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위기론에 관하여
페이즈 4가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페이즈 1부터 3까지의 "인피니티 사가"의 대성공에도 불구, 주요 캐릭터들의 부재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진입장벽 등 유난히 걱정과 비난의 시선이 많았던 마블의 네 번째 챕터였는데요.
실질적인 성적은 어땠는지, 승패 요인과 앞으로 다가올 페이즈 5와 6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평단과 대중의 의견이 모두 반영된 가장 객관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는 로튼 토마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토마토지수(Tomatometer)는 각종 언론사 에디터들과 평론가들의 평점을 종합한 숫자로 75%를 넘기면 프레시 인증(Certified Fresh), 60% 넘기면 프레시, 그 이하는 로튼으로 분류됩니다. 그 옆에 있는 팝콘 지수(Audience Score)는 표 구매 인증을 한 실관람객들의 평점을 종합한 숫자입니다.
페이즈 4 영화들의 경우 프레시 인증 작품은 네 편, 프레시 두 편, 그리고 로튼이 한 편이었으며 팝콘지수는 90점대 4편, 80점대 1편과 70점대 2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평균 토마토지수는 76%, 팝콘지수는 89%였으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만이 두 지수 모두 90점대를 넘기며 페이즈4의 백미를 장식했습니다.
비교를 위해 영화 갯수가 가장 많았던 페이즈 3를 살펴보면 모든 작품이 프레시 인증(75%+)을 받았고, 89%의 평균치를 기록했습니다. 팝콘 지수는 83%의 평균치를 기록했으며 두 지수 모두 90%를 넘긴 작품은 두 작품이 있었습니다.(어벤져스: 엔드게임 & 스파이더맨: 파프롬 홈)
총 12편의 페이즈 1과 2의 경우엔 한 작품을 제외하고 모두 프레시 인증을 받았고, 로튼은 없었습니다. 토마토지수와 팝콘 지수의 평균값은 페이즈 1이 80%와 78%, 페이즈 2는 각각 81%와 84%를 기록했습니다.
페이즈 1부터 4까지의 평균값의 순위를 매겨보면
토마토지수는 페이즈 3 > 페이즈 2 > 페이즈 1> 페이즈 4,
팝콘 지수는 페이즈 4 > 페이즈 2 > 페이즈 3 > 페이즈 1 입니다.
대충 정리하자면 페이즈 4는 평론가들의 평점이 가장 낮지만, 관객들은 대체적으로 가장 재밌게 본 페이즈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IMDb 평점 역시 높은 순으로 제가 직접 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IMDb 동률은 메타크리틱 점수로 갈랐는데요. 결과는 로튼 토마토와 비슷했습니다. 상당 수의 페이즈 3 작품들이 상위권에 포진해있으며, 전체 30편 중 20위권 안에 있는 페이즈 4 영화는 단 두개에 불과합니다.
https://www.imdb.com/list/ls566293101/
*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표본이 많지 않아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 와이드 릴리즈된 장편 영화 작품 위주로 분석했습니다.
박스오피스 성적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미국 달러기준($) - 전세계 수익 / 북미 수익(MCU 역대 30편 중 순위)
1.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 19억 1630만(3위) / 8억 1411만(2위)
2.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 9억 5577만(11위) / 4억 1133만(9위)
3.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 8억 685만(16위) / 4억 3154만(8위) * 진행중
4. 토르: 러브 앤 썬더 - 7억 6092만(17위) / 3억 4325만(14위)
5. 샹 치: 텐링즈의 전설 -4억 3224만(26위) / 2억 2354만(22위)
6. 이터널즈: 4억 206만(27위) / 1억 6487만(29위)
7. 블랙위도우 - 3억 7975만(28위) / 1억 9610만(25위)
국내 누적 관객수는 마블리 파워로 이터널즈가 그나마 선방했으며, 노웨이홈과 닥스를 제외하면 아쉬운 성적을 냈습니다.
마블민국의 시들해진 관심과 팬데믹을 감안하면 페이즈4는 절대 실패라고 볼 수 없는 양호한 성적이라 할 수 있는데요. 자꾸만 위기론이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페이즈 4는 역대 가장 긴 런닝타임을 자랑합니다.
영화 런닝타임:
페이즈 1: 12시간 24분(744분) / 평균: 2시간 4분
페이즈 2: 12시간 38분(758분) / 평균: 2시간 6분
페이즈 3: 24시간 57분(1497분) 평균: 2시간 16분
페이즈 4: 16시간 16분(976분) 평균: 2시간 19분
여기에 디즈니 플러스 컨텐츠를 합산하면
완다비전(9부작 357분) + 팔윈솔(6부작 324분) + 로키(6부작 297분) + 왓이프(9부작 315분) + 호슨배임(6부작 294분) + 문나이트(6부작 287분) + 미즈마블(6부작 271분) + 아이앰그루트(5부작 25분)+ 쉬헐크(9부작 300분) + 웨어울프 바이 나잇 (52분) + 가오갤 홀리데이 스페셜(41분)
= 42시간 43분(2563분)
976 + 2563 = 3539(분)
총 58시간 59분이 나오게 됩니다. 이는 페이즈 1부터 3까지 모든 작품을 합쳐도 한참 부족한 엄청난 양의 컨텐츠인데요.
영화만 나왔더라면 이 정도로 욕을 먹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문제는 <미즈 마블>이나 <쉬 헐크>처럼 기존 작품들과 톤이 아예 다른 호불호 갈리는 작품이 많아지면서 "마블 스튜디오가 방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페이즈4가 다른 페이즈들에 비해 아주 뛰어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페이즈, 특히 페이즈 1과 2에 비하면 크게 뒤떨어지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저처럼 페이즈 1부터 차근차근 마블 스튜디오의 모든 행보를 봐온 사람이 적다는 것이죠. 현재 팬덤 대부분은 페이즈3, 특히 역대급 흥행을 한 어벤져스 영화들을 보고 유입된 팬들로 구성되었을 겁니다.
페이즈 4는 멀티버스 사가의 페이즈 1 역할을 합니다. . 그런 팬들의 입장에선 당연히 스토리의 스케일이나 캐릭터의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페이즈 1에서부터 겹겹이 쌓아 올린 스토리가 페이즈 3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듯이, 페이즈 4는 페이즈 6을 위한 전초전이자 기반작업입니다. 인피니티 사가보다 훨씬 더 큰 스케일의 멀티버스 사가인 만큼 다져야할 세계관도 크고 소개해야할 캐릭터들도 많은데, 그 모든 것들을 기존과 같은 방식의 스토리 텔링으로 일관한다면 팬들과 일반 관객들 모두 피로감에 쩔어 탈선(탈덕)하고 말 것입니다.
이미 형성된 대형 팬덤 모두를 똑같이 만족시키려 하기보단 차라리 갖가지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새로운 팬들을 유입시키고 보다 다양한 시선과 아이디어로 세계관을 꾸려 나가는 것이 현재로썬 마블의 가장 이상적인 전략일 것입니다. 큰 방향적인 측면에서는 개인적으로 잘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 방식에서 몇가지 문제점은 분명히 있어 보입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다들 입을 모아 말씀하시는 "진입 장벽"입니다. 저는 달리 표현하고 싶은데, 컨텐츠 과잉이 더 맞지 않나 싶습니다.
앞서 보셨듯이 페이즈4에 챙겨봐야할 작품들이 너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봐야 메인 스토리라인을 따라갈 수 있냐? 그것도 아닙니다. 많은 분들께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완다비전>의 연계성을 예시로 진입장벽을 지적하셨는데요. 1년에 두 세번 한달 남짓한 한정된 상영기간 안에 가까운 영화관을 찾아가서 봐야하는 장편 영화와, 집에서 월권 결제 후 바로 시청이 가능한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를 비교하면 당연히 후자가 접근성이 좋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또 다른 플랫 폼의 등장으로 이중으로 컨텐츠를 소비해야 한다는 부담이 큰 듯 한데요.
이는 디즈니 플러스의 출범으로 자체제작 컨텐츠를 대거 뽑아내야했던 디즈니의 욕심이자 당연한 행보입니다. 매년 과열되는 OTT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굳이 이런 것까지 만들 필요가 있나" 싶은 인상을 한번 주기 시작하면 팬들이 대거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진입 장벽이라는 용어를 쓰기 마다하는 이유는 디즈니 플러스 작품 상당 수가 영화들과 직접적인 연계성이 적어 시청하지 않아도 큰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올해는 그랬습니다.
https://www.vulture.com/article/a-vfx-artist-on-what-its-like-working-for-marvel.html
올 8월 VFX 아티스트들이 공개적으로 비난한 마블 스튜디오의 횡포(?)를 다룬 기사들입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행히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디즈니도 이를 인지하고 있고, 작품 갯수를 줄이고 공개 간격을 조금씩 늘리면서 양보다 질에 집중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판타스틱 4>의 개봉일이 2024년 11월 8일에서 2025년 2월 14일로,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가 2025년 11월 7일에서 2026년 5월 5일로 연기되었습니다. <블레이드> 역시 각본의 전면 수정으로 23년 11월에서 24년 9월로, <데드풀 3> 역시 24년 9월에서 11월로 연기되었습니다. 어벤져스 영화를 1년에 두 편 내놓는건 무리라고 생각됐었는데 정말 다행이네요.
언젠가부터 마블 인트로 팡파레가 더 이상 설레지 않게 됐는데, 이는 팡파레가 TV나 노트북 스크린에서까지 들려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무리 요즘이 TV 시리즈 전성시대라고는 하지만, 제작비 규모도 그렇고 큰 스크린에서 오는 감동은 그 어떤 드라마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영화가 드라마보다 우선순위에 있음을 언제나 인지하고, 근 10년간 영화산업 구조를 바꿔놓은 마블 스튜디오인 만큼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절대 안될 것입니다.
또 다른 큰 문제점은 세대교체가 너무 성급하다는 점입니다. 아이언맨이 팝컬쳐 역사상 가장 사랑 받은 슈퍼 히어로이지만, 퇴장한지 이제 갓 3년이 된 시점에 10대 천재 소녀가 그 자리를 대체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블랙 위도우 역시 가장 사랑 받은 여성 히어로이자 할리우드 전통적 강인한 여성 캐릭터의 계보를 잇는 캐릭터이지만 10년만에 나온 솔로 영화에 처음 나온 숨겨진 여동생(심지어 친가족도 아닌)에게 바로 바톤을 넘겨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어벤져스 원년멤버, 오리지널 6의 빈자리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들의 존재감이 컸던 만큼, 팬들은 그들을 떠나보내고 2대 멤버들을 받아들이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초반 몇 년 정도는 이들과 비슷한 능력을 공유하지 않는, 새로운 제1의 캐릭터들로 세계관에 신선함을 더하며 빈자리를 채워나가는 것이 그들을 사랑했던 팬들에게도, 또 그 캐릭터들 자체에게도 정당한 예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을 읽고 기억해주셨으면 하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그건 바로 모든건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토마토 지수가 몇퍼센트이던, 네이버 영화 평점이 몇점이던, 지인들이 재밌다고 하던 노잼이라고 하던 결국 판단은 본인의 몫입니다.
이는 영화 뿐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예술을 즐기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나에게 감흥이 크다고 해서 이것이 진정한 예술이라며 호들갑을 떨 이유나 권리도 없고, 감흥이 없었다고 해서 호평을 한 사람들을 욕하는 것만큼 몰지각하고 의미 없는 행동이 또 없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나의 직감을 믿고, 나만의 기준과 시각을 만들되 타인의 기준과 시각도 존중해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한 시기입니다. 부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휘둘려 보석 같은 작품을 놓치는 일도, 내 평가의 잣대를 들이밀며 남들에게 강요하고 다른 이의 의견과 감상을 무시하는 일도 없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이만 페이즈 4 얘기는 여기 까지 하도록 하고, 다음 글에서는 페이즈 5와 6의 진행 방향에 대해 얘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 빼꼼무비였습니다.
<사진 출처: Wallpaper Abyss, Comicbook.com 외 직접 제작한 통계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