인가? 자유는 그렇게 얻는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얻어야만 하는 것인가.
자유에 대한 에피소드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이것이 진정 자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우연히 나는 유튜브 채널에서 내가 좋아하는 배우 최강희 님의 이야기를 40분 동안 시청하게 되었다. 배우 최강희 님은 하나님을 만나 '사랑이 뭔지 깨달으셨다.'라고 고백하는 영상이었다. 그녀는 대중들에게 겉보기에는 귀엽고 밝은, 엉뚱 발랄하고 4차원 같은 매력이 통통 넘치는 이미지를 가졌지만, 마음속에는 우울감과 남모를 고민(왜 나는 연기가 늘지 않는가. 인생에서 죽음은 언제 다가오는가 등등)을 지니고 있었다. 밖에서는 사람들과 인간관계도 좋고 밝게 미소 짓고 즐겁게 지내다가도 집에 오면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술과 담배를 끊임없이 했다고 한다. 마음속 고통을 극복해보려고 했지만 무너지는 순간도 여러 번.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엄마와 함께 교회에 가서 여느 때처럼 예배를 드렸는데, 그전에 수천번 예배드렸을 동안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가 그날 그녀는 처음으로 하나님께 속삭였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녀는 그 예배에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다음부터 서서히 자신이 했던 '나쁜 짓'들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가 지은 죄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죄'와는 다른 의미일 수도 있다. 배우 최강희 님 안에 갇혀 있던 인생에 대한 물음표, 우울감, 불안감, 그리고 자책감이 그녀를 옥죄어오고 있었던 것이 그녀를 나쁜 짓을 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죄'라고 인식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다음부터 그 아픈 마음들을 천천히 하나씩 씻어내려가고 있었다고 본다.
그녀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 성경공부도 하고 새벽 기도도 매일 나가고 집사일도 열심히 했다. 지금도 여전히 배우일을 하면서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에 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 배우일을 쉬는 경우에는 일반인과 똑같이 아르바이트 설거지, 가사를 아무렇지 않게 도맡아 한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녀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이 드니 그저 놀랄 따름이다. 그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는 없으나 그 뜻은 어마어마한 것은 분명하다. 그녀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라고 했을 때는 고백은 진심처럼 느껴졌다.
2025년 8월 30일, 해파랑길 7코스를 시작했다. 사실 이날은 7코스는 2~3시간 정도만 걷고, 그 뒤로 8코스를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7코스는 총길이 17.9km, 소요시간 약 6시간이며, 난이도는 쉬운 아주 평이한 코스이다. 울산 남구에서 중구까지 이어지는 코스이며, 태화강 전망대에서 출발하여 십리대숲과 내 황교를 지나서 염포삼거리에 이르는 구간이다. 이번 코스가 좋은 이유는 바로 '평지에다가 산길을 걷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변길을 따라 걷다가 바다를 만나는 코스인데 길이 무난하게 되어 있어서 해파랑길 후기에서도 유일하게 칭찬(?)을 받고 있는 무난하고 쉬운 코스로 평가되어 있다.
아쉽게도 엄마와 나는 7코스를 7~8km 정도만 걷고 8코스로 바로 넘어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8코스에 내가 전부터 궁금했던 '대왕암' 바닷길을 얼른 걸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울산에 있는 태화강 전망대, 십리대숲길을 넘어섰다. 남경아파트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는 것부터 시작하여 염포삼거리에 이르는 구간까지를 7코스 목표로 두고 걷기 시작했다. 오전 9시가 넘어갔을 때, 그때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온 곳에서 더위가 들들 끓고 있는 듯한 경험을 또 겪어야만 했다. 1코스부터 7코스까지 매 순간순간마다 덥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지만 발걸음은 코스를 하나하나 완주하기 위한 해파랑길 시작점으로 늘 향해서 뚜벅뚜벅 가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이 끝없는 길을 걷는 것일까.
해파랑길에서 길을 걷다 보면 공사를 하고 있거나 엉뚱하게 막혀 있는 길들을 뜬금없이 경험하게 된다. 날씨도 더운데 그 길을 걷기 시작하면 '불편함과 짜증'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다시 가는 길을 멈추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면서 속삭인다. '이러한 과정도 곧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될 거야.'라고. 그리고 정말 그랬다.
우선 '해파랑길이 적혀있는 띠와 화살표'로 '누군가에게 배려받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길을 찾기가 애매할 때 해파랑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해놓는 띠와 화살표다. 물론 두루누리 앱 안에 있는 따라가기 버튼을 누르면 길을 안내해 주지만, 앱을 사용하지 않고 휴대폰을 잠시 꺼둔 채로 해파랑길을 걷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되도록 디지털을 멀리하고 걷는 것이 더 머리를 맑게 하기도 한다. 때로는 나는 걸을 때 한번 더 이 길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해파랑길 띠가 나무, 거리, 다리, 표지판 등에 걸려있는 띠들을 보면 왜인지 모르게 '안심'이 된다. 뭐랄까. 내가 가고 있는 길을 누군가가 함께 해준다고 해야 할까. 나 혼자 끙끙대며 걷는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괜히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움까지 느낀다.
또한 마음의 자유로움은 '누군가를 배려하는 잠시동안'에도 느낄 수 있다. 해파랑길을 걸으면 자전거 길과 보행길이 구분이 안될 정도의 길을 아주 오랫동안 걷게 되는 경험을 한다. 좁은 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든 걷는 사람이든 불편함은 누구나 느낄 것이다. 그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저 멀리서 오는 것을 본다. 보행길을 걷는 사람은 자전거가 편하게 지나가라고 길을 트여준다. 바이커분께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해 주신다. 별일도 아니지만 괜히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편해진다. 만약에 끝까지 길을 비켜주지도 않고 가만히 걷기만 했다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 또는 길을 잘 걷고 있는 사람 중에 한 명은 작은 것이라도 사고가 날 수도 있었을 거다.
7코스 시작할 때 나는 전처럼 복통을 살짝 경험했다. 나에게 있어서 복통은 또 다른 불편함이며 치명타이다. 평소에는 아르바이트에 집중하면 금세 멎어진다. 하지만 긴장이 풀어진 상태에서 생기는 복통은 다르다. 긴장을 서서히 풀고 해파랑길을 걸으면 복통이 한 번씩 생기는데 그때마다 무조건 화장실을 가야 한다. 아직 50코스 중에서 7코스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물을 좀 마셨다고 '복통'을 2~3번이나 경험했다. 20~30분쯤 걸었을까. 7코스 태화강이 끝을 보이고 있을 때였다. 마지막 쉼터가 우리 보고 쉬다 가라며 반기고 있었는데 그때 그곳에 '화장실'이 있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해파랑길 1코스부터 7코스까지 걷는 내내 '운이 좋은 경험'을 했다. 복통이나 배고픔 같은 위기의 순간에 화장실이나 편의점이 그때 딱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화장실과 편의점이 곳곳에 있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어느 외국인 유튜버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표현을 그냥 했다는 것보다도 극찬할 정도였다. 처음에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었는데 지금은 새삼 느끼는 중이다. 지금 한국이 정치가, 경제가, 미래가 암담하고 그래서 곧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있다고 전문가들, 교수들도 그 위기감을 느끼고 설명하지만, 나는 꼭 그렇지도 않다고 본다. 평소에 길거리나 건물들을 봐도 국민들을 위해 공공화장실 설치가 되어있고, 건물 어디서든 에어컨 기계 작동이 된다. 또한 가끔 가다가 마실 수 있는 음수대도 있으며, 편히 쉬라며 벤치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는 길을 보게 된다. 한국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배려심'과 '굳이 보답을 원하지 않는 쿨함'이 늘 가득 차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 그때마다 나는 다양한 불편함을 경험하면서도 동시에 소소하게 행복을 느낀다.
자유란 무엇일까.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인가. 배우 최강희 님은 하나님을 만난 이후, 자유를 느꼈다. 그녀는 그때부터 그의 자유와 첫사랑에 보답이라도 한 듯 하나님을 위해서 하루하루 열심히 생활을 해왔다.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목적 하나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하지만 그녀는 몇 년 뒤에 한 번 더 무너짐을 경험했다. 인생에 다양한 불편한 경험과 감정들을 느끼고 우울증에 걸려 또다시 나쁜 짓에 손을 댄 것이다. 그녀의 하루는 또다시 어둠으로 깊은 우울감으로 가득 찼다. 깊은 터널에 들어가고, 깊은 바닷속에 들어갈 때, 그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사랑과 자유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자유를 느끼는 또 다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파란 눈의 외국인 무량스님께서는 처음 숭산큰스님을 뵈었을 때 그의 제자가 되고, 동시에 스님이 되겠다는 다짐과 결정을 했던 순간이 있었다. 숭산큰스님은 미국 뉴이헤븐에 있는 선원에서 설법을 할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간의 삶은 의미도, 이유도,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여러분이 나, 나의, 나를 이라는 생각을 던져 내버린다면, 여러분은 엄청난 의미, 엄청난 이유를 얻고, 엄청난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무량스님께서는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되는가. 어떻게 하면 엄청난 인생에 자유를 얻게 되는가.
당신이 무엇을 하려고 할 때, 바로 그것만을 온전히 하십시오. 먹을 때는 먹고, 말을 할 때는 말을 하고, 걸을 때는 걷고, 운전할 때는 운전하고, 골프를 칠 때는 골프를 치고, 일을 할 때는 일을 하세요. 안과 밖이 하나가 되어 그것을 행하도록 하십시오.
이 말을 듣고 무량스님은 감동을 받고 바로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배우 최강희 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주는 자유로 인해서 열심히 예배 활동을 하는 것과 똑같은 맥락이다. 최강희 님은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정죄(죄를 묻는 것, 죄를 규정하는 것)를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어떤 방향으로 가시든지 그저 '어디를 가시나요, 왜 그러세요?'라고 묻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지도 않으며, 자신이 타인을 이끌기보다 타인의 말을 좀 더 귀를 기울여서 듣게 되었다. 그저 하나님이 어떤 선택을 하시든지 상관없이 그와 동행하고, 타인과 동행하고 있다.
진정한 자유란 어쩌면 특별한 게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 불편하더라도 '내가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그냥 하는 것. 너무 자신에 포커스를 두지 않고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최소한 꾸준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인간이 가져야 할 행복이고 자유이지 않을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자유를 존중해 주시는 사랑 같아요. 그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같아요. 하나님 안에 말씀대로 사는 불편한 삶이 굉장히 자유를 주고, 그게 정말 날마다 놀랍고, 그것이 내가 살아야 할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강희 배우가 말하는 '불편한 삶을 살면 자유를 얻는다.'는 말의 뜻은 사람마다 해석하기 나름일 것이다. 이 세상이 자신 의지대로 뜻대로 되지 않고, 계속해서 무너지고, 삶이 불안정하다는 느낌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밖에 타인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모습까지 우리는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불안정하고 불편한 삶 속에서 '내가 나를 위해, 타인을 위해, 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깨닫고 그것을 조금씩이라도 실천한다. 이것이 하루를 살더라도 엄청난 행복과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무엇을 소유하고 가짐으로써 느끼는 자유가 아니라.
최강희 그녀는 한때 하나님 앞에 무너졌지만 '여전히 놓지 않는 삶'이라는 힘이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한다고 했을 때 그녀가 다시 성경 공부를 한 것을 보면, 아직 그녀는 삶의 진리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가 무엇인지 계속 발견하고 싶어서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맨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처럼 '깨달음을 찾으려고, 발견하려고' 엄청 애쓰지 않고 있다. 하루하루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옆에, 예수님 옆에 존재하는 것을 늘 그림을 그리듯 상상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한다.
해파랑길 7코스가 끝났을 무렵, 다시 최강희 배우님의 얼굴과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녀의 환한 미소와 눈은 언제나 봐도 아름답다. 나에게는 너무나 예쁘고 멋진 배우이며 아름다운 인간이다. 어느 날 촬영장에서 그녀가 잠시 쉬고 있는데 하늘에서 어떤 '환상'을 보게 된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함께 계신 그 모습을. 그게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그녀는 '진짜'를 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녀는 그때 확신을 했다.
'아, 하나님께서는 나를 싫어하시는 게 아니었구나.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계셨구나.'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너무 만족스러운 미소로 그녀를 바라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