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棋院)에서 기원(Origin)을 촬영하며

26 S/S 룩북 촬영기 부산의 공간, 낯선 얼굴, 그리고 우리의 묘수

by chillingceremonyclub

Prologue. 1월 23일, 우리가 찾은 완벽한 '기원'


칠링세레머니클럽 프로젝트 기원 4.jpg 칠링세레머니클럽 프로젝트 기원


"기원(棋院)에서 기원(Origin)을 촬영하며, 새로운 판의 대박을 기원(祈願)하다."


이 문장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닙니다. 2026년 1월 23일,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던 날.


우리는 6개월간 공장에서 뒹굴며 완성한 결과물들을 커다란 가방에 담아 부산의 한 공간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번 룩북의 사전 촬영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부산의 수많은 장소들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우리의 '기원(Origin)'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완벽한 '기원(Go Club)'의 모습을 간직한 곳을 마침내 찾아냈습니다.


그곳이 바로 부산 남구에 위치한 '옴싸우스코리아(Om South Korea)'입니다.


이곳은 본래 고즈넉하게 차(Tea)를 즐기는 찻집이자 공간 대여점으로 운영되는 곳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우리는 단번에 확신했습니다.


사장님 부부가 직접 발품을 팔아 수집한 빛바랜 앤티크 가구들,

오묘하게 섞인 동서양의 오브제들이 뿜어내는 묵직한 공기.


단순한 전통 찻집을 넘어선 이 공간 특유의 거칠고 '힙(Hip)'한 에너지가 우리가 찾던 부조화의 미학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수백 번 그렸던 '기원'의 모습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장소.


바로 이곳에서 칠링세레머니클럽(CCC)의 2026 S/S 시즌,

'Project Origin'의 시각적 마침표가 찍히기 시작했습니다.


1. 부산(Local)의 캔버스 위, 낯선 얼굴들의 크로스오버


칠링세레머니클럽 프로젝트 기원 2.jpg 칠링세레머니클럽 프로젝트 기원

칠링세레머니클럽이 브랜드를 전개하며 끈질기게 지켜오고 있는 철학이 있습니다.


바로 '지역 내에서의 자생력'입니다.


단순히 부산에서 브랜드를 시작했다는 상징성을 넘어,

기획부터 생산,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활동까지 이 로컬 안에서 완결되는 사이클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룩북의 셔터를 부산의 거칠고도 섬세한 텍스처를 가장 잘 이해하는 부산 로컬 포토그래퍼에게 맡겼습니다.


하지만 피사체만큼은 타협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기획한 'Project Origin'의 무드를 신발에 오롯이 투영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뉘앙스를 가진 얼굴들이 필요했죠.


우리는 수소문 끝에 직접 서울로 컨택하여,

우리 신발이 가진 선(Line)을 완벽하게 소화해 줄 세 명의 모델들을 부산으로 초대했습니다.


옴싸우스코리아라는 지극히 로컬적인 공간 안에서,

서울에서 온 모델들의 세련된 애티튜드와 부산 크루들의 뚝심 있는 디렉팅이 부딪히는 순간.


그 낯선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폭발적인 시너지는 우리가 증명하고자 했던 '부산 스탠다드(The Busan Standard)' 그 자체였습니다.



2. 부조화의 미학: 가장 진지하게 튕겨내는 '알까기'

칠링세레머니클럽 프로젝트 기원 5.jpg 칠링세레머니클럽 프로젝트 기원

이번 촬영의 핵심 콘셉트는 '부조화가 만드는 위트'였습니다.


우리가 세팅한 공간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바둑 기원입니다.


세상이 무너질 듯 심각하고 날카로운 표정으로 테이블을 응시하는 모델들.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그들이 바둑판 위에서 하고 있는 행동은 다름 아닌 '알까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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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엄숙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가장 가벼운 유희.


이 엉뚱한 반전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는 '칠링(Chilling)'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만든 신발은 부산 장인의 50년 기술력과 홍창이라는 무거운 '헤리티지'를 짊어지고 있지만,

그것을 일상에서 즐기는 태도만큼은 이 알까기처럼 경쾌하기를 바랐습니다.


플래시가 거칠게 터지는 로파이(Lo-fi)한 사진의 질감 속에서,

우리의 철학은 시각적인 위트로 완벽하게 번역되었습니다.


3. 우리의 묘수(妙手), 그리고 첫 착수(着手)


칠링세레머니클럽 프로젝트 기원 10.jpg 칠링세레머니클럽 프로젝트 기원


이 유쾌한 판 위에서 가장 빛났던 건, 단연 우리의 신제품들이었습니다.


바둑의 은유를 빌려 명명된 두 가지 라인업이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묘수(妙手, Sneaker): 6개월간 공장 바닥에서 뒹굴며 완성한 마스터피스.

고무신의 곡선 어퍼에 정통 가죽 홍창을 더한 '역구동화' 스니커즈입니다.

기존 구두의 문법을 뒤집어버린, 그야말로 판을 흔드는 절묘한 한 수(묘수)죠.


착수(着手, Mule): 바둑판 위에 첫 돌을 내려놓듯,

일상에 가볍게 발을 밀어 넣을 수 있는 뮬(Mule) 스타일입니다.


뒤꿈치가 자유로운 형태지만,

칠링세레머니클럽 특유의 구조적인 단단함은 잃지 않았습니다.


부산 로컬 포토그래퍼와의 호흡은 룩북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현장의 열기를 그대로 이어,

우리 신발의 본질인 가죽의 질감과 홍창의 디테일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상세 페이지용 상품 사진(Detail cut)까지 부산 내에서 모든 촬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우리가 목표했던 '완전한 로컬 사이클'가 멋지게 맞물려 돌아간 하루였습니다.


Epilogue. 당신의 일상에 놓일 한 수


칠링세레머니클럽 프로젝트 기원.jpg 칠링세레머니클럽 프로젝트 기원


아침 일찍 옴싸우스코리아의 문을 열고 시작된 촬영은,

짙은 어둠이 깔려서야 끝이 났습니다.


서울에서 온 모델들도,

부산의 스태프들도 모두 지쳤지만,

카메라 모니터 속에 담긴 날 것(Raw)의 에너지를 보며 우리는 조용히 웃어 보였습니다.


기원(棋院)에서 기원(Origin)를 무사히 담아냈으니,

이제 이 새로운 판이 여러분의 일상 속에서 작지만 확실한 대박을 터뜨리길 기원(祈願)해 봅니다.


2월, 칠링세레머니클럽의 새로운 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당신의 발걸음을 위한 가장 완벽한 세레머니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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