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3코스, 지옥 갈 사람이 무슨 걱정이냐

첫 산행 불안할 이유는 전혀 없다

by youlive

나는 솔직히 말해서 사회성이 높은 사람은 아니다. 어릴 때는 애 어른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그 말이 칭찬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애가 애다워야지 어른 같으니까 말이다. 워낙 내향적인 면이 강하다 보니 보통의 남들보다는 깊이 있는 사고를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성격과 말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타고났다.


겉으로는 행동은 무뚝뚝하고 말이 없기 때문에 남들 눈에는 '일 말고는 타인에게 관심 없는 사람', '재미없는 시시콜콜한 사람'으로 눈도장이 여러 찍혀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타인의 말에 송곳에 찔리는 듯한 느낌을 수도 없이 받았다. 예를 들면 남들은 "별 뜻 없이 한 이야기야."라고 얘기를 툭 던질 때, 망치로 두드려 맞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경험을 종종 겪었다. 가슴이 미친 듯이 쿵쾅거린다고 할까. 내면과 외면이 다른 모습에 나도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병원에 가볼까.'라는 생각은 수천번 수만 번 했지만. 모든 상황을 하나하나 살피지 말고 그냥 지나가면 그만인 그저 무난한 성격이 절대로 못 되는 것이다. 남모르게 속으로 엄청난 시련을 겪었던 것 같다.





때로는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서 어떻게 살래?'라는 생각도 들면서 나를 한 번씩 억지로 바꾸려는 일도 있었다. 인간은 좀처럼 바뀌지는 못한다고 하지만 나도 한때는 나의 성격을 숨기고 억지로 걱정 없는 척, 불안하지 않은 척, 멀쩡한 척을 한 적이 있었다. 남들을 한 번씩 웃게 하기도 했다. 아니면 내가 크게 자지러지게 웃던가. 심지어 남들이 "요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여요."라고 이야기할 때조차도. 어느 날, 직장에 한창 다닐 때 일이다. 내 이런 모순덩어리고 단점 투성이인 성격을 숨겨봤자 소용도 없을 것 같아서 퇴사 전에 상사에게 문자로 가짜 마음을 던져 놓은 적이 있다.


"일이 저와 맞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만두겠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특히 직장을 오랜 다닌 사람들이 보면, 이 카톡만 봐도 경멸하고 분노가 치미는 감정이 들것이다. 한심하고, 책임감 전혀 없고 뻔뻔스러운 이미지인 사람의 모습이 상상될 것이 뻔하다. 그 당시에 나 또한 나를 객관적으로 볼 때도 그랬다. 하지만 나는 뭔가 하나라도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상처받거나 외골수로 빠지는 성격으로 타고났다. 그러다 보니 '일을 열심히 하다가도 갑자기 마음에 변덕이 생겨 고꾸라지는 병'이 있을 정도였다. 그때 당시도 그랬다. 한숨이 나오는 경우는 끝도 없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욱더 좋지 않은 상황을 계속 겪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은 점차적으로 나쁘게 다가왔다. 요즘 MZ말로 '세상이 나를 억까한다.'는 마음이 끝도 없이 들었다.


"그래도 저는 꼼꼼하고 섬세하게 일을 해주셔서 좋아했습니다. 힘들어하셨다니 그저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행복하시기만 바라겠습니다."


상사가 몇 번이나 나를 붙잡아서 나도 다시 마음을 다시 고쳐서 일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회사 가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겠다.'라는 마음이 저절로 올라왔다. 분명 아무것도 먹지도 않았는데도 속이 좋지 않았고 배가 아팠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이유도 모르게 고통스러웠고 괴로웠다는 증거이다. 이것은 상사도 동료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평소에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퇴사를 결정했다. 나는 늘 그랬다. 회사 입장을 먼저 생각하면 '걱정'이 심해져서 '불안'까지, 아니 불안을 넘어서 '공황상태'까지 왔다. 내가 사장도 아니고 내가 설립한 회사도 아닌데 쓸데없이 '회사가 망하면 어쩌지.'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는다. 그런데 퇴사하기 며칠 전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나 자신을 보고 너무 놀랐다. 왜 나는 그 수많은,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걱정을 했을까. 아니 걱정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고 있었을까. 내가 굳이 해결하려고 손을 뻗지 않아도 일은 조금씩 해결이 되고 있었다.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시 보니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이는 직장이었다. 나 혼자만 이곳이 '지옥'이었던 걸까.





"산... 여기가 맞는 거지?"

"응, 살짝 지옥에 들어갔다가 나올 거야."


해파랑길 3코스는 부산의 기장읍 대변리와 임랑리를 잇는 길이다. 대변항에서 출발해서 봉대산 봉수대 -> 기장군청 -> 일광해변을 지나 -> 임랑 해변까지 이르는 구간이다. 총길이는 16.7km이며 소요시간은 약 6시간이며, 봉대산이라는 산을 한번 타기 때문에 난이도는 쉬움이 아니라 보통이다. 2025년 7월 26일, 이 날은 꽤 후덥 찌근 했다. 더운데 습하기까지 하니 조금만 걸어도 숨이 조금 차기 시작했다. 또한 이번 3코스는 '산행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엄마도 나도 걱정까지 겹쳤다. 우리 모녀가 한라산까지 잘 갔다 왔지만, 원래 산이라는 것이 집중을 조금만 놓쳐도 체력이 힘들어지고, 심지어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우리 모녀가 동네 뒷동산 산길에서 길을 잃어버려서 헤맨 적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떨렸던 것은 사실이다.


봉대산이라는 조그마한 산에 갈 때 내가 엄마한테 '지옥'이라고 표현한 것은 과했지만, 그전에 바닷길을 신나게 걷던 사람들이 코스 시작부터 산길을 걷게 되면 고통이 2~3배가 들어 전보다 부담감, 짜증남,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농담으로 지옥이라고 한 건데 말이 씨가 된 건가. 산이 작은 산이라 그런지 사람이 다니기에는 애매한 길이 놓여 있었다. 괜히 걱정이 되었다. '뭐야... 여기로 가는 길이 맞아?' 나는 손에 폰을 땀이 나도록 쥐어가면서 앱 지도를 켜고 몇 분 걸으면 또 확인하고 몇 초만 걸어도 또 확인하는 불안정한 상태로 산을 탔다.



천국에 갈 것 같으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지옥에 갈 것 같으면...
지옥에 갈 사람이 무슨 걱정이냐?


성철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차피 지옥에 갈 사람이 무슨 걱정이냐.' 웃음이 빵 터져 나왔다. 이렇게 해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명언이 존재한다니. 걱정은 어차피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그렇다면 불안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순간 아주 몇 초 동안 복잡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지면서 한순간에 깨끗해졌다. 산도 오르막길이 끝났는지 평지로 잔잔하게 걷는 길이 나왔다. 이전까지 알 수 없었던 불안감은 서서히 사라지고 편안해지면서 그저 신체적인 힘듦만 남아있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앱도 안 키고 그저 길에만 집중했다. 이 산도 걸을만했다. 다행히도 정상쯤에 쉴 수 있는 벤치가 나왔다. 배가 고파져서 옥수수를 하나 먹고 있는데 엄마께서 말씀하셨다.


"아까는 몰랐는데 여기 괜찮네."

"맞아.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말이야."





드디어 산에서 빠져나오고 나서 엄마와 나는 짧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살았구나. 해파랑길에서의 첫 산행이었지만 산에서 걷는 길이 낙엽으로 심하게 덮여있어 깔끔하지 않은 것 빼고는 완벽했다. 전까지 첫 산에 대해 싫어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을 정도로. 그리고 해파랑길에 특이점인 산길을 몸소 경험하면서 걱정을 줄일 수 있는 지혜도 하나 알아냈다. 방법은 바로 '마음 내려놓고 그냥 가는 것'이다.


탁 놔버리면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 이 말씀은 듣고 또 들을수록 참다운 인생의 진리가 담겨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냥 놓아버린다는 것. 해파랑길 3코스가 산행부터 시작하지만 끝나면 또 해변길이 시작된다. 걷는다는 것이 말이 쉽지 실제로 지나칠 곳이 꽤 많다. 대변항, 월전항, 두호항, 3개의 항구를 지나쳐야 하고, 기장 군청, 기장 경찰서도 지나쳐야 하며, 일광해수욕장, 임랑해수욕장 2개의 해수욕장도 지나쳐야 할 정도의 코스다.


하필 뜨겁고 습한 날씨에 쌩쌩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도 같이 들으면 스트레스와 압박이 상당히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시작한 것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종점에서 마무리돼야 한다는 집착하는 마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냥 놓아버리고 걷기만 해도 반 이상은 성공한 셈이다.





뜨거운 낮에 계속해서 걸을 때 '이렇게 더운데 무슨 병이라도 걸리면 어쩌나.'라는 걱정부터 시작된다면 처음부터 막막함과 두려움의 감정이 든다. 그러면 쓰지 않아도 될 에너지마저 쓰게 되기 때문에 쉽게 지쳐버리게 된다. 종점까지 가고 싶은 욕망이 확 커지기 때문에 걷는다는 고통은 점차 심해진다. 허리도, 무릎도, 발바닥, 발가락까지 아파온다.


이제 반대로 생각해 보자. 오히려 시작과 끝이라는 것은 없고, 결과도 없으며, 성과 같은 것은 없다. 그저 걷기만 하면 성공한 것이라는 하루를 그려본다. 그렇게 결과를 놓기 시작하고 계속 가는 길이라는 과정에만 집중을 해보자. 시간이 흘러간다. 비로소 내가 이때까지 여겼던 모든 문제들은 실제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것이다. 현재, 지금에만 집중하면 신기하게도 그런 마음이 든다.


끝도 없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고, 불안이 엄습해 오고, 걱정이 생길 때, 오히려 오늘, 지금, 현재에 집중을 해본다면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하나하나 문제라고 여겨 시작하면 끝도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지옥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그저 마음을 놓아버리고 '하나하나 해결해 보자.'라고 생각해 보자. 불안에 떨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한다면 생각보다 쉽게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



남들보다 자신이 예민하고 불안도가 높다면 점차적으로 그 마음이 어디서부터, 언제, 왜 생겼는지 생각해 보고, 점차 그 마음에서 멀어지는 자신만의 방향을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물론 말로는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 나 같은 경우는 최근에 알아낸 방법이 바로 걷기였다. 아무 곳에서 끝이 없이 걷는 것이 내향적인 성격이 강한 나에게 가장 알맞은 마음수련의 방법인 것이다. 예전에는 집중을 흐트러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했는데 이제는 해파랑길을 갈 때 귀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다.


오늘 하루, 오늘 날씨, 오늘 마음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주변을 너무 살피지 않고 걸으면 마음이 천천히 치유된다. 어느덧 엄마와 나는 임랑해수욕장까지 왔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임랑 해수욕장이 인기가 많은지 사람들이 많이 놀러 와 있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오랜만에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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