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6코스,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

마음이 흔들리면 해야 할 것들

by youlive


선한 외모과 달리 나는 안에 화가 많은 사람이다. 20대 초반, 분노가 많아 어떻게든 저항했던 모습도 수백 번 정도 될 것 같다. '참아야 해. 폭발하면 안 돼.' 다행히 화병이 나서 병원에 간 적은 없고, 한 번씩 타인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참았던 것만으로도 천만다행. 대학교 시절, 그때당시 혈기왕성한 청년들은 놀고 싶은 욕구는 강할 때, 반대로 이들은 '성공하거나 부자가 되고 싶은 욕구' 또한 폭발적으로 클 때였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랬다.


내면 한 곳에 늘 만연해 있는 긴장감, 불안감, 삶에 대한 불만족은 여전했지만 차라리 '돈을 벌면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다.'라는 신념 하나로 어쨌든 요동치는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 '취업'을 준비도 안 하고 바로 감행했다. 그만큼 돈 벌기가 수월하지 않은 미래가 불투명한 직장에 그냥 들어가 버린 것이다. 선택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벼가 고개를 늘 숙이는 것처럼 겸손하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배운다'라고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러면 내가 이때까지 악마의 기운처럼 계속 지니고 있던 '인생에 대한 불안감과 막연함'은 완전히 사그라들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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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하나님을 막 믿기 시작한 신도가 교회에 처음 들어갔을 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지. 매일 예배드리고, 이것저것 집회일도 돕고, 늘 하느님을,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이런 마음도 나에겐 있었다. 매달 실적을 내야 하는 회사지만 영업 부분이 있다는 것을 '오히려 알고 있는 채'로 일을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은 힘들다고 꺼려하는 일이었다. 내 주변 친구들은 나에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여기를 왜 왔어?'라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다를 거야.'하고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분명히 남과는 특별한 존재라고 나를 여겼다.


인생은 재미있다. 처음에는 일이 즐거워 아침 일찍 7시부터 나가서 밤 12시 이전까지 일했다. 하루가 빡빡하게 스케줄이 짜여있는 일정에 괜히 만족감을 느꼈다. 시간이 빨리 가는 것도 좋았다. 설렁설렁한 스케줄보다 빡빡한 게 훨씬 나에게 만족을 주었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다른 해야 할 일들이 없나'하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매달 들어오는 돈도 정기적으로 입금되는 것도 좋았고,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고 있는 회사 브랜드도 마음에 들었다. 일한 지 1년이 넘었을 때쯤, 회사는 영업압박을 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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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인생은 재미있다. 20대 초반, 삶에 대한 불안감과 불만족은 사라졌고, 분노도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몸은 무너지고 있었다. 이상했다. 점차적으로 몸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졸리지 않기 위해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다. 스트레스가 늘 끊임없이 있어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고 푹 잔 적도 없었다. 영업이 점점 갈수록 잘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일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일이 재미가 없었고, 일한 시간과 노력보다 성과가 좋지 않았을 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의심'이 나타났다.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그곳은 가지 말라고 만류했던 이유, 동료들도 여기가 오랫동안 일하기에는 좋은 곳도 아닌데 그토록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던 이유가 이해가 되었던 그날.


그때 나는 첫회사에서 첫 퇴사를 선택했다. 직장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자 예전에 있었던 불쑥 튀어나오는 예민함, 수면부족은 금세 사라졌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보내다 보니 스멀스멀 내 안에 있는 분노, 불만족, 불안감은 또 나왔다. 인생은 역시 나를 손쉽게 놓아주지 않는구나. 나에게 있어 내면에 축적되어 있는 불만족은 얼른 내가 다른 새 직장을 다시 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인생은 참 재미있다. 직장을 구한다고 해도, 돈을 다시 번다고 해도,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정서적 교감을 한다고 해도, 내 정신과 육체는 오히려 더 피폐해져 갔었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마음은 방황 그자체였다. 그렇게 퇴사만 3번 이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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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6코스를 가기 전에 궁금한 나머지 '6코스 후기들'을 쭉 읽어보았다. 힘들다는 부분을 생각하고 실제로 걸을 때, 여러 번 참으면서 걷는다면 이 또한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후기들의 내용은 이랬다. 읽고나서 걱정이 되었지만 그만큼 도전적인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힘들다. 간식이나 물 공급할 때가 없어 더욱 힘들었다."

"기피제로 샤워하듯이 뿌리고 다니는데도 결국 모기한테 물렸습니다."

"그래도 완주하니 욕은 나와도 할만했어요. 두 번 다시는 노노"

"안 그래도 운동부족인데 중간중간에 거짓말 안치고 진짜 울었어요."


그렇다. 해파랑길 6코스는 길이 15.7km, 소요시간 약 6시간 30분, 난이도는 어려움이다. 해파랑길 50코스 중에 어려움 난도가 있는 코스는 3개인데 그중에 하나가 6코스다. 덕하역을 출발해서 태화강전망대까지 구간. 덕하역->선암호수공원->울산대공원->솔마루길->태화강전망대까지를 크게 갈 곳이라고 정해두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거의 80~90% 이상이 '등산길'이라는 것. 바다를 보기가 어렵다는 것. 그것뿐인가. 물을 마실 수 있는 음수대도 딱 한 군데뿐이다. 산 속이라 편의점이나 식당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산을 끝도 없이 롤러코스터 타듯이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5년 8월 16일, 엄마와 나는 단단히 마음먹고 시작했다. 먼저 작은 산 '함월산'을 올랐다. 처음에는 수월했다. 예전에 산을 탔다는 것을 몸이 기억을 해서 그런지 계단이 많아도 쉽게 올라갔다가 내려갈 수 있었다. 물론 뜨거운 열기가 찜질방 온기처럼 나의 숨을 막아왔고 모기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도 좀 더 가면 '선암호수공원'에서 쉴 수 있어 그곳을 기대한 채로 함월산을 금방 완주했다. 선암호수공원에서 좀 쉬고 살살 걷다 보니 두 번째 산을 만났다. 다행히 함월산과 비슷한 난이도여서 나름 괜찮았다. '그래, 이 정도면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결같은 마음은 세상의 파도에 휘둘리지 않는 배와 같다.


역시 6코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렇게 공포가 시작이 되는 건가. 울산대공원에 진입할 때였다. 울산대공원이라서 공원길을 따라 걷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대공원은 따로 저 멀리 아래에 있었고, 산 쪽에 있는 솔마루길을 가는 것이었다. '솔마루길'이라고 하면 듣기에는 평이해 보인듯한 길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인 것을 그때 안 것이다. 그때부터였던가. 올라갔다가 평지를 걸었다가 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 길을 거짓말이 아니라 10번 정도는 반복해야 했다.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일. 불쑥불쑥 화도 나고, 이렇게 저렇게 마음이 시시때때로 흔들리고 있는데 성철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어떤 날은 기쁘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무겁다. 하지만 좋고 나쁨에 흔들리지 말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마음이 흔들릴수록 더 깊은 평정이 필요하다. 삶은 매일 바뀐다. 날씨처럼, 사람처럼, 기분도 시시때때로 변한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한 마음이 있다면, 그 삶은 더 깊고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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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도 끝이 없는 산길의 오르락 내리락의 반복이었다. 눈을 찡그린 채로 나무 사이사이를 비집고 밑으로 완전히 내려다보면 찻길이나 터널도로가 보였다. 찻길이 나오는 이 길이 왜 그렇게 반갑던지. 스트레스였던 쌩쌩 달리는 자동차 소리마저도 정겹게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잠깐 찻길 위에 있는 다리를 건널 뿐 산길은 계속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의 평정이 가능할까? 드디어 울산대공원은 벗어났지만 다른 작은 산들이 이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화강전망대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 험난하다니. 울산대공원에서 벗어나면 양궁장전망대-> 옥현전망대->삼호산->고래전망대까지 산길이 롤러코스터처럼 쭉 이어져있다. 아, 내 마음은 혼동 그 자체였다.


온몸에는 땀으로 샤워 중이고, 마실 물은 떨어져 가고, 그럴 때마다 산은 나더러 죽으라는 듯 더 험난해졌다. 엄마께서는 연세가 있으셔서 젊은 나만큼 체력이 되시지는 않지만 그래도 건강한 편이시다. 원래는 한 코스씩 걸을 때마다 각 코스의 장점을 말씀하시면서 걸으시는데 그날은 6코스가 보기보다 힘드셨는지 엄청 불만이 토로하셨다. 오를 때마다 '힘들다'는 말을 연발하신 것이다. 나도 욱하는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서로 싸울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보다 먼저 앞질러가거나, 엄마보다 멀리 떨어져 뒤늦게 가고는 했다. 순간 정신이 혼란스러워서 앱을 못 보고 가다가 길을 잃은뻔하기도 했지만. 다시 한 번 더, 성철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마음이 요동치면 세상이 불안해지고, 마음이 고요하면 세상도 평화롭다. 바깥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더더욱 마음을 안으로 다스려야 한다. 좋을 때 들뜨지 말고, 나쁠 때 주저앉지 마라.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는 지나가는 바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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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말씀이 맞다. 엄마와 내가 이 답답한 산속에서 부딪히고 싸우면 다음 코스에 영향을 줄 뿐만이 아니라, 다음번에 산길이 가득한 코스가 또 있을 때에도 똑같은 좋지 않은 상황이 또 벌어질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맞을까. 엄마도 나도 힘들어하고, 마실 물은 없고, 화장실도 없으며, 앉아서 쉴 곳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마음을 다스려보자. 이때는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 그저 놓여있는 그 길을 그저 그대로 걷는 마음,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중심을 놓지 않을 때, 진짜 평화가 찾아온다.


직장에서도 이렇게 수시로 내 마음을 평정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닐 수 있었을까. 솔직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일단 나는 뭔가에 좇으면서 직장에 다녔다. 성공을 위해, 돈을 위해, 자기 계발을 위해.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 욕심이나 화근이 되었나 보다. 직장을 다니는 1년의 시간도 안돼서 허무하게 나자빠지는 느낌을 받았으니. 그래서 앞으로도 직장을 다니다가 퇴사를 결정하게 된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좋을 때 들뜨지 않고, 나쁠 때 주저앉지 않는 마음은 어떤 노력을 해야 가능한 것인가. 해파랑길 6코스는 걷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고, 체력도 한계가 와서 자주 한숨이 나왔다.


산속을 걷다보면 깨닫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차라리 몸을 이렇게 막 쓰는 것'도 마음 평정에 괜찮은 것 같다는 점이다. 그렇게 나는 끝도 없이 몸을 힘들게 할 때, 한계점이 왔다는 생각이 들 때, 더 미친 듯이 산을 올랐다. 그리고 완전히 바닥 끝까지 쉬지 않고 내려갔다. 다행히도 곧 종점이 보였다.


마음의 평정을 위해 차라리 생각은 하지 말고 몸을 마구마구 쓴다는 것. 맞다. 지금 당장 내가 생각해 둔 방법은 이렇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마음에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내적 욕구까지 더 갈망하게 만든다. 차라리 산을 타는 것과 같이 몸을 정신없이 사용하니 오히려 마음에 중심이 잡히고 안정이 찾아왔다. 다행히 엄마와 크게 싸우지도 않고, 다 끝났을 때는 웃으면서, 해파랑길 6코스태화강 전망대까지 마무리를 했다.


성철스님 말씀처럼, 하나의 사건도, 하나의 마음도, 하루도 전부 지나가는 것이다. 언젠가 기억에만 남아있을 뿐, 아니 언젠간, 그 기억조차도 점차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마음의 평정을 한다면 그때 일을 재해석 할 수 있다. 그때는 그저 그런 일이었고, 그당시 나는 그저 존재했을 뿐,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여겨본다.


언젠가는 내가 마음을 들여다 볼 때 물이 저 멀리 흘러가는 것을 보듯 했으면 한다. 예전처럼 너무 마음에 상처 입어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어 아파하지 말고. 한때 상처받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린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을 때, 하나하나 사건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을 때, 너무 긴 시간 내내 마음 아파하지 않도록 하자. 그 순간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은 무조건 내가 원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자.


눈을 감고 마음을 내려놓아본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조용한 명상 수행을 해본다. 아니면 반대로 미친 듯이 몸을 써본다. 서서히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까 전 괴로웠던 순간은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마음의 평화는 서서히...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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