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백수가 1년을 노는 방법.
나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인간이란 종이 원래 호기심 빼면 시체라지만, 나는 그중에도 호기심이 왕성한 DNA를 타고난 것 같다. (이건 아무래도 투머치토커이자 얼리어댑터인 아빠에게서 물려받았다는 가능성에 23만원을 건다.)
어릴 때부터 사람보다는 책을 더 좋아하기도 했던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공상을 밥먹듯이 하는 아이였다.
수업시간에는 늘 칠판이나 교과서에 집중하기보다는 창밖을 보며, 왜 구름의 모양은 매일 다를까? 왜 실내화를 오래 신으면 발이 아플까? 쉬는 시간에 얼굴을 박고 잠을 청할 때, 책상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의 원인은 뭘까? (그때만 해도 학교에는 왁스칠 비슷한 것이 된 나무 책상과 의자가 있었고, '걸상'이라는 말을 썼었다) 연필은 과연 끝까지 쓸 수 있는 물건일까? 와 같은 질문들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걸 흥미롭게 지켜보곤 했다.
거기에서 그치는 건 물론 아니었다.
학교가 끝난 후 집에 걸어가면서 읽던 책에서 나온 달에 사는 토끼, 그러니까 다시 말해 외계인(!)들이 정말 존재하는지 궁금해 한참 혼자 맨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본 적도 있고, 한 번은 고구마를 잔뜩 먹고 나서 고구마(속살) 색 똥이 나오는 걸 보고 하늘색 똥을 싸보고자 소다맛 뽕다를 하루에 엄청 많이 먹은 적도 있었다. (결과는 아쉽게도 실패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건 ADHD인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였지만, 나는 앞에서 말했듯이 혼나는 걸 가장 무서워했기에 대부분 나의 공상은 고무 냄새가 가득한 교실의 뒤켠에서 조용히 이어졌고, 나름 투철했던 실험 정신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소심한 스케일 내에서만 행동으로 옮겨졌다.
나이가 더 들어서도 공상을 하는 건 전혀 변하지 않아서 (ADHD 진단을 받은 게 불과 6개월 정도 전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나는 대학에 가서도 강의 시간 도중 언제나 딴생각을 했다. 뭐랄까 아주 딴생각이라기보다는, 화면에 나온 영상이나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에 '왜?'와 '만약에...?'와 같은 의구심이 마치 연상구름처럼 떠올라서 수업 내용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질문과 상상이 많은 만큼 잡생각도, 아이디어도 많았기에 나는 늘 친한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던져대며, 뜻뜨미지근한 반응이 돌아오면 실망하고 바로 다름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거나, 반응이 괜찮으면 수많은 고심과 결정장애 끝에 행동으로 옮겨보기도 했다.
참고로 나의 전공은 영상제작이었는데, 관련된 일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영상 한 편을 만드는 데에는 언제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인력, 그리고 끈질긴 엉덩이와 함께하는 밤샘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떠오르는 아이디어 중, 아마 한 300개 정도 중 하나를 실행으로 옮길까 말까 했달까.
아무튼 요지는, 허무맹랑한 프로젝트를 단순히, 해보고 싶어서 실천해 봤다는 건데, 그중에 마무리까지 무사하게 지은 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게 사실이다.
나의 꿈이 필터링되고 간추려질수록, 내가 시도하려는 용기를 내는 일들은 점점 적어졌다.
그건 무언가를 해내는 데에 정확히 얼마 나의 에너지와 노력,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끈질긴 집중이 필요한지를 알게 되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고생을 해서 만든 결과물이 처음 상상했던 걸작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작품(이라고 당시에는 차마 부르기도 부담스럽게 느껴졌던)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실망스럽기도 해서였다.
그러니까 나는 호기심도, 도전 정신도 나름 충만했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시선에, 또 평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고 있었던, 누구나 주변에 한 두명(또는 스무명)쯤 볼 수 있는 인간이었다.
'하지 마!'라는 말보다, '이게 뭐야?'라는 말을 듣는 게 더 무서웠고, 어렸을 때부터 '잘 그린다'라는 말을 들었던 그림을 보여주면 늘상 듣던 '와!'라는 감탄사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의 존재 가치는 바닥을 뚫고 지구의 핵을 향해 주저앉는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의 완성도가, 반짝임이, 나의 존재 가치와 맞먹는 것처럼.
그리고 보여줄 것이 없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만큼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컸고, 나는 그렇게 해가 갈수록, 해보고 싶은 무언가를 해보고, 만들어보고 싶은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커졌다.
하지만 자신감이 있는 척, 내 (선택하지 않고 무엇이든 흐르도록 내버려 두는 수동적인) 선택에 확신과 견고한 이유가 있는 척을 하는 데에는 소질이 있었는지, 사람들은 묻곤 했다.
'넌 뭐든지 하면 잘할 것 같은데, 왜 각 잡고 하는 게 없어?'
그때마다 나는 웃으며 얼버무렸고, 마음속으로만 대답했다.
'못 할까 봐. 기껏 했는데, 저것밖에 안되냐고 할까 봐.'
누가 그런말을 할지, 또 정말로 그런 말을 들으면 나라는 존재가 정말로 사그러져 없어질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그저, 아주 오래된 두려움.
혹여나 속으로 중얼거린 목소리가 들릴까, 나는 더더욱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하고 싶은 게 별로 없는 척, 삶에 대한 욕심 자체가 별로 없는 사람인 척, 정말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하지 않아도 될 연기를 매일, 참으로 열심히도 했다.
그놈의 자존심.
그놈의 괜찮은 척.
행복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인간의 몸으로 인간 사회를 살아가는 생명체로써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정말 권유하고 싶지 않은 삶의 방식이다.
아무튼 이런 답답한 척들로 가득한 20대가 지나가고, 30대로 접어드는 몇 년간을 코로나가 한창 헤집고 지나가간 자리에는, 정신을 차려보니 더 이상 무언가를 시도하기 싫어하는 내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호기심이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현실'이라는 벽을 만났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어린 시절에만 꿀 수 있던 꿈을 꾸던.
이제는 적당히 퍼석하고, 적당히 진지한 어른이 된.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어정쩡한 완벽주의, 그리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신경다양성 (=ADHD)이 어쩌면 진짜였을지도 모르는, 진짜로 무언가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르는, 환상과 낭만을 이겼다고.
아주 아주 극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마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30대 초반을 맞이했다.
근데, 틀렸다.
그것도 완전히.
1년 동안 쉬는 (=노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는 내가 완벽주의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우선,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대한 생각--그리고 끊임없는 걱정--이 적어졌다.
눕고 싶으면 누웠고, 자고 싶으면 잤고, 먹고 싶으면 먹었다.
게을러 보일까 봐, 식탐이 많아 보일까 봐, 이빨에 고춧가루가 껴있을까봐 걱정하지도 않았다.
밤이든 낮이든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한 번 시작한 드라마는 잠을 스킵한 채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 하기도 했다.
머리를 안 감은 채 5일을 지내는 건 일상다반사였고, 움직임이 적은 날들엔 일주일 넘게 샤워를 안 하기도 했다.
빨래는 내킬 때만, 생각날 때만, 정말로 입을 속옷이 없을 때만 했다. (속옷 없이 며칠을 지내기도 했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강추한다.)
내 마음대로 방을 꾸몄다가, 배치를 바꿨다가, 원상 복귀를 했다가, 마음에 드는 햇빛이 보이는 순간들엔 조용히 집중해 사진을 찍으며, 열린 창 너머로 수요일 한낮의 하늘에 기분 좋게 흐르는 텅 빈 소리를 즐기기도 했다.
아주 아주 가끔, 정말로 오랫동안 안 만난 친구(지인이 아니라, 친구 말이다)를 만나기 위해서 집을 나설 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서두름 없이 천천히 나갈 준비를 했다. 춥지 않기 위해, 덥지 않기 위해, 밥을 많이 먹거나 만남의 종류 및 취지를 위해, 대충 아무거나 골라 집거나, 신경 써서 옷을 고르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그날 입고 싶은 옷을 입었다. 되도록 편하고, 내 눈에 좋아 보이고, 평소라면 안 걸칠 아이템도 가벼운 기분으로 하나 둘 씩 착용해 보았다.
생각해 보면 스스로 옷을 사 입게 된 후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의 시선, 나만의 감촉, 나만의 기분을 위해 시간을 들여 옷을 입어본 거다.
오랫동안 머리를 안 감는 만큼, 머리 손질도 몇 달에 한 번, 내가 완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생겼을 때만 했다.
사회활동이나 뿌리염색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가 아니라, 순전히 내 기분에 따른 이유에 따라.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었고, 몇 년 전 입양 후, 우려와 다르게 (나는 전적이 있는 식물 킬러다)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몬스테라에 물을 주고 잎을 닦으며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반려동물이 없는 나는 가끔 불러볼까 하는 생각에 각각 다른 화분에 사는 몬스테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는데, 한 번 붙이고 다시는 생각을 안 해서 까먹어버렸다.)
어디에도 서둘러 갈 이유가 없다 보니, 길을 걸을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여유가 생겼다.
늘 고개를 앞으로 빼고 어깨를 굽힌 채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습관이 바뀌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대화 내용을 영화 보듯이, 또 노래를 듣듯이 감상했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하늘의 색을 매일 구경했고, 어느 날 비가 온 후, 아파트 단지 위로 쌍무지개가 커다랗게 떴을 때는 흥분해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아주머니들 틈에 섞여 같이 감탄을 하고, 나란히 서서 핸드폰을 허공에 치켜들고 사진을 수십 장 찍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해야 할 일이 없는 날, 그러니까 주말이나 휴일, (학생이나 교직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방학에 할 수도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언젠가 끝날 짧은 휴식과, 끊임없이 매일 반복되는 여유의 맛은 조금 다르다.
전자가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은 느낌이라면, 후자는 맨 밥의 감칠맛을 음미하는 느낌이랄까.
계속해서 이렇게 지내다 보니, 없었던 습관이 생기고, 간단하지만 중요한 루틴들이 생겼다.
우선,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뭔가 백수의 생활과는 이질적인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원래도 아침잠이 많은 편은 아니었는 데다가, 무리를 할 일도 없고 스트레스받을 일도 적으니 자연스레 정해진 시간에 몸이 알아서 깨어났다.
그렇게 일찍 일어나서 딱히 하는 일은 없었다.
그냥 스멀스멀 내키는 걸 하고, 배가 고플 때 밥을 먹고, 또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이른 오후쯤, 산책을 나간다.
아파트 단지 내를 도는 코스가 있고, 아파트 단지 밖, 평평한 뒷길을 걷는 코스가 있었는데, 날씨나 컨디션에 따라 정해서 약 40분 정도를 거의 매일 걸었다.
걸으면서는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듣기도 하고, 나무에 핀 꽃 사진을 찍기도 했다.
어디에도 올리지 않고, 다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순전히 나만의 만족을 위한 순간들이 차곡차곡 앨범에 쌓이는 기분이 좋았다.
산책을 다 하면 집에 와서 손을 씻고, 또 하고 싶은 걸 한다.
또 배가 고파지면 먹고 싶은 걸 생각하고, 배달 음식이 땡기면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시간이 많으니, 쓰레기 봉지가 미어터지기 전에 성실하게 묶어서 버릴 수 있었다.
분리수거를 할 때도 느긋 느긋, 게임을 하는 느낌으로 천천히 했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헹굴 때는 근처 놀이터의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눈에 담으며 꼼꼼히 닦고, 물기도 야무지게 털어준 후 집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내가 생각보다 깔끔한 성격이라는 걸, 나는 이때 처음 알았다.
놀기 전, 혼자 살면서 일을 할 때는 싱크대에 늘 설거지 더미가 쌓여있었다.
한 번은 카레를 해 먹고 팬에 남은 음식물을 버리는 걸 2주 동안 깜빡해서, 구더기가 생긴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있을 정도로 나는 무심코 잊고 지나치는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그냥 그런 성격이려니... 했는데, 언제든 시간이 충분한 세상의 나는 차근차근, 혼자 정한 방식대로 청소를, 또 정리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럴 수가.
나는 거의 매일, 한 번씩은 내 자신의 꼼꼼함에 놀라고, 감격했다.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지금까지는 그렇게, 그냥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왔구나.
그렇다고 내가 모든 걸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잘했다는 건 아니다.
설거지를 할 때 퐁퐁을 잔뜩 묻힌 그릇이나 포크를 건조대 위에 올려두고 분명히 나중에 헹궈야지~ 생각했는데,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야 발견할 때도 있었고, 온 집안에 열심히 청소기를 돌렸는데 잠깐 쉬려고 누우니 누가 봐도 내 것인 머리카락이 정확히 세 올, 그것도 딱 내 시선이 닿는 곳에 살포시 놓인 것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예전 같으면, 분명히 그런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럼 내가 그렇지... 하고, 왠지 실패한 느낌으로 신경을 곤두세웠을 텐데. 여유가 있으니, 그저 어? 하고, 나무늘보의 사촌인 마냥 처언처언히 손을 뻗어 보이는 걸 집어 쓰레기 통에 갖다 넣게 되더라. (아니, 이런 누락을 '사소한 것들'로 부를 수 있는 것부터가, 여유가 나에게 가져다준 선물인 거다.)
못 봤네? 깜빡했네?
뭐, 그럴 수도 있지.
한동안 나혼산에서 자주 봤던 코쿤(원래 아티스트명은 코드 쿤스트라고 한다. 간지...)이 좋아하고, 자주 하는 말이라는 이 한 문장을 내가 나에게 할 수 있을 때까지, 걸린 여유는 바로 이런, 그러니까 유통기한이 없는, 기적처럼 '당연한' 종류의 것이었다.
이렇게 지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니, 한동안 피했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만나기'를 시도할 기운도 조금은 생겼다. (이하 줄여서 불. 만.이라고 적겠다. 근데 하필이면...?)
사실 나는 아직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억지로 만나거나, 가고 싶지 않은 자리에 '다들 모이니까' 가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위와 같은 '제대로 놀기'를 잠정적 중단한 지금도 될 수 있는 한 지양하는 편이다.
생각해 보면 놀기를 시작한 지 반년이 됐을 때쯤, 처음 있었던 '불.만.' 역시 의도를 가지고 시도했다기보다는, 다소 사고처럼 일어난 일이었다.
한창 혼자 매일을 정하고, 잔잔한 바닷물에 떠서 유영하듯 지내는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을 무렵, 일 년 넘게 얼굴을 보지 못한 친구들이 서울에 온다는 소식에, 나는 한 달(어쩌면 그 이상)만의 외출을 준비했다.
위에 적은 대로 시간을 들여 가장 입고 싶은 옷을 고르고, 뿌리고 싶은 향수를 뿌리고, 신고 싶은 신발을 신었다. 마침 만나기로 한 동네에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또 다른 친구 커플이 있었기에, 나는 두 그룹을 다 만나 잠시 근황을 나누고 적당히 헤어져야지... 하는 생각으로, 한 다섯 시간 정도의 외출을 염두에 두고 가볍게 집을 나섰다.
결론부터 적자면, 나는 이틀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선 처음으로 만난 커플인 친구 중 한 명과 근황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물 흐르는 듯한 대화와 서서히 스며드는 반가움에 취해, 원래 만난 장소에서 친구의 집으로 장소를 옮겨 대화를 이어간 것이 시발점이었고, 그 이후에는 일정이 다소 늦어진 친구들 그룹을 만나러 바에 갔다가 생각 없이 참여한 뽑기에서 티셔츠를 타고, 그 티셔츠를 만든 사람과 (바에서 개인 전시회중인 아티스트라고 했다) 그 친구(본 전시회에 다리를 놓아준, 또 다른 단체 전시회를 준비 중인 전 영어학원 강사라고 했다)와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친구 그룹 + 새로운 사람들까지, 모두 자정까지 어울리게 됐던 거다.
후에 막차가 끊겨 택시를 타고 집에 갈까 고민하던 중, 먼저 만났던 친구 커플이 노래방에 간다며 연락해 같이 갈래? 라고 물었고, 나는 노래방에 가고 싶었기에, 같이 갔다.
우리는 약 두 시간 동안 노래를 불렀고, 다시 친구 커플네 집으로 가 아침과 점심을 같이 했다.
그리고 그때 만났던 아티스트와 전 영어학원 강사는 일주일 후 나를 그 단체 전시회에 놀러 오라며 초대했고, (역시 사라지지 않은, 않을) 호기심 반, 의구심 반으로 갤러리에 찾아간 나는 다양한 국적과 문화, 언어와 그림체가 자유롭게 섞여 어우러지는 그 분위기에 반해버렸다. (참고로 전 영어학원 강사는 미국 출신 백인 아저씨고, 단체전에서 몇 번인가 더 얼굴을 본 아티스트의 어머니는 의정부 출신 한국사람, 아버지는 미군이자 흑인이라고 했다. 수개월 간격으로 열리는 단체전의 취지는 내국 아티스트와 외국 아티스트 간, 또 전문적 예술인과 일반인으로서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간의 간격을 좁히고, 누구든 환영받는, 또 와서 같이 예술을 만드는 공간을 넓히는 거라고.)
종로의 고즈넉한 어느 뒷골목에 위치한 작은 카페 겸 갤러리에서 (적어도 오프닝 파티 당일에는), 수백 명이 모여 음악을 듣고 인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단체전이 열리는 것도, 그 안에는 한국어, 영어뿐만이 아니라 불어, 터키어, 러시아어가 오가는 대화가 있다는 것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정말 모든 배경의 누구나 와서 편히 즐기다 가는 공간이 있다는 것도, 정말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만큼 모두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웠던 건, 수백 명의 (그야말로)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곳에서 내가 느끼는 편안함이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원래 북적거리는 곳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고, 쉽게 말해 기가 잘 빨리는 타입이어서 되도록 큰 스케일의 이벤트를 피하는 나는 잊을까 봐 말해두지만 INFJ이고, 6개월 정도 같이 사는 가족, 그리고 아주 친한 친구들(플러스 다니고 있던 병원의 스텝과 의사 선생님들)을 빼고는 대화를 한 사람이 전혀 없어서 조금은 삐걱거릴만한데, 나는 신기하게도 그곳에 금방 적응했다.
초등학교 3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가 바닥의 박스에 놓인 크레용을 집어 들고 전시장 한가운데 걸린 캔버스 천에 공룡 낙서를 하는 동안, 캔버스를 걸어놓은 프레임에 매달아 둔 종이컵에 매직으로 시를 써둔 중년 남성과 대화를 했고, 어딘가 까칠한 표정으로 가죽 재킷을 입은 채 벽에 걸린 그림들을 노려보던 민머리 젊은 청년과 눈앞 추상화 한 점에 대한 진지한 문답을 주고받기도 했다. (물론 나도 아직 청년이긴 하지만 그 청년은 정말 푸릇푸릇, 아기 티를 막 벗은, 청춘청춘한 청년이었다. 알고 보니 그 그림은 그 청년이 그린 거였다. 나는 솔직히 뭘 그린건지, 뭘 봐야 하는 건지, 뭘 느끼길 바랬는지 전혀 모르겠어서 질문들을 여러 가지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단히 진지한 목소리로 또렷하게 읊조리는, '그건 저한테 물어보실 게 아니예요.' 였다.)
곱슬머리를 어깨까지 늘어트린 채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통기타를 치는 가수의 노래를 들었고, 다시 얼굴을 보고 인사한 전 학원 선생이자 본 전시회의 아트 디렉터인 미국인 아저씨가 오늘 선물로 받았는데 어차피 안 마실 거라서 주겠다는 샴페인을 한 병 받아 챙기기까지 했다. (이건 얼마 후 열린 친구 생일 파티에서 친구들과 나눠마셨다. 비싼 거라고 했는데, 솔직히 맛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고마운 마음으로 고이 모셔서 고이 마셨다.)
들고 간 카메라로 이런 장면, 저런 장면을 담기도 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해가 져있고, 남은 사람들은 치킨을 시켜 먹는 중이었다.
갤러리 창문에 붙은 나방을 구경하며 나는 닭다리(였는지 닭날개였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를 뜯었고, 크레용으로 공룡 낙서를 하던 아이가 갤러리 관장님의 아들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시크하고 무심해보이지만 주뱐의 모든 대화를 귀기울여 듣는, 또 핸드폰으로 양상을 만들어 편집하는데 관심이 있는 아이였다.
그렇게 처음 보는 사람들과 처음 가본 장소에서 다시 만나 나눌 수 있을지 모르는 이야기를 편안하게 하고, 서두르지 않는 발걸음으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신기했다.
피곤할 만도 한데.
이전 같으면, 신경이 쓰였을 만도 한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또 내가 하는 말이 충분히 흥미로운지.
나는 그냥, 재밌었다.
또 편안했다.
이것도, 어쩌면 처음이었다.
누군가 나를 보는 시선보다, 그 날카로움이나 흐릿함, 온도 또는 거리보다, 지금 내가, 나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곳에서,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잔뜩 모여 시끌벅적한 곳에서, 그저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훨씬 더 흥미롭고, 중요하게 느껴진 건.
그리고 그 안에 서있는 나는, 흥미롭거나, 대단하거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어차피 그럴 방법도 없었다.
나는, 그냥 놀고 있는, 백수였으니까.
그때까지는 크고 작은 걱정, 불안, 그리고 어느새 짙어진 정체 모를 막막함에 치여 모르고 살았지만,
알고 보니 나는, 어딘가에 그냥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논다'는 건 내게 바로 이런 모습이자, 의미였던 것 같다.
힘을 주지 않고, 특정한 대상을 의식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
그게 혼자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든, 커다란 공간에서든 내 방 안에서든, 익숙한 공간에서든, 새로운 곳에서든.
나는 그냥, 나로 있으면 되는 거였다.
무언가 이루어 세상에 보여주어야 존재할 가치가 있는데, 이룬 것도 없고, 보여줄 것도 없으니 푹 찌그러져 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실은 늘 불안하고 슬프지만 무조건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해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내 색과 모양을 바꿔야만 허용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별일 없고, 누군가에게 보일 일도 없는 나의 하루를 진심으로 즐기고, 아직도 약간은 어설프게 차린 밥을 먹으면서 핸드폰으로 보던 예능(또는 예능신이 따라다닌다는 전 격투기 선수 김동현의 모든 표정)이 너무 웃겨서 밥풀을 튀겨가며 소리 내어 웃고, 반려식물에 애칭을 붙였다가 이름을 붙인 사실 자체를 금세 까먹으며, 밀린 빨래를 삶는 동안 거의 다 떨어진 냉장고의 버터를 사야 할 타이밍과, 집 앞 슈퍼에서 구매가 아니라 인터넷으로 주문을 할 시 무엇을 같이 주문해야 조금 더 맛있는 한 끼를 만들어 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머리에는 까치집이 굳게 자리 잡은 지 오래인 나, 말이다.
예기치 못하게 새롭게 접한 공간에서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된 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훨씬 더 편해졌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나는 가끔 아무런 계획 없이 그 공간에 놀러 가 그곳에서 그림을 같이, 또 혼자 그리던 사람들과 간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연애나 가족,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 펼쳐놓은 스케치북에 누군가 가져다 놓은 색연필과 물감으로 그림을 끄적이기도 했다.
단, 이번에는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그리는 것을 목표로.
그림은 무조건 '잘' 그려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몰랐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그리는 그림이 얼마나 즐거운 경험인지.
그림은 잘 그릴 수도, 못 그릴 수도 있지만, 같이 그리는 그림에는 그 시간, 그 공간에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와, 웃음과, 공감이 있다는 걸.
그렇게 나누고 이어진 마음들은 굳이 이름이 없어도, '보여줄'만 한 직업이나 성취가 없어도, 진짜로 피어나고, 존재하고, 계속 흐르며 서로의 마음을 새로운 온기와 색으로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비워졌다가 그렇게 찰랑이며 채워진 마음에는 어느새 다시 무언가 만들어볼 희망과, 몽글몽글함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단,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몽글몽글함이 충분히 채워졌을 때, 나는 전 영어 학원 선생님이자 현 아트 디렉터이자, 본 단체전을 정기적으로 열려는 목표를 가지고 카드빚을 내어가며 고시원에 거주 중인 미국인 아저씨를 비롯해 늘 그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며 촉촉한 눈길로 사람들을 바라보던 작가님, 또 묵묵하지만 섬세한 말투로 오는 사람들을 엄마처럼 챙겨주는 다른 작가(역시 미국인인데, 마치 자신과의 약속이라도 한 듯 언제나 한 손에는 맥주, 한 손에는 붓, 등에는 가장 좋아하는 야구선수의 번호가 쓰여진 저지를 입고, 같은 번호가 자주 등장하는 자화상들을 계속해서 그린다. 한국에 산 지는 15년+라고.) 아저씨와 같이, 찾아갈 때마다 있는 사람들과 아주 천천히, 또 가볍게, 찍어보고 싶은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내가 하고 싶은 것, 만들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랜만이기도 했고, 아직도 '잘 못하면 어떡하지?' 라는 마음이 빼꼼, 고개를 들 때도 있었지만, 그저 수동적으로 듣거나, 소비하는 입장이 아니라 역시 자신의 것들을 만드는 입장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들은, 물었다.
왜 그게 하고 싶어? 넌 왜 거기에 관심이 있어?
어떻게 만들 거야? 해서 어디에 낼 거야? 돈은 벌 수 있는 거야? 와 같은 질문은 없었다.
그리고 나의 대답에 귀 기울인 질문 뒤에는, 반드시 아래와 같은 문장이 따라붙었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한 번 해봐!
대단한 책임감이 느껴지지도 않고,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단순한 그 말들은 내 마음에 또 다른 온기와 색상을 더해주었고, '그럼 너, 찍어도 돼?' 라고 물으면, '뭐, 어때? 그래!'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같이 사진을 찍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짧은 영상들도 조금씩 녹화했다. (촬영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그야말로 움직이는 영상--동영상을 몇십 초씩 찍어 모았다고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그렇게 나는 소소하게, 정말 대단할 것 없이 소소하게, 찍고 싶은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목표는 잘 찍는 것도, 단기간에 최대한 많이 찍어 많은 공간이나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계속해서, 꾸준히 찍는 것.
나무에 핀 꽃의 사진이나, 쌍 무지개가 떴던 순간 하늘의 모습을 찍어 모으는 것처럼, 어떤 기대나 스스럼없이, 자괴감이나 두려움 없이, 그저 찍고 싶으니까, 계속해서 찍는 거.
우리 사이에 오가는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실없는 말들과 공기를 만끽하며, 편안히 담을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만 주워 담으며.
'잘'이 아니라, '즐겁게'.
밥을 먹고 싶으니까 먹는 것처럼.
날씨가 좋으니까, 또 어제와 달라진 풍경이 보고 싶으니까, 산책을 하는 것처럼.
필요가 없으니 머리를 안 감는 것처럼 가끔은 방치할 때도 있고, 새로운 속옷이 필요해서 빨래를 하는 것처럼 또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기분으로 한꺼번에 밀린 작업을 할 때도 있겠지만, 가끔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소리를 음악처럼 듣고, 때로는 한껏 방바닥에 널부러져 있을 만큼의 여유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
이 글을 쓰는 것처럼, 중요한 건 하는 거다.
누군가보다 더, 또는 어깨뽕이 차오를 만큼의 번쩍이는 '잘'이 아니라, '즐겁게'.
혼자, 그리고 더불어서, 같이.
나는 퍼석해지려던 서른의 초반을 지나가는 즈음에, 완전히 '노는' 1년을 보내며, 배우게 되었다.
아직 신체가 건강하고, 아직 30대인 내 삶의 매 해가 작년 같은 여유로 꽉 차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그런 상태를 계속 원한다고 할 수도 없지만),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하기로 하고, 어떤 것들을 만들기로 하고, 어떤 것들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든 간에,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
그 사실 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일상을 마음껏 살아봤다는 것.
그래서 무얼 하더라도 '노는' 것처럼, 다시 말해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또 즐거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사는 방법을 어느 정도는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P.S.
와. 쓰다 보니 글이 생각보다 더 길어졌다.
뭐 어때. 이런 글도 써보는 거지.
두 편으로 나눠서 써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쓰는 나도 읽는 사람도 (당연하지만 그건 바로 당신이다) 머리가 아프지 않을까, 조금은 긴장했는데 (아무리 여유를 배워도, 자잘한 긴장을 방귀 뀌듯 하는 성격은, 특히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는 무언가를 할 때면, 나 아직 여기 있어...라고 말하듯, 스윽 하고 고개를 내민다), 한 편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어서 기분이 개운하다.
브런치 글은 원래 매주 수요일에 올리는 걸 암묵적인 목표로 하고 있는데, 분명 어제저녁부터 쓰기 시작했고 오늘도 6시간 전에 다시 책상에 앉았건만 쓰다 보니 진짜 엄청 오래 걸려서 하루가 늦게 되었다.
그래도, 괜찮다.
아무튼, 하고 있잖아?
하고 싶으니까, 하고 있다.
오예. 아싸. 멋져. 대단해.
여기까지 이어진 일련의 생각들을 모두 읽어준 당신에게 감사를 전하며.
다음 편에는, 그래서 왜 1년을 쉬게 됐는지,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소 슬픈 이야기라 재미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왠지 삘이 오고 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쓸 지점이야! 라는.
할머니와, 히말라야와, 아이팟이 등장할 예정이다.
기대하시라.
(안 해도 어쩔 수 없지만.)
당신이 어디에 있든, 어떤 하루를 보냈던, 좋은 밤, 새벽, 아침, 점심, 저녁을 보내고 있길.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길 바란다.
나는 현재 집 근처 24시간 카페에 앉아 자판기가 만들어준 핫초콜릿을 마시는 중이다.
맛은 6/10.
다 마시고, 이제 그만 자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