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다고 무조건 얕보면 안 되는 이유
2025년 8월 8일, 해파랑길 5코스를 시작했다. 4코스를 끝나고 3일 만에 다시 걷는 길. 해파랑길을 놓고 싶어도 놓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처음에 갈 때는 괜찮은 것 같다가 마지막 종점에서 거의 지쳐 쓰러진다. 이것이 일종의 수면제 역할을 해주어 그날 푹 자게 도와주는데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또 생각나는 길, 그것이 바로 해파랑길의 매력이다. 엄마와 나는 3일 만에 4코스에 이은 5코스가 어떤지 기대되고 있었다.
해파랑길 5코스, 길이 17.6km, 소요시간 약 6시간, 난이도 쉬움. 이미 우리 모녀가 4코스에서 산 등산을 아주 힘들게 했었기 때문에 5코스는 그보다 훨씬 체력, 정신적으로도 쉬울 것이라는 예상이 되었다.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샘솟고 있었다.
5코스는 진하해변에서 출발하여 덕하역까지의 구간이며, 해파랑길에서 울산 구간이 시작되는 코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닷길을 따라가기보다는 '회야강'이라는 아름답고 큰 강을 옆에 끼고 나란히 이어지는 길이다. 우리 집 앞에도 회야강처럼 작은 강이 하나 있는데 강 옆에 뛰거나, 걷는 길, 또는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산책 가듯이 가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니 집에서 출발지점까지 편한 마음이었다. 날이 어마무시하게 뜨거운 8월 초였어도 8일 그날은 살짝 흐릿한 날이라 날씨도 걷기에도 딱 적당했다.
법정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느 길을 갈 것인가. 우리 앞에는 항상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놓여있다.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각자의 삶의 양식에 따라서 오르막길을 오르는 사람도 있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사람도 있다.' 역시, 내리막길 평탄한 길이야 말로 오르막보다 훨씬 좋은 길이 아닌가.
하버드대 출신 미국인 현각스님은 1964년 미국 뉴저지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셨다. 예일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하셨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하셨다. 집안도 괜찮았고, 미래 직업과 미래의 자산이나 재산이 충분히 있었으며, 곧 결혼할 여자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하버드 대학원 재학 중에 화계사 조실 숭산 대선사의 설법을 듣고 갑자기 '스님으로 출가'해 버리셨다. 완전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두신채로 한국으로 떠나오신 것이다. 중국에서 비구계를 받고 한국에 오셔서 25년 이상은 한국 화계사에서, 그리고 현재 독일에서 주지스님으로 열심히 수행 및 설법을 하고 계신다.
왜 사는가, 왜 태어났는가, 이생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현각스님께서는 '좋은 집안, 좋은 부모, 좋은 직업, 좋은 미래'까지 내려두고 떠나셨다. 그가 이렇게 출가하셨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의 꿈은 '수행자가 되는 것'이었는데 가톨릭 집안이었기 때문에 수행자가 되려면 교회에서 목사를 하셔도 충분히 되는 일이다. 하지만 현각스님은 어릴 적부터 '가톨릭, 기독교'에 대한 의문점을 많이 품고 계셨다고 한다. 더불어 끝이 없는 질문과 공허한 대답뿐인 인생이 답답하기만 하셨다고 하신다. '인생의 진리, 삶의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채로 방황하고 헤매고 계셨다. 끝도 없이 모든 철학 공부를 했고, 그 유명하다는 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교수님들 수업을 듣고 끊임없이 공부를 하셨음에도 말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늘 '왜 사는지, 왜 태어났는지, 이 생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현각스님께서는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장 부유하고 가장 강력한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이지만 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처럼 안락하고 안전하게 살지 못하는 것일까? 풍요와 기회 속에서 마음만 먹으면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데 왜 다른 나라 아이들은 나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이유로 전쟁과 폭력과 싸움의 한가운데서 허우적대야 할까?"
그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살기 위해서는 더 이상 '평탄한 길'로 가서는 안된다는 마음이셨던 것 같다. 그래서 '스님으로 살아가는 길'이 힘드셨음에도 그 삶이 훨씬 더 '인생의 진리에 다다르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우리 모녀는 5코스 해파랑길을 시작했다. 쉬운 길이라고 만만하게 보았던 것이 문제였을까. 진하해변 팔각정에서 신나게 사진을 좀 찍고 조금 걷지도 않았을 때였다. 회야강으로 들어가기 전의 길이 보도길과 찻길이 거의 경계선이 보이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불편했다. 옆에 자동차들이 잊을만하면 지나가고, 또 잊을만하면 지나갔다. 이유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최대한 가쪽으로 걸었지만 조금이라도 집중이 떨어지면 길 한복판에서 걷고 있었다. 부산에서 울산으로 넘어가는 길은 쉬워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났다. 회야강이 쫙 펼쳐진 길이 나타났다. 회야강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확 펼쳐진 길에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이상하게 더위가 아까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나 숲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뜨거운 햇빛을 얼굴에 정통으로 맞으면서 걸어야 했다. 햇빛이 쨍쨍하면, 땀이 나고, 체력이 떨어지고, 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생각나던 것이 있었다. 아, 이번 코스는 물 마실 음수대도, 화장실도 잘 없어서 힘들 수도 있다는 '두루누비 앱 안의 5코스 후기'가 떠올랐다. 코스를 하나씩 끝나면 사람들이 '후기'를 종종 올리는데 그때 적어놓은 후기를 몇 개 정도 읽고 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근데 갑자기 그 후기가 확 떠올랐고 이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괜찮아. 물은 편의점이 있으면 사서 먹으면 된다.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해파랑길은 엄마와 나만 걷고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회야강을 지날 때는 아슬아슬하게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갓길에서 외롭게 걷는 시간도 많았다. 중간중간에 쉬는 곳도 있었지만 뜨거운 열기로 모기, 날파리, 벌레들한테도 공격당하기 일쑤였다. 소규모의 공원 안에 쓰레기통도 없어서 그런지 바닥에 많이 버려져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오늘 해파랑길은 산이 없어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만만치 않네.' 기운이 서서히 없어졌을 때쯤 아파트와 빌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평탄한 길만 걷는다고 생각해 보라. 그 생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저기만 가면, 편의점에서 커피와 물을 사 먹을 수 있다.' 요즘 들어서 편의점에 대한 고마움을 많이 느끼게 된 것은 해파랑길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예전에는 대한민국에 편의점이 쓸데없이 너무 많다고 투덜댔었다. 그날 그런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름다운 회야강을 보면서 걸었지만 더운 여름이라는 존재는 편한 길을 걸을 때 더 극한 고통을 주었다. 뜨거운 열기가 평평하게 깔아놓은 길을 완전히 액체로 녹일 듯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때 법정스님의 말씀이 또 떠올랐다. '오르막길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 길은 인간의 길이고 꼭대기에 이르는 길이다. 내리막길은 쉽고 편리하지만 그 길은 짐승의 길이고 수렁으로 떨어지는 길이다. 평탄한 길이 있다. 만일 우리가 평탄한 길만 걷는다고 생각해 보라. 십 년 이십 년 한 생애를 늘 평탄한 길만 간다고 생각해 보라. 그 생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그것은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평탄한 길, 쉬운 길을 걷는 사람의 인생은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인생이 절대적으로 행복하다고 할 수도 없다. 현각스님께서 한때 느꼈던 '평탄한 삶의 의미'를 나도 해파랑길을 통해 잠시동안은 경험했다. 지루하니까 그 길에 집중을 못하고 외부적인 영향(날씨, 물, 화장실)에 휩쓸려 괴로워하고 있었다. 또 무엇인가를 갈망하듯이 갈증을 해소할 거리를 찾고 있었다. 해파랑길 4코스 '힘들지만 나무로 그늘을 가려준 오르막이 있는 산속'이 그리울 정도로.
평탄한 길도 계속 걸으면 무릎, 발목, 발바닥, 발가락까지 서서히 아파온다. 쉬는 곳도 물 마실 곳도 자주 나와주면 좋겠지만 물 마실 곳도 없었고, 앉아서 편하게 쉬는 곳도 없었다. 정말 그냥 길만 쭉 늘어진 채 있을 뿐. 하지만 화장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날씨도 더워 '땀으로 다 분비가 될 텐데 굳이 화장실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었다.
너무 생각에 몰두하고 신체적인 갈증에 직찹을 했나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이 너무 급하기 시작했다. 아까 전부터 아이스커피를 많이 들이켰는데 그것이 뱃속을 부글부글 끓게 했다. 어떻게든 참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설상가상이라고 했던가. 엄마도 화장실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은 채로 재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덕하역'까지 가야만 했다. 체력이 바닥난 몸을 이끈 채로 말이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평탄한 길도 힘들다. 오르막길이든 내리막길이든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모든 길이 다 힘드니까.'
덕하역에 있는 화장실을 갔다 온 뒤에 우리 모녀는 드디어 다시 숨 쉴 수 있었다. 정말이지 해파랑길 5코스로 다이내믹한 하루를 보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다시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생각이 났다. '오르막길을 통해 뭔가 뻐근한 삶의 저항 같은 것도 느끼고, 창조의 의욕도 생겨나고, 새로운 삶의 의지도 지닐 수 있다. 오르막길을 통해 우리는 거듭 태어날 수 있다. 어려움을 겪지 않고는 거듭 태어날 수 없다.'
이상했다. 나는 해파랑길 5코스를 걷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 얼른 6코스도 빨리 가고 싶었다. 6코스는 하드코스라고 들었음에도 말이다. 설렘에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이제 '평탄한 길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편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법정스님 말씀처럼 어려움을 여러 번 겪어서 거듭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어떤 스님을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당당하게 이것은 꼭 말씀드릴 수 있다. '스님, 쉬운 길도 어려운 길도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둘 다 힘들거든요.' 스님이 그 말씀을 들으면 살짝 미소 지으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