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놀아버릴 진심.
1년간 대부분의 일반적인 사회활동을 쉬었지만, 사실 그렇다고 집-병원-산책로를 드나드는 것 외에 정말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오늘은 어떻게 (일 안 하고) 시간을 보낼까 열심히 궁리를 했으며, 가끔은 멀리 있는 친구들과 영상 통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명절에는 친척들과 모여 맛있는 걸 먹기도 했고, 혼자 조용히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기도 했다. (음악을 정. 말. 많이 들었다. 선우정아 사랑해요 <3)
디톡스에 좋다는 엡섬 쏠트를 잔뜩 풀어둔 욕조에 불을 끄고 누워 예전에 좋아했던 영화를 다시 각 잡고 보기도 하고 (앙리 감독 사랑해요 <3), 그냥 방바닥에 누워서 넋을 놓은 채 예능 프로를 보기도 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눌렀다가 첫 편을 보게 된 핑계고는 요즘도 매번 챙겨보는 애정 프로가 되었다.)
그러다가 나도 영상이나 좀 찍어볼까? 하는 생각에, 친한 친구가 들고 다니던 카메라의 기종을 물어 따라 구매해서 조금씩 사진과 영상을 찍기도 했고, 그 카메라를 메고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 놀러 간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 아저씨의 초대로 재미있는 아티스트 커뮤니티를 알게 되어 새로운 지인들을 사귀기도 했다.
(TMI로 나의 엄마와 아빠의 별자리는 처녀자리인데, 처녀자리의 특징은 부지런함[이라 쓰고, 편하게 쉬지 못함이라 읽음]이라고 한다. 처녀자리 X, 상대적으로 느긋한 성격인 나는 늘 부모님과 상극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일상이 반복되자, 슬슬 몸이 간지럽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면서 새삼 이것이 유전자의 힘인가, 생각해 보기도.)
아무튼 지난 편에 호기롭게 백수라고 썼지만, 그 단어가 주는 어감 치고 나의 지난 1년은 나름대로 나는 알찬 시간이었다.
심지어 남아도는 시간으로 지난 몇 년간 관심이 있던 팟캐스트도 제작에도 도전해 보았고, (12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친구들과의 1대 1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했는데, 아는 사람에게만 이야기했음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운로드를 해주어서 마음이 따끈해져 버렸다. 광고는 아니다. 제목도 안 알려줌.) 계속 예술 나부랭이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찌어찌 몇 번인가 단체 전시회에도 참가하는 경험을 하게 되기도 했다.
아니,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너무 알찬데?
어쩌면 내가 전 편에 쓴, ‘아무것도 안 했다’는 말은, 순전히 경제활동에 국한된 표현인지도 모른다.
플러스, 경제활동에 따라붙곤 하는, 의무적인 사회적 만남들.
‘약 1년간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서 아무것도 안 하기로’ 했던 나는, 그런 것들을 내려놓고 싶었다.
‘마땅히 해야 하는 것들’.
'성인이라면'.
'이 사회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인간이라면'.
‘지금 그 나이에.‘
으레 읊조려지는 수식어들과 표현들이, 어느 순간 나에게는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마치 유령이 된 풍선처럼 흐물흐물, 색깔도 밀도도 없이 그저 주변을 떠다니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안 후부터.
그래서 나는 쉬기로 했다.
지난 몇 년간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얇게, 그래도 꾸준히 받아하던 일들을 하나씩 접고*, ‘요즘 상태가 좋지 않아서요’라는 애매하게 뭉뚱그린 말로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그러나 더 이상 억지로 만나고 싶지 않던 지인들의 연락을 최대한 부드럽게 거절했다.
(*내 의지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으로 끝난 일들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프리랜서의 숙명이기도 하거니와, 글쓴이의 의도와 본문의 주제랑 아름답게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많이 흐린 초점으로 봐주자.)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까지, 최대한 집중해서 나를 위해 맑고 빈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만약 불교 신자였다면, 어쩌면 나는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집안은 양가가 대대로 기독교를 믿고 있기도 하고, 예전에 머리를 반삭 했을 때 깨닫게 된 사실들이 있으니:
1. 내 머리는 2주에 한 번을 밀어도 모자랄 정도로 빠르게 자란다. 그리고 머리를 미는 것은 아주 귀찮다. 는 것과,
2. 겨울에는 두피가 엄청나게 시리다. 라는 것.
그래서 대신 나는 겨울에는 보일러 난방이 되고,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가족의 아파트로 들어왔다.
그리고, 마음껏 ‘쉬었다’.
'쉰다'의 동음이의어처럼 쓰이는 말로, '논다'는 표현이 있다.
뭐 해?
요즘 놀아.
그냥 놀아?
응. 그냥 놀아.
사뭇 부정적이고, 잉여스러운 느낌이 퐁퐁 솟아난다.
요즘에는 심리학에서도 노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할 정도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에게 중요한 것이 바로 그 노는 것이라지만,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놀았던 기억이 많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노는 척'을 했던 적은 많지만, '진짜로 논' 경험은 많지 않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도 나는 그저 그랬고, 좋아했던 그림 그리기도 '잘 그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진심으로 즐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아이들이라면 흔히 '이렇게 노니까' 따라한 게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원래부터 '예민하다', '까다롭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나는 튀는 게 싫었고, 혼나는 건 더 싫었다. 그래서 슬프지만 놀 때도, 어른들의 시선에서 아이인 내가 할 만한 것들을 하며 놀았다. '진짜 논' 것이 아니라, '노는 척'을 했던 거다.
그래서 놀 때는 늘 불안했다.
지금 잘 놀고 있나?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놀고 있는 게 맞나? 재미있어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데. 다 '놀고' 나면 숙제를 해야겠지. 숙제하기 싫다. 학교 가기 싫다. 하지만 안 해가면 혼나겠지. 혼나는 건 무서워. 무서우니까 해야지. 아, 피곤해. 아, 재미없어. 다른 사람들은 이게 재밌나? 아니면 왜 이렇게 살지?
생각도 많고 걱정도 많고 겁도 많은 아이었던 나는, 놀고 있던 공부를 하고 있던 똥을 싸고 있던 늘 마음이 불편했고, 늘 진심으로 궁금했다.
숙제를 계속 안 하면, 그리고 학교를 매일 안 가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선생님한테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면? 그러면 언젠가는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말대답할 배짱은 전혀 없었지만, 나는 늘 어른들과의 진지한 대화에 목마른 아이였다. 잘 생각해 보면, 나를 어린애 취급[ㅋㅋㅋ]하는 학교가 그래서 더 싫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성인이 되자, 그 질문들은 이렇게 바뀌었다: 매장 문을 안 잠그고 퇴근을 하면 어떻게 될까? 손님이나 상사의 말에 진짜 생각하고 있는 걸로 되받아친다면? 대낮에 길을 가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오랫동안 너무 싫었던 사람에게 대놓고, (다른 사람도 있는 자리에서) '나 너 완전 싫어!' 라는 말을 맨 정신으로 하면?
시키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싶은 걸 그냥 안 하면?
무의식중에, 세상이 끝날수도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도 조용히가 아니라, 재난영화에서처럼 와장창, 모두가 터져 죽거나 얼어 죽거나 익사를 하거나, 좀비에게 쫓기다 와그작, 하고 뇌부터 요란하게 잡아먹히거나, 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그건 모두 (감히 숙제를 안 하고, 말대꾸를 꼬박꼬박 해버린) 내 탓일 거라는!
그렇게 바다에 잠긴 빙산처럼 대부분은 실체가 보이지도, 이해가 되지도 않는 겁을 먹고 산 시간이 길어질수록, 호기심도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작년, 1년간 쉰, 그러니까 '논' 시간 동안,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결론은, 그래도 괜찮다, 이다.
적어도, 죽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 나에게는: 그러길 잘했다.
(물론, 지금 이 시점에, 말이다. 불안감의 노예이자 이래 봬도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은 꽤 강했던 어릴 적의 나에게, 궁금하면 한 번 해봐! 라고 해봤자, 씨알도 안 먹혔을게 뻔하다. 아마 이상한 어른이 이상한 말을 한다고 경찰에 신고당했을지도.)
작년에 정말이지 작정하고 놀지 않았다면, 나는 어쩌면 평생 진짜 노는 방법을 못 찾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러길 잘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나 쉬고 싶다고 쉴 수 있는 건 전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부양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꽤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막상 몸이 멀어지고 나니 굳이 막 엄청나게 찾지도 않더라.
(근데 이렇게 쓰고 보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이런 청개구리 마음이란.)
하지만 가끔 찾아오는 그런 적막함? 이랄까, 고요함? 조차 나는 좋았다.
나는 그동안 아주 소심하게, 또 가늘고 얇게 살아왔던 사람이고, 그건 언제든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태도이기도 했기에.
그게 일이든, 관계든, 인생이든.
나는 오랫동안, 정말로 아주 아주 오랫동안, 원할 때 게임에서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세상에서 퇴장을 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1년이란 시간을 놀면서, 그런 태도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바뀌기 시작했다.
그건 나 혼자 알고 살아가도 큰 무리 없을 일들로 이루어진 변화이지만, 언젠가는 나에게 다시, 또는 지금 현재를 사는 누군가에게, 조금은 흥미롭거나, 쌀쌀한 저녁에 위로가 되거나, 또는 어느 한가한 일요일, 늦은 점심을 배불리 먹은 후 소파에 누워 할 일이 없을 때, 코를 후비며 쓱 훑어보게 되는 일들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여기에 적어두기로 했다.
나의 이야기를 읽고, 별 생각이 들지 않아도 괜찮다.
한심하다는 생각을 해도 (마상은 입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냥 취향이 아닐 수도 있고. 중간에 읽다 그만두는 사람도 있겠지.
그래도 적어도 읽는 동안, 약간은 재미있었으면 한다.
아주 조금은, 당신의 일상과 나의 일상이 겹치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사람도 있네?
와. 진짜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오, 이런 사람도 피자를 먹어?
맞아 맞아, 퇴근 시간 지하철 정말 짜증 나지.
허허. 하하. (감동받은?) 흑흑 (은 좀 무리인가…)
아무튼, 뭐.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
다음 편에는 어떻게 놀았는지, 내게 있어서 ‘노는 척’ 이 아니라 ‘진짜 노는‘ 건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이야기를 한 번 써볼까?
P.S.
사실 난 더 빠릿하게, 정갈한 글을 적고 싶다.
근데 글을 쓰다 보면, 이 생각도 튀어 오르고, 저 생각도 얼굴을 들이민다.
ADHD 약을 먹어도, 손가락을 움직이며 생각까지 워~워~하기에는 아무래도 벅차다.
아무래도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하다.
근데, 그래도 괜찮다.
잘 쓰려고 하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중요하니까.
1년 동안 모든 척을 내려놓기로 한 나에게, 이 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주 너덜너덜한, 처음으로 만들어본 초 비기너 오브 비기너스의 퀼트 같은 글을 보여주겠어.
이렇게라도 주절주절 적다 보면, 언젠가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