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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빼꼼무비 May 08. 2024

<스턴트맨>(더 폴 가이) 리뷰

데이빗 리치의 시네마, 그리고 스턴트 업계를 향한 러브 레터

1. 제목

우선 국내로 수입되면서 바뀐 제목이 많이 아쉽습니다. 물론 본 작품이 스턴트맨에 대한 헌사와 예찬은 맞습니다만. 


극중 콜트는 실제로 추락사고를 겪기도 하지만 그 결과 인생에서 최저점을 찍고 명예마저 나락으로 떨어진, 몸과 마음에 모두에 큰 상처를 입은 사람입니다. 망가진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해 사랑마저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결국 사랑을 지켜내는 굉장한 로맨티스트이자 어마어마한 근성을 가진 남자이죠. 


원제 "더 폴 가이" 는 큰 낙상사고를 겪은 스턴트맨으로 낙인 찍히며 영화판에서 붙여진 별명임과 동시에, 결국엔 몇 번이고 추락해도 다시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는, 말 그대로 "추락 전문가"인 전문 추락인(人) 콜의 캐릭터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 돌고 돌아 몇 번이고 부러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서서 어떻게든 촬영을 이어나가야 하는 스턴트맨의 숙명과도 맞닿아 있는 꽤나 의미 깊은 제목이라고 생각됩니다. 발음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스턴트맨>보다 더 각인되기 쉬운 제목인 것 같은데 굳이 바꾼 점이 잘 이해가 가진 않네요. 


2. 엄지척!

위험천만한 스턴트를 해낼 때마다 무사하다는 의미로 스턴트맨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것은 흔한 관례입니다. 하지만 조디 감독이 "Stunt Guy Bullshit" 이라고 할만큼 그들이 세운 엄지는 정말 괜찮아서, 아프지 않아서라기보단, 촬영장의 스탭들을 우선 안심시키기 위해 애써 세우는, "나 안아파요" 보단 "나 살아있어요" 내지는 "한번 더 갈 수 있어요" 에 가까운,  표정으로 치면 애써 짓는 썩소에 가까운 수신호일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미국인들도 정말 좋을때보단 살짝 어딘가 분위기가 어색할때, 또는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어썸" 또는 "그뤠잇"을 연호하며 애써 괜찮은척 오버할때 많이 쓰기도 합니다. 

항상 괜찮다며 엄지척으로 조디를 안심시켜온 콜트가 사고 이후 연락할 엄두를 못 냈던 이유는 이번만큼은 정말로 괜찮지 않았고, 차마 엄지를 세워 보일수조차 없는 비참한 자신의 모습과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스턴트맨으로써 가장 큰 실패를 겪었고, 그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도, 또 그런 자신을 누군가가 감당하게끔 하기도 싫었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스턴트와 별개로 안 괜찮지만 애써 괜찮은 척 주변을 안심시키며 꾹 참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으로도 다가와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3. 본격 저격

라이더의 집에서 골든 글로브 트로피로 육탄전을 벌이는 장면, 그리고 오스카가 스턴트맨들에게 상을 주긴 하냐며 따지는 대사 등에서 주요 영화제에서 그들의 노고를 생각해주지 않는 점을 확실히 꼬집기도 합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의상 디자이너까지 챙겨주면서 왜 아직도 스턴트 부문은 없는지 정말 의아하긴 합니다. (그나마 배우조합 시상식 SAG는 스턴트 앙상블 부문이 있습니다만) 

이름이 직접 언급되기도 했지만, 굳이 빌런 캐릭터의 이름을 "톰"이라 지으며 모든 스턴트를 직접 소화한다고 큰소리 치는 모습은 톰 크루즈를 향한 의도적인 디스였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그보다는 제아무리 톰 크루즈일지라도 일부 장면에선 스턴트 더블을 쓸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쪽에 더 가까운 듯 합니다. 일단 톰 크루즈가 "톰 라이더"보다 인품이 좋긴 하니깐요 ㅎ


4. 리치의 진심 펀치

영화 시작과 동시에 본인의 이전 연출작들의 스턴트 장면들을 보여주고, 록키, 라스트 모히칸 등 수많은 영화 레퍼런스들, 영화 대본 레이아웃으로 꾸며진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 성룡 영화의 시그니처 BTS 엔딩 크레딧같이 외적인 요소들은 물론, 오랫 동안 테크니션을 하다 처음 입봉하는 신인 감독, 프로듀서와 감독 간의 갈등, 주연 배우의 갑질, 각본 집필 과정에서의 고민과 갈등과 같은 내러티브적인 요소들 모두 데이빗 리치가 영화라는 매체, 즉 시네마에게 보내는 진심을 꽉꽉 눌러 담아 보내는 러브 레터라는 점은 그 어떤 관객이 보아도 너무나 자명한 것 같습니다. 

2019년 SDCC 마블 스튜디오 패널

그리고 언젠간 꼭 유명 SF 프랜차이즈의 속편 또는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로 샌디에이고 코믹콘(SDCC)의 H홀에서 수천명의 팬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을 듣는 것이 그의 꿈 중 하나라는 확신도 들게 합니다.


5. 그럼에도 단점은 있었으니

3막 액션 씬에서 스턴트맨 어셈블! 느낌의 연출이 살짝 오그라드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스턴트 업계를 향한 사랑과 헌사가 듬뿍 담겨있는데, 스턴트맨 크루 전체가 힘을 합쳐 권선징악을 하는 전체적인 시퀀스 자체가 약간 투머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분명 감독 본인도 자각했겠지만 개의치 않고 있는 힘껏 사랑을 쏟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2막에 페이스가 살짝 죽는 느낌이 있는데, 한창 사건을 파헤치다가 갑자기 중간에 촬영장으로 돌아가면서 리듬이 한 박자 느려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 1시간 45분쯤으로 줄일 수 있는 여지가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결코 지루한 영화는 아닙니다. 


6. 총 평

가벼운듯 하지만 캐릭터 빌딩이 탁월하고, 과하지 않고 딱 센스 있는 유머가 일품인 전형적인 데이빗 리치표 썸머 블록버스터입니다. 무려 오스카 후보 세명과 전직 어벤져, 그리고 와칸다 부족장을 데리고 이런 "대놓고 쓰는 사적인 러브레터" 와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데이빗 리치 감독의 지위와 명성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바벤하이머 어게인

아주 심오한 사이코 스릴러는 아닐지라도 웰메이드 슈퍼(안티) 히어로 영화, 10억불 넘게 벌어 들인 대형 프랜차이즈의 스핀오프 등 풍부한 경험과 재능으로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하는 작품을 꾸준히 만들 수 있는 액션 전문 감독으로써 커리어의 정점에 서 있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딱 요즘 넷플릭스 영화같다는 일부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이토록 B급 오글감성 뿜뿜하는 웰메이드 액션로맨스 영화는 언제든지 환영하는 바입니다. 솔직히 라이언과 에밀리의 케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는, 귀엽고 웃기고 재밌고 나름 감동도 있는 썸머 블록버스터로써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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