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코스, 철저히 어리석어 봅시다.

당황스러워하지 않고 그저 다시 길을 찾아 걷는다는 것

by youlive

정관스님의 삼보일배(세 번 걷고, 한번 절함) 1일 차부터 92일 차의 영상은 나에게 크나큰 감명을 주었다. 먼 나라 체코에서 태어나셔서 한국 송광사까지 와서 출가하신 스님이신데, 이 스님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큰 세계적인 상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스님의 가까운 친척분들이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휘말려 있으며, 전쟁에서 고통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자꾸 생각이 나서 잠을 거의 못 주무셨다고 한다. '고통을 받는 이들을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끝없이 고민한 끝에 그는 마침내 해답을 찾으셨다. 그것은 바로 '삼보일배'를 하는 것.



2022년 8월의 여름 어느 날, 전남 순천의 송광사에서 서울 길상사까지 무려 3개월 동안 삼보일배를 시작하신 것이다. 전쟁의 참혹함 때문에 안타까웠고, 마음이 고통으로 가득했던 그는 생명의 존중과 평화를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무거운 물음표에 누군가가 답이라도 내놓은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삼보일배를 해라.


삼보일배. 말은 그럴듯하게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해본다면 완전히 힘이 드는 수행방식이다. 세 번을 걷고, 한 번은 단순히 90도 인사가 아닌 무릎을 구부려서 절을 해야 하는 고난도의 수행이다. 무릎에 보호대를 단단하게 해도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아스팔트 위에서 절을 하는 것이 때문에 더 고통이 올 것은 틀림없다. 확실히 운동은 되니 체중은 감량이 되지만 체력은 그만큼 떨어질 것이다. 잘 곳을 따로 마련을 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 잠을 잘 수 있는, 말 그대로 밖에서 겨우 잠을 청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텐트를 치고 자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수행에 집중하기 위해 텐트, 입을 옷, 먹을 음식들도 최소한으로 준비해서 그것을 캐리어 같은 곳에 넣고 끌고 다니면서 삼보일배를 해야 하니, 그냥 걷는 것이 아닌 짐 한 보따리와 함께하여 몸이 무거운 채로 수행에 정진해야 한다. 그것도 도로 갓길에서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8월의 뜨거운 날씨는 한몫 더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진짜 어리석은 짓이다. 다른 스님들께서 처음에 분명히 정관스님께서 수행하시는 것을 막으셨을 것이다.



때로는 전쟁을 일으키는 그 영리함은 삼보일배와 같은 일견
지극한 어리석은 행위에 의해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관스님은 1일 차부터 '이것이 나의 인생이다'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씀 하신다. 짐을 끌고 세 번 걷고, 절하고, 또 세 번 걷고, 절하 고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그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전쟁이 끝나서 세상이 평화로워지는 것도 절대 아니다. 전쟁은 끝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스님께서는 수행을 하고 계시지만 위험하고, 괴롭고, 아픈 순간은 지속될 것이다. 정관스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어리석은 짓. 하지만 이러한 어리석음을 반복하시면서 그는 '길 위에 있는 가치를 통해 알게 된 삶이'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되셨다고 한다. 몸은 성한 데가 없고, 무릎은 계속 시큰거리지만, 마음만은 예전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점차적으로 편해지고, 온 정신이 맑아지는 경험은 스님께서 확신을 가지고 겪는 삶이다. 나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누가 이 더운 날씨에 가냐?

엄마랑 너만 그렇게 하는 거다.

주변에 물어봐라. 아무도 그렇게 안 한다."


해파랑길을 시작하면서 무더위에 걷는 것에 걱정을 심하게 하셨던 아빠. 아빠께서 '두루누리 앱'에 있는 코리안 둘레길 코스를 보고 말씀하셨다. 두루누리 앱은 코스를 실제로 밟지 않아도 지도로 1코스씩 따라 걷기 길 시작에서 끝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내가 따라 걷기 버튼을 누르면 그 길은 시작이 되고 내가 걷는 대로 앱 속의 회색선은 내가 갈 때마다 빨간 선으로 색이 서서히 채워진다. 이번 해파랑길 4코스는 부산 기장군에서 출발하여 처음으로 부산을 벗어나서 울산으로 진입하게 되는 코스다. 임랑 해변에서 출발해서 봉태산 숲길, 나사해변, 간절곶을 지나서 진하해변에 이르는 구간까지다. 그런데 더위도 더위지만 '위험코스' 빨간색 안내 표지처럼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이 크게 한 군데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해파랑길 4코스 동행제한 및 우회안내]

현재 고리원자력 발전소 주변 도로 확포장 공사와 봉태산 구간 공사로 인해서 일부 구간 통행이 제한됩니다.

따라서 '길천삼거리 정류장~신암입구 정류장'까지는 도보 이용이 불가능하니, 반드시 차량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중교통 필수 구간입니다.

- 이용 가능한 버스 : 515번, 1715번



해파랑길 4코스, 길이 18.8km, 소요시간 약 7시간 30분, 난이도 보통이지만 '통행제한 및 우회안내' 말대로라면 거의 총길이에서 7km 정도 되는 길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고 신암입구 정류장부터 코스를 시작해라는 말이 된다. 괜히 통행제한을 뚫고 갔다가는 큰일이 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건너뛰고 엄마와 나는 서생역에서 1715번 버스를 타고 신암입구 정류장에서 내려서 그곳에서 시작을 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걸어야 하는 길은 약 11km 안팎이 된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아빠가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걷는 것을 보면 놀라시겠지?"


엄마와 웃으면서 농담으로 한 말이다. 그만큼 아빠께서는 우리 모녀가 해파랑길을 가는 것을 막으셨다. 위험구간이 존재한다는 이유로도 충분했지만 현재 엄마께서도 건강이 좋지는 않으신 상태고, 날씨도 8월이라 덥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병에 노출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있었다. 비가 조금 온다면 그나마 더운 것은 아주 잠깐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텐데. 그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중간쯤부터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진 것이다. 앞이 가릴 정도로 비가 땅에 내리꽂았지만 오히려 시원해져서 기분이 상쾌해졌다. 보통 때 같으면 하늘을 원망했겠지만 쉬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이 밖에서 덩그러니 있을 때, 날씨가 나의 마음을 한번 확인하고, 마법을 부리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러니 함께 철저히 어리석어 봅시다!


2025년 8월 5일, 해파랑길 4코스를 안 가는 것이 되도록 바보같지 않은 행동이지만, 50코스를 어떻게든 마치고 싶다는 집념 하나로 어리석게도 이 길을 택했다. 택한 것은 되도록 붙잡고 끝까지 잡아보자. 우리는 우산을 든 채로 걷기 시작했다. 햇빛이 났다가, 소나기가 내리쳤다가, 다시 해가 잠시 고개를 들다가, 비도 동시에 반갑다는 듯 살살 내리기를 반복했다. 날씨는 요동치고 있는데 마음은 이상하리 마치 편해지고 있었다. '될 대로 돼라.'라는 생각을 하면서 걸으니 고통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정신이 맑아진다고 할까.


울산에 사람 몸보다 훨씬 큰 우체통이 인상적이게 놓여있는 간절곶을 지날 때까지만이라도 평화로웠지만 다시 고비가 찾아왔다. 서생공원 소망길에 들어가려는데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그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수다를 떨면서 점심식사를 하고 계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곳을 지나가 야기 때문에 지나가려고 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소리치셨다. "여기 공사 시작했는데, 왜 들어가려고 하는데."



순간 겁이 덜컥 났다. 두루누리 앱에는 아까 '대중교통 이용 필수 구간' 위험구간 말고는 주의해야 할 상황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 밖의 일이지만 뭐 어쩌겠나. 그냥 하는 수 없이 다른 길을 통해 가야 할 수밖에. 혹시나 다른 길이 있을까.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앉아계신 길을 뚫고 살짝 서생공원 소망길에 들어갔는데 역시나 막혀있었다. 결국 다른 길 쪽으로 우회를 해야만 했다. 어떻게 우회하여 갔는지 솔직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갓길에서 잠시 돌아서 걷다가 우리가 원하는 길로 찾아간 것 같다.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았고, 언젠가 길은 또 나타나겠지.'라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걸으니 길은 나타났다. 스님의 '어리석어 보자.'라는 마음 상태였다.




정관스님의 삼보일배 13일 차, 몸이 힘드실 법만도 한데 표정이 더 밝아진 상태로 계속 수행을 하셨다. 옆에 도와주는 스님분들도 계셨다. 영상을 찍는 분, 길을 찾아주는 분, 온라인으로 정관스님의 행보를 알려주는 분, 같이 수행하시는 분, 먹을 것을 챙겨주시는 분. 때로는 시민들이나 지역 주민들이 나서서 몸소 챙겨 주시기를 했다. 서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은 채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고 정관스님을 끄는 것 없이. 각자의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정관스님과 인연을 잠시 맺었다가 인연이 다한 것 같으면 그대로 돌아가셨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가 없다.


수행이 며칠동안 계속되던 그날, 정관스님께서는 이미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을 찾을 수 있는 눈'을 가지고 계셨다. 그건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다. 때때로 우리 엄마께서도 물을 너무 사서 먹으면 돈이 나간다며 '음수대'를 찾으셨는데, '여기 있을 것 같다' 하는 곳에 진짜 마실 물이 있는 곳을 기가막히게 찾으셨다. 그 마법 같은 힘이 정관스님께도 있었던 것이다. 스님께서 발걸음을 멈추시고 갑자기 산 쪽으로 들어가신다.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이 나온다. 정관스님은 씩 웃으면서 물병을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삼보일배 프로젝트를 하는 다른 스님과 대화를 나누신다.



"스님, 여기 물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나요?"

"그냥 여기 있을 것 같았어요."

"아마도 관세음보살님이 스님을 이쪽으로 오게 한 것 같아요."

"그럼요. 언제나 늘. 당신한테도."


정관스님의 확신에 가득 찬 환한 미소가 나를 잠시 행복하게 만든다. 삼보일배, 하루에 3~5km 남짓, 세 번 걷고 한번 절을 하면서 걷는 아주 바보 같은 수행. 전라도에서 서울로 삼보일배하면서 가면 최소한 3달은 걸린다. 철저하게 어리석은 수행방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바보 같고 어리석은 게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스님은 이 길을 선택하셨고 그냥 아무 생각도 걱정도 없이 시작하셨다. 그런데 TV에서도 책에서도 알지 못했던 인생을 깨달으셨다고 한다. 의미 없어 보이는 이 수행을 누가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


나는 스님의 수행법에 한참 못 미치지만 그래도 해파랑길 걷기를 통해서 '어리석음'을 계속 경험 중이다. 이상하리 마치 마음속에 복잡한 것들이 싹 걷어지고 '오직 그냥 걷는다'라는 것에 몰입하여 자연스럽게 하나하나 발걸음을 뗀다. 어느덧 엄마와 나는 진하해수욕장에 도착했고, 해파랑길 4코스 종점인 팔각정에서 기분 좋게 마무리를 했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의 지난 과거가 지하철이 쌩쌩 지나가듯 살짝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고통으로 가득찼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별거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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