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온몸으로

살고 있는 중이다.

by J가 쓰는 글


한동안 글을 안 썼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으뜸은 아무래도 현대인들의 지병 중 하나인, '바빠서'.


지난편에는 사는 게 뭔지를 고민하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라고 적고 끝냈는데, 나는 그 말대로 작년 말부터 그야말로 발바닥에 불이 나게 돌아다니며 열심히 세상과 부딪히고 섞이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니, 발바닥에 불이 나는 건 차치하고, 너무 많이 걷다 보니 오른쪽 엄지 발가락이 눈에 띄게 휘고 있다. 진짜로. 아직은 참을만하게 가끔 불편한 정도지만, 아무래도 조만간 정형외과에 가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한동안, 매우 열심히 돌아다닐 예정이니까.


이 세상엔, 내가 아직 안 가본 곳들이 많다.




일단 마지막으로 글을 쓴 시기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나열하자면.


자격증 시험을 봐서 붙었고 (아싸), 글을 쓰던 시기에 하던 일은 끝났고 (계약을 완료하고 칭찬까지 듣고 끝났다. 오예), 현재는 아주 바쁜 라이트 백수로 작년부터 참가하기 시작한 예술 커뮤니티에 조금씩 더 활발하게 참여하며 단체 전시회 등에서의 활동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어째서, 어떤 예술 커뮤니티인지, 등등이 혹시 궁금하다면, 3회의 중간부터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소소하지만 일상을 담는 유튜브 채널도 시작했고, 시간 나는 틈틈히 친구의 가게까지 봐주며 용돈 벌이를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대화들을 하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고 있다.


1년이 넘는 휴식의 시간동안 나는 많은 것들을 생각했고, 그동안 살아오며--사실은 살아남으며--느꼈던 것들의 소용돌이가 잠잠해지며 침전물처럼 가라앉는 시기를 보냈다.


그리고 나서의 내 안은 한층 단순하고, 맑은 무언가로 꽉 찬 느낌이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그러나 조금 더 많이 단단한.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것도, 산다는 것 중의 일부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살아가는 중이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살아가고 있고, 살아간다는 게 뭔지, 나로 살아간다는 게 뭔지, 그걸 온몸으로 있는 힘껏 존재하며 알아가고 있다.


알아가겠다고 생각했고, 그러고 있고, 어색하기도 하고 미숙하기도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지내고 있다.


마음속 울림에 귀기울이며.


그렇게 살고 있는 현재의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중 가장 많이 웃고, 실없는 농담을 끊임없이 하고,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곧잘 이야기를 하며 지내는 중이다.


최근에는 같이 탄 지인들과 마을버스 안에서 너무 즐겁고 시끄럽게 떠들어서 버스 기사님께 한바탕 혼나기도 했다. 좀 죄송하긴 했지만 호통을 치는 기사님의 목소리에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을 정도로 즐거운 순간들이 많다.


굉장히, 새로운 것들이 많다.


시도하는 것들, 해보면서 배우는 것들, 그리고 그러면서 새로 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때때로 오해가 있거나, 짜증이 나거나 쓸데없이 드라마틱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나는 그들이 좋고, 그들도 나를 좋아한다.


난 이걸, 서로 주고 받는 농담이나, 아직은 서로 헤어지는 게 아쉬워 괜히 덜렁거리며 익숙한 길을 같이 걷거나, 최근 알게 된, 자주 가는 술집에서 같이 잔을 기울이며 다른 누군가에게는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꿈에 대한 진지하고도 가벼운 이야기들을 하며 서로 우기고, 조언하고, 인정하고, 배울 때 느낀다. 그러다 갑자기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다 도대체 얼미니 엄청난 걸 싸는 거냐고 문자를 하거나, 아직 친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천천히 친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그래도 좋을 것 같은 누군가가 내가 한 말에 완벽하지 않은 미소를 지을 때 느낀다.


이전과는 다르게, 조바심이나 서운함, 무언가가 틀어질까 하는 걱정 보다는, 그저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즐겁다고 느껴질 때 생각한다.


아, 여기 있어서 좋다.


내가 여기 있어서, 나로 있어서, 좋다.


솔직히 말해 지갑은 얇고,


당연하게도 늘 즐겁지만은 않고,


앞으로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참 신기할 정도로,


그런 순간들이 많다.




그래서 생각을 한다.


앞으로 있는 그대로의 내 일상을 적는 건, 좀 너무 드라이한 것 같다고.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울 수도 있지만, 이런 소중한 일상은 앞으로 영상으로 기록해 앞서 말한 유튜브 채널에 남길 예정이다. (궁금하면 오백원 프로필에 새로 추가된 동그란 URL 버튼을 클릭해보면 된다.)


지금까지는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적었고,


현재는 내가 살아가는 삶을 살고, 때때로 기록하는 데에도 모든 에너지가 들어가고,


또 난생 처음으로, 미래라는 걸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 시점에,


있는 그대로의 나의 삶을 적는 건,


무엇보다 지금 아주 나다운 식으로 살고 있는 나에게, 좀 단조롭게 느껴진다는 거.




그래서 앞으로는 약간의 픽션이 섞인 삶의 순간들을 적을 예정이다.


뭔가.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나?


이런 걸.


자전적 소설과 에세이와 때때로 시를 닮은 소리들이 섞인, 그런 글들을 써보고 싶다.


그러니까, 그렇게 할거다.


지금까지 올린 글에는 현재까지 내가 경험한, 그러니까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선에서 일어난 일들을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을 버무(리)려 (노력하며) 담았다면,


앞으로는 일어난 일들과 일어나고 있는 일들, 또 일어날 수도 있는 일들에 대해 적고 싶다.


객관적인 시선은 좀 빼고, 더 주관적으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그 선이 한없이 엷지만, 아주 조금은 헷갈리게.


여기에는 주변인 보호와 사생활의 이유도 있지만,


그 중 으뜸은 바로,


나의 현재가, 아주 나답게 사는 나로 꽉 차있단데에 있다.


그걸 있는 그대로 글로 적는 순간, 읽는 이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고 싶지 않다.


그래서 지난 글에는 정직하게 하려고 한다고 썼고,


앞으로도 거짓말은 안 할거지만,


자전적 소설과 에세이가 섞인 글을 앞으로 써나가며,


나는 꿈을 꾸고 싶다.


순도 100%,


나만이 꿀 수 있는 꿈들을.




지금까지 내가 어떤 인간이었고, 어떤 경험들을 했고, 어떤 생각들을 해오며 현재의 내가 만들어졌는지를 기록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걸 누군가가 읽어줬다는 건, 마지막 글에 좋아요가 16 번 눌린 걸 오랜만에 로그인해서 보고 감동에 복받혀 잠시 말문을 잃고 손에 들고 있던 음료를 찔끔 쏟을 정도로 따듯하고, 인간적으로 위안이 되는 일이기도 했고.


그리고.


그리고 또.


이제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나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곳에 글을 올리고, 해가 바뀌는 몇달 간의 시간동안, 브리타 필터를 갈아끼운 듯 정수가 된 내 안에는 그런 생각들이 생겨있다.


어느새.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단단하고, 예전보다 투명하고, 예전보다 여러 것들이 투과되는 방식으로 매일 매일 존재한다.


물을 통해 비친 햇살이 여러 갈래의 색으로 갈라지듯,


나도 그런 글들을 쓰고 싶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잠시 묻는다.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되나요?


됐으면 좋겠는데.


안 될 수도 있잖아요.




다른 누군가에게 말이 되든 잘 안 되든,


이 글을 16명이 읽든 0.6명이 읽든,


나는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실을 온몸으로 느끼며 숨 쉬는 중이다.


그래서, 가능한 것 같다.


꿈을 꾸는 게.


나로 살아가는 걸 배우는 중인 나는,


꿈을 꾸고 있다.


꿈을 꾸는 중이다.


꿈 속에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것도 내 현재이다.


그것도, 산다는 것 중의 일부인 것 같다.


어쩌면 거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가능성을 안고 있는 듯하다.



기대가 된다.



나로서 살아가는 나의 오늘이.


내일이.



아직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앞으로의 시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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