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킴 트리에 <센티멘탈 밸류> 리뷰 및 해석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로 큰 국제적 관심을 받은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신작입니다. 전작에 이어 또 한번 르나테 라인스베가 주연을 맡았고, 이번엔 노르웨이 국민 배우로 불리는 스텔란 스카스가드까지 합세해 이번 시상식 시즌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국내에선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여 티켓팅이 가장 어려운 작품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전작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우아한 연출력을 뽐내는 작품입니다. 촬영이나 분위기는 전작과 매우 흡사하며 심지어 주인공 캐릭터까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속편 또는 외전 같다는 느낌까지 살짝 듭니다. 북유럽 특유의 섬세하고 서정적인 감성으로 많은 관객들을 매료시킬만한 작품인데요.
굉장히 복잡한 감정들을 담담하게 담아낸 작품이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관객도 분명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진부할 수 있는 한 가족의 치유와 재결합의 과정의 표현이 상당히 심층적이며, 무거운 주제임에도 마냥 무겁지만은 않게 섬세한 완급조절을 통해 정교하게 담아냅니다.
스텔란 스카스가드 역시 연기의 대가답게 정교하고 절제된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아직도 저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연기는 바로 HBO 리미티드 시리즈 <체르노빌>과 스타워즈 시리즈 <안도르>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오스카에서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라고 생각됩니다. 또 다른 오스카 후보인 엘 패닝 역시 분량은 크지 않지만 본인의 역할을 잘 수행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잉가 입스도터 릴라스의 연기입니다. 이번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로 오른 만큼 수상에 성공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연기를 펼쳤는데요, 틀림 없이 앞으로 대성할 배우라는 확신이 듭니다.
*다음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원치 않으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 해석
우리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나의 신변을 보호해주는 장소 이상으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물론, 나의 트라우마와 치부들 등 수만가지 빛깔의 감정들을 담고 있죠.
트리에 감독 역시 이 캐릭터들을 빚어낸 아버지같은 사람으로써, 그만의 예술 언어를 통해 이 캐릭터들의 내면에 집요하게 파고들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가 채택한 시각적 언어는 바로 그들이 살던 '집'이라는 공간입니다.
그렇게 '집' 이라는 공간을 통해 인물들간의 화해를 시도합니다. 아버지가 촬영 장소를 집으로 고른 이유도 바로 영화의 연출적인 의도 뿐만 아니라 모든 갈등과 오해가 시작된 그 장소에서만이 치유와 화해의 장으로써 기능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처 투성이의 집이 모든 희노애락을 담고 있지만 한번씩 리모델링이 필요한 법이죠. 얼룩덜룩 짙은 빨강으로 물든 내 마음을 직시하고 수용해 치유의 과정을 통해 하얗게 새로 칠하는 과정도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상처를 덮고 모른척 하는 과정이 아닌, 모든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새로 시작핳 용기와 기회로써 새하얀 페인트로 다시 덧칠을 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 집도 다시 어지러워지겠지만, 그것마저 모두 우리의 삶의 일부입니다. 긴 시간의 흔적들을 고스한히 가슴에 간직하며 계속 나아갈 수 밖에 없죠.
트리에 감독은 예술인이라면 사회적 언어와 예술적 언어 두 가지를 별도로 구사하게 된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극 중 구스타프는 사회적인 언어는 서툴지만 예술적인 언어만큼은 누구보다 유창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노라는 배우로써 캐릭터를 분석하고 구축하는 과정을 좋아한다는 말을 합니다. 자신이 내면을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기 보단 가상의 캐릭터를 통해 더 편하게 마주하고 극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죠. 그말은 곧 자기 자신일때보다 어떤 가상의 캐릭터를 연기할때 더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난 아빠랑 같이 일할 수 없어요" 라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대화가 안통한다, 까다로운 사람이다라고 에둘러서 표현하지만 사실은 부친 앞에서 자신의 깊은 내면을 끄집어내 보여줄 자신이 없어서가 더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녀 역시 그녀의 '예술적 언어'를 통해 아빠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할 준비가 아직 안됐다는 뜻이기도 할테죠.
둘 중 먼저 이해를 시도하는 쪽은 구스타프입니다. 그가 10여년만에 새로운 작품의 각본을 쓰는 과정은 그에게 있어 첫째 딸을 더 이해하기 위한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를 구사하는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딸 아그네스가 완성된 대본을 읽으며 이를 먼저 알아차렸고, 간신히 언니를 설득해 아빠의 진솔한 예술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죠.
둘째 딸의 직업은 역사학자입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시간의 흐름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가족 중 가장 현실과 가깝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사회적 언어와 예술적 언어를 분리해서 살아가는 아빠와 언니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가장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막내로써의 책임감일수도 있지만 언니와의 대화 속에서 그 동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침대방에서 둘은 다시 한번 치유의 시간을 갖는데요. 자신에게 지붕이 되어줬던 언니이기에 성인이 되어 방황하는 언니를 줄곧 보호하려 노력했다는걸 관객은 뒤늦게 알게 됩니다.
이처럼 세 가족은 마치 자생하는 식물 또는 어떤 유기체처럼 서로가 서로를 잇고 치유하며 서로의 상처를 함께 봉합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 모든걸 가능케 하는건 '센티멘탈 밸류'가 가득한 이들의 '집'이라는 공간이었습니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내 마음 속에만 느껴지는 그 '정서적 가치' 와 예술의 힘이 가족을 비로소 다시 하나로 이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이죠.
오늘 개봉한 <센티멜탈 밸류>에 대한 여러분의 해석도 댓글로 남겨주세요!
다양한 특전과 함꼐 즐거운 관람 되시길 바라며,
이상 곰 크루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