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곡선을 위해, 가장 시끄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2026 S/S 'Project Origin' 제작 노트

by chillingceremonyclub

Prologue. 적막(寂寞)을 깨는 소음들


칠링세레머니클럽이 지향하는 브랜드의 모습은 언제나 '고요함'이었습니다. 일상의 소란스러움을 잠재우는 '칠링(Chilling)'의 순간, 그리고 자신을 위한 조용한 의식(Ceremony).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요함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의 지난 6개월은 그 어느 때보다 소란스럽고 치열했습니다.


작년 8월, 끓어오르는 듯한 부산의 여름. 가죽 냄새와 기계 소음, 그리고 사람의 고함 소리가 뒤섞인 공장 바닥. 우리의 2026년 봄은, 그 가장 거친 현장의 바닥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 집착: 선(Line) 하나를 찾기 위한 고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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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Line) 하나를 찾기 위한 고투 칠링세레머니클럽 오리진 캠페인 1


우리는 '오리진(Origin)'이라는 단어 앞에 섰습니다.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투박한 역사 위에서, 가장 우리다운 미학을 찾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수십 권의 낡은 도록을 뒤적이며 '집착'했습니다. 조선의 선비가 신던 태사혜, 그리고 서민들의 고무신. 그 오래된 신발들이 가진 유려한 곡선 하나를 찾아내기 위해 밤을 지새웠습니다.


단순히 "옛것을 베끼자"는 게 아니었습니다. 직선으로 뻗은 서양의 구두가 줄 수 없는, 한국적인 '여백의 미'를 현대적인 스니커즈에 이식하는 과정. 그것은 디자인이라기보다,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하는 고고학에 가까웠습니다.


2. 충돌: 이상(Ideal)과 현실(Reality)의 전쟁


우리가 설계한 '역구동화(Reverse Hybrid)'는 공장의 문법을 거스르는 도전이었습니다. 가장 편안한 스니커즈의 어퍼(Upper)에, 가장 권위 있는 가죽 홍창(Leather Sole)을 결합하는 것.


도면을 들고 공장을 찾았을 때, 50년 경력의 장인 선생님은 단호했습니다. "안 된다. 가죽 홍창은 예민하다. 이런 패턴과는 붙을 수가 없다."


그때부터 우리는 '설득'이 아닌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공장으로 출근해 선생님의 작업대 옆을 지켰습니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떨어지는 가죽 부스러기를 치우며, 선생님의 손끝만 바라봤습니다.


"선생님, 한 번만 더 시도해 주십시오. 실패하면 저희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수십 번의 거절, 세 번의 샘플 전량 폐기. 버려진 가죽더미가 쌓일수록 우리의 확신은 오히려 단단해졌습니다. 이 불편하고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는 '결벽에 가까운 완성도'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3. 증명: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KakaoTalk_20260120_161906348_03.jpg 선(Line) 하나를 찾기 위한 고투 칠링세레머니클럽 오리진 캠페인 2


6개월간의 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최종 샘플이 우리 손에 쥐어졌습니다. 투박한 장인의 손에서 건네받은 그 신발은 놀랍도록 우아했습니다.


발을 넣는 순간, 우리는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공장 바닥에서 흘린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았음을.


"무겁지 않다. 그리고 발의 형태에 완벽하게 감긴다 "


가죽 홍창의 묵직한 권위는 유지하되, 착화감은 놀랍도록 가볍고 유연했습니다. 우리가 도록에서 찾아낸 그 곡선이 발볼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습니다. 치열했던 소음의 시간들이 비로소 발끝에서 '완벽한 고요'로 치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Epilogue. 부산 스탠다드 (The Busan Standard)


KakaoTalk_20260120_161906348.jpg 선(Line) 하나를 찾기 위한 고투 칠링세레머니클럽 오리진 캠페인 3


누군가는 묻습니다.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느냐고. 왜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신발을, 굳이 부산의 공장 바닥에서 뒹굴며 만드느냐고.


우리는 답합니다. "시간을 들여 만든 것들은, 쉽게 닳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신발에는 우리의 6개월, 그 치열했던 고투(苦鬪)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가장 시끄러운 곳에서 탄생한, 가장 고요하고 완벽한 세레머니.


이제 그 결과를 칠링세레머니클럽만의 화법으로 세상에 내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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