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덕후 제임스 건의 "진심 펀치"
이번 <슈퍼맨>은 모두를 위한 영화는 아닙니다.
애초에 모두를 만족 시킬 운명을 타고 태어난 작품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다만 원작 코믹스의 감성과 슈퍼맨의 존재 가치를 가장 생생하게 살리고, 새로운 DCU의 기틀을 마련하며 78년작 리처드 도너의 오리지널 <슈퍼맨> 시리즈의 현대적 재해석이 가장 큰 목적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모든 목표들을 완벽하게 수행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성공적인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이번 제임스 건의 <슈퍼맨>은 근래 들어 할리우드에서 보기 힘든 감독의 "진심"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시네마에 대한 헌사였다면, 이번 <슈퍼맨>은 코믹스에 대한 자신의 헌사라고 밝혔던 만큼, 지금껏 그 어느 코믹북 영화보다도 가장 만화책스러운 작품입니다.
물론 그런 측면에서 다소 과장되거나 허황되고 엉뚱한 부분도 분명 존재하지만, 묵직한 감정선과 클래식한 감성으로 우직하게 밀어 붙이는 제임스 건의 혼이 담긴 "진심 펀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슈퍼맨
제임스 건은 가장 인간적인 슈퍼맨을 만들고자 했고, 그걸 연기하기엔 코렌스웻이 최고의 초이스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최고의 슈퍼맨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최애가 되기엔 관객들과 호흡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죠. 헨리 카빌과 비교하자면 카빌은 "신"으로써의 슈퍼맨에 최적화된 캐스팅이고, 코렌스웻은 "인간"으로써의 슈퍼맨으로써 최적 캐스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로이스 레인
사실상 "슈퍼맨과 로이스"라고 붙여졌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로이스의 분량이 큽니다. 그러나 워낙에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잘 그려졌기 때문에 단점보단 장점으로 작용하는데요. 관객들도 로이스에게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야 슈퍼맨에게 더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만화책에서 튀어 나온 듯한 로이스의 강인한 캐릭터성에 레이첼 브로스나한의 탁월한 연기력이 더해지며 현대적 여성상에 가장 부합하면서도 원작의 매력을 고스란히 살린, 가장 이상적인 영화 속 히로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 이상 슈퍼맨에게 목숨을 빚지지 않고 독자적인 미션을 해나가는 로이스의 당찬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슈퍼맨과 로이스의 로맨스가 정말 유기적이고 아릅답게 그려집니다. 제임스 건 작품을 통틀어 로맨스가 가장 예쁘고 아름답게 표현된 작품이라 자신 있게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나머지 캐릭터들
로이스를 제외하더라도 렉스 루터, 저스티스 갱, 메타몰포, 이브, 엔지니어, 울트라맨 등 확실히 등장 인물들이 많긴 합니다. 예고편 공개 당시 번잡스럽고 정신 사납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었는데요. 다행히 걱정 만큼 난잡하진 않았고 딱 새로운 세계관 세팅에 필요한 만큼이었다고 생각 됩니다. 모든 캐릭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 하는 편이며 낭비되는 캐릭터가 적고 스토리에 잘 녹아든 덕에 꽤나 정돈된 느낌을 주었습니다.
특히 "미스터 테리픽"은 말 그대로 "테리픽"한 캐릭터입니다. 이 캐릭터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음에도 그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되었는데요. 로이스와 슈퍼맨과의 케미스트리도 상당히 준수하며, 근래 코믹북 영화에서 본 가장 매력적인 지능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들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특히 명백하게 욘두를 오마주한 한 액션 신은 제임스 건이 연출한 액션신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인상적입니다. 나머지 갱들인 그린 랜턴(가이 가드너)와 호크걸도 상당히 매력적으로 뽑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도드라지는 제임스 건의 강점
이는 역시 가오갤과 수스쿼에서 갈고 닦은 제임스 건의 장기인 "캐릭터 앙상블"이 최대치로 발휘된 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작품에 비해 유머 밸런스도 양호한데요. 모든 농담들이 다 먹히는던 아니지만 먹히지 않는 유머도 영화의 흐름을 끊어 먹거나 눈에 띄게 도드라지진 않습니다.
또한 그의 뛰어난 미적 감각도 여전합니다. 인물들이 포켓 유니버스에서 탈출하는 장면에서 특히 비주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고,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샷들이 꽤 있었습니다. 컬러 그레이딩 역시 첫 번째 트레일러에서 상당 부분 조정을 거쳐 보다 더 자연스럽고 예쁜 결과물에 이르렀다 할 수 있습니다.
5. 아쉬운 점
장점이 많다곤 하지만 당연히 완벽한 작품은 아닙니다. 가장 큰 아쉬움이라면 슈퍼맨이 워낙 영화 내내 얻어 터지다보니 기억에 남는 슈퍼맨의 액션 신이 없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미스터 테리픽의 액션 신을 제외하면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액션 시퀀스가 잘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액션보다 인물의 내면, 그리고 감정선에 집중했기에 어느 정도 감안해줄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또 하나 작은 불평을 하자면 반복되는 광각 360도 회전 샷들을 너무 남발하면서 물리는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가끔은 정신 사납기까지 하며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질 때도 있다 보니 멀미가 나는 듯한 어지러운 샷들이 다소 있습니다. 가끔은 보다 더 명확하고 한 눈에 들어오게 촬영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시퀀스들이 몇 개 있습니다.
또한 전작들에서 많이 봤던 요소들을 끌고 와 자가 복제를 하는 느낌도 없잖아 있습니다. 우리에 가둬져 유린당하는 캐릭터들, 동물을 이용한 귀여운 장면들, 카이주에 맞서 싸우는 히어로 등 그의 작품에서 숱하게 다뤄진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정도는 그의 "스타일"이라 치부하고 눈감아 줄 수 있는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 앞으로 DCU의 숙제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건 데이빗 코렌스웻의 슈퍼맨이 갓 3년차에 접어든 어린 슈퍼맨이기 때문에, 그를 옆에서 도와줄 동료 히어로들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헨리 카빌처럼 슈퍼맨 하나 만으로 엄청난 무게감을 주는 버전의 슈퍼맨은 아니기 때문에, 새로 캐스팅될 배트맨과 원더 우먼의 설정과 캐릭터성이 앞으로의 DCU의 승패를 결정할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슈퍼맨>의 성공으로 DCU는 이제 막 힘찬 발걸음을 내딛은 것 뿐이며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새로운 지휘 체계 속에서 다채롭게 꾸려져갈 DCU에 기대감을 한 층 끌어 올리기엔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인 제임스 건의 2025년 야심작, <슈퍼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