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라산, 산은 산 물은 물일뿐

제주도 한라산 힘들게 오르면서 깨달은 진리

by youlive

나에게는 남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 고질병이 하나 있다. 직장에 들어가면 꾸준히 일을 하는 것 같아도 몇 개월 지나면 점차 하기 싫어지고 고꾸라지는 독특한 마음의 병이다. 이 문제가 심각하기 전부터 심리적으로 책도 읽고 관련 유튜브 영상도 보면서 나의 방황하는 마음을 고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나의 이런 모습을 바꾼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요즘에 20~30대들이 퇴사를 빠르게 하더라.' 이 말이 와닿는 시점, 나는 새벽 늦게까지 깊이 생각하다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일을 하고 일정한 수입을 얻는 것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끊임없이 담았다면 괜찮을지도 계속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에 이런 의미는 나를 더 '감옥'에 집어넣는 일이었다.


자책이 심해지고 아르바이트 말고는 어떤 것도 할 수 없겠다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저 그런대로 살아가고는 있었지만 내 마음의 불만족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저 불행했고 마음에 억눌린 느낌은 여전했다. 어느 날, 한 번은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인터넷으로 하는 간단한 사주상담이었다. 별 기대가 없었는데 사주 상담가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다.


"만약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열심히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열심히 노력해도 안된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


나는 눈물을 흘렸다. 이는 아픔과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깨달음의 눈물이었다. 내가 이때까지 들었던 말 중에서 최고로 느껴지는 부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그 순간 세상에 딱히 정해진 직업이 없어도 각기 나름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갔다. 그들은 그 삶이 자신에게 맞다고 여기고 있었다. 30대 초반에 연애도 결혼도 못하고 직장마저 없는 여자의 인생, 별 볼 일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 내 마음에서는 엄청난 긍정적인 에너지의 씨앗의 뿌리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나는 다시 백수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20250525_100129.jpg 한라산 정상을 가기 전, 정상으로 향했을 때


"제주도 한라산 등반을 하자."


3년 전부터 엄마의 소원은 제주도 한라산 등반이었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힘들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계속 거절을 했다. 이번엔 일도 그만두었고 더 이상 엄마의 마음을 거절을 할 수도 없어서 함께 가기로 결정을 했다. 우리 모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한라산 코스 중에서 성판악 코스는 초보 등산가가 하기에 적당한 수준이라고 했다. 그래도 이곳 등반을 한다는 것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장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라산 성판악 코스, 편도 4시간 30분, 총 9.6km 정도 된다. 왕복을 하고 중간중간 쉬는 곳에서 적당하게 휴식을 취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총 19.2km에 적당히 10시간 정도 시간을 잡아야 하는 코스였다.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포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와 나는 2025년 5월 25일 새벽 5시 45분 한라산 등반을 시작했다. 날씨가 제법 추웠기 때문에 올라갈 때 덥지 않아 나름 순조로웠지만 서서히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등산은 힘들어.' 하고 생각을 할 때마다 괴로움도 성큼성큼 찾아왔다. '나, 여기서 지쳐버리면 어떡하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하듯 귓가에 스치는 말이었다. 그 말은 내 머릿속에서 나는 것인가. 나는 곧바로 자연과 내가 하나 되고 있음을 경험했다. 조금 전에 괴로움과 힘듦과 근육의 아픔을 잊었다. 나는 내가 올라가는 계단만 보면서 집중을 할 수 있었다. 방금 전 내 머릿속 말의 힘은 대단했다. 천천히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하고, 돌계단, 나무 데크 계단에 시선을 고정하고 집중하면서 올라갔다. 주변에 지친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렸고, 다시 힘들다는 마음이 불쑥 올라왔을 때쯤, 이 말을 나도 모르게 또다시 중얼중얼 대고 있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뿐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뿐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뿐...."


이 명언은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성철 스님께서 하신 명언으로도 유명한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 존재를 보는 것'이다. 이 말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인간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 욕심과 끝이 없는 번뇌가 상당한데, 그것을 내려놓으면 진정한 마음에서 평화가 찾아온다는 뜻이다. 이 말을 한라산 등반에 적용을 해봐도 될 것 같다. 산은 그대로 있을 뿐, 물도 그저 흐를 뿐, 나에게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다.




20250525_110429.jpg 한라산 정상 및 백록담에서


어릴 때부터 등산은 제대로 해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체력이 약해서, 힘이 약해서 등 핑계대기 일쑤였다. 내가 이때까지 등산을 하면서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내 마음의 번뇌 또는 등반을 잘하고자 하는 욕심에 있었던 것이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직장을 많이 옮겼던 이유 또한 알아냈다. '너무 잘하려고 하는 마음' 그것이 나를 오히려 그르쳤던 것이다. 나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든 것이다. 잘하려고 하니 나에 대한 또는 직장에 대한 실망이 커지고 이것이 나를 퇴사로 결정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


한라산 등반의 마지막 부분은 인생에서 클라이맥스를 찍듯이 다가왔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엄청난 바람이 나의 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곧 정상을 찍는다. 흥분은 하지 않았다. 정상을 찍는 것만이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바람도 그저 불뿐이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간다.'이 말을 되새기면서 갔다. 어느 순간 정상에서 엄마와 사진을 찍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라산 등반은 멋지게 마무리가 되었다. 엄마께서 내 덕분에 한라산 등반을 끝낼 수 있었다고 고마워하셨다. 나도 엄마께 이런 기회를 받아 감사드렸다. 더 이상 엄마에게 예전처럼 힘들다고 투덜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내가 성숙한 성인이 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10시간의 등반으로 마음이 서서히 단단히 굳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경험인가. 이는 TV에서도 책에서도 얻을 수 없었다. 등산 및 장기간 걷기를 통해 마음수련이 되었다니 그저 놀랄 따름이다.


걷기는 내게 있어 크나큰 마음 에너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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