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외롭다.
2. 안 맞는다.
3. 졌다.
퇴직을 해서인지, 이른바 다시 태어난다는 갱년기 라서인지, 현실적이고 물리적으로 확연한 노화가 시작되어서인지 이거다 싶은 확실한 것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이 와중에 나를 제일 괴롭히는 건
'내가 혹시 이 영화의 악당인가?'
라는 거다. 영화에서 악당은 초반에는 알기가 힘들다. 꽤나 친절한 영화는 중간쯤에, 골 때리는 영화는 마지막에 뒤통수를 때리듯 악당을 알려준다. 가장 친절하고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가 악당이었다. 모든 모임에서 나는 노력한다. 친절하려고, 좋은 사람이려고, 예쁜 말만 하고 배려하고 밝게 웃고 위로하고..... 헤어지며 내가 이 모임의 악당이었다는 것을 알 때가 있다. 집에 돌아와서 거울을 보며 양치를 하다가 알 때도 있다. 내가 한 모든 말이 가짜이고 거짓이었다.
그래서 나만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내가 최소한 지독한 악당은 아니라는 증거
1. 나는 외롭다. 연대하지 않는 악당들은 힘이 없다. 그냥 특이한 놈인 거다.
2. 우린 안 맞는다. 최소한 그도 나도 서로로부터 자유롭다. 자유를 구속하지 않으면 됐다.
3. 졌다. 내가 악당이어도 졌다면 그것으로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