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장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지난 8월 오프닝 4400만불을 기록, 총 6500만불의 흑자를 기록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워너 브라더스의 새로운 오리지널 호러 영화 <웨폰>입니다.
어느 날 새벽 2시 17분에 총 17명의 같은 반 초등학생들이 일제히 실종되어 한 학부모와 담임 선생님이 진실을 파헤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총 여섯 명의 시선을 통해 전달하는 비선형적 스토리텔링 테크닉을 택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호러적인 요소부터 액션, 서스펜스, 그리고 유머까지 아주 잘 버무린 수작입니다. 2025년은 호러 영화의 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난히 웰메이드 호러 영화들이 많이 나왔었죠. 그 리스트에 방점을 찍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동일한 타임라인에 중첩되는 여러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다보면 반복적이거나 늘어지기 쉽상인데, 다행히 극의 모멘텀을 끝까지 잘 유지하는 편입니다. 작품이 전달하는 메세지나 상징을 차치하고서라도 기본 재미를 확실하게 챙긴 작품입니다.
우선은 굉장히 상징적인 이미지가 많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들, 마약 중독자, 가정 학대, 기생충 외에도 인물들이 날카로운 물체에 의해 손가락을 따인다던가, 피해자들이 양 팔을 벌리고 뛰어다닌다던다 하는 이미지들이 계속해서 보여지는데요.
특히 한 드림 시퀀스에선 2:17이라 쓰여진 기관총이 집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이한 이미지까지 등장합니다. 모두 다 상당히 깊은 의미를 내포할 것처럼 보이지만, 감독 잭 크레거는 이들에 대해 확실한 해답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크레거 감독이 그저 극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의미 없이 소모한 이미지들일 뿐이며 사실상 큰 뜻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습니다만. 저의 의견은 다릅니다. 이 정도로 디테일한 요소들을 집어 넣었다는건 어느 정도 확실한 뜻이 있었을거라 봅니다. 하지만 그걸 밝히지 않는 이유는
1. 관객들의 자유롭고 개인적인 해석을 도모하기 위해
2. 개인적인 사연이라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아서
라고 생각되는데요. 특히 배우들의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이 크레거 감독에게 상당히 개인적인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요. 감독 본인의 트라우마를 극의 서스펜스 요소로 썼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정녕 이 그가 그 어떤 의미도 담지 않았다고 한들 이 작품이 실패한 작품이 되지는 않습니다. <미저리>의 '애니'에 버금가는 '글래디스'라는 공포스러운 캐릭터를 창조해냈고, 영화를 보고 나면 양 팔을 벌리고 뛰어 다니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로 관객들의 뇌리에 강렬한 이미지들을 심었다는 점에서 이미 성공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징적인 요소들에 특정한 의미를 담아내기까지 했다면 이 작품은 명작 반열에 오를 수 있었겠지만, 순전히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엔터테인먼트적 관점에서 이미 성공한 것과 다름 없는 것이죠. 그리고 확실한 해답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그가 나열한 이미지들과 특정 장치들로 관객들이 끊임 없이 그들만의 해석을 내놓게 된다는 점에서 홍보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전략이 되겠죠.
<세븐>이나 <곡성> 같은 야심찬 작품을 만들 수 없다면, 그럴싸한 이미지들로 극의 서스펜스를 확실히 조성하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입니다. 그 장치들을 엮어서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관객으로 하여금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비록 <씨너스: 죄인들> 만큼의 깊이나 야심은 없을 지라도, 속편이나 리부트가 아닌 오리지널 각본으로 이정도 성과를 냈다는 점만으로도 워너 브라더스의 기업적 성공임과 동시에 할리우드 산업 전체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갈된 것처럼 보였던 호러라는 장르가 여러 가지 요소를 가미해 <투게더>, <브링 허 백>, <컴패니언> 같은 참신한 각본들을 통해 장르가 확장되고 재탄생되는 현상을 보니 개인적으로 호러 팬이 아님에도 참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웨폰>의 흥행을 보고 앞으로 많은 스튜디오들이 성공 모델로써 벤치마킹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봅니다. 워너 브라더스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글래디스 이모를 중심으로한 프리퀄 작품이 개발중이라고 하는데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비롯해 상업성이나 수익성에 연연하지 않고 계속해서 오리지널 각본에 전폭적인 믿음과 지원을 보내 할리우드의 숨통을 트이게 해준 워너/디스커버리 대표 데이빗 자슬라브 회장과 영화 스튜디오 대표 마이클 데 루카와 파멜라 애브디에게 기립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