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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Nov 17. 2022

글자 먹기

하라다 증후군

쓴 약도 목구멍을 넘기면 쓴 줄 모릅니다.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아픔을 잊게 되지요. 망각이라는 것이 사람이 살자면 반드시 필요한 자기 치유일 겁니다. 그러나 망각은 또 실수를 되풀이하게 합니다. 


 지난여름은 힘든 계절이었습니다. 시력을 잃었습니다. 건물들이 흐느적거리며 생명체처럼 움직이고 행인은 커다란 체구에 조롱박만 한 머리가 올려진 기형으로 일그러져 보였습니다. 두통약으로는 어림도 없는 심한 두통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의사는 망막 군데군데가 부어올랐다며 ‘하라다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치료도 오래 걸리고 재발의 위험이 있는 희귀병이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났습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눕자마자 눈에 약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동공을 확대시키는 약물을 수시로 집어넣고 눈에 빛을 쏘아댔습니다. 검사장비 너머로 의사의 가운만 허옇게 퍼져 보였습니다. 


 하루 두세 번 의사가 왔는데 주치의가 누군지 수련의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나는 하얀 가운에 매달려야만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없다면 속수무책 기도만 올릴 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느 날,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내 눈꺼풀을 벌리는 의사의 손에서 비누 냄새를 맡았습니다. 살짝 코끝을 스쳤다 대기 속으로 사라지는 향기가 내가 쓰는 비누와 같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얀 거품을 헹군 뒤, 살갗에 배인 은은한 비누냄새를 맡을 때처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비누향의 주인이 주치의라는 것도 알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벌려진 눈에 강렬한 빛이 쏘여져 눈물이 흘러도, 코앞에서 철거덕거리며 움직이는 기계가 내 눈을 찌를 것만 같아도 그 향기를 맡으면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창밖 도로를 내다보았습니다. 상가 건물의 간판을 읽기 위해서였지요. 한지에 물감이 번진 것처럼 글자는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사지는 멀쩡하니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지 못하고 TV를 볼 수 없으니 시간을 보내는 게 고문이었습니다.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고 휴대폰 신호음이 울릴 때면 더 답답했습니다. 


 얼마 후 수북한 약봉지와 점안제를 받아 들고 퇴원을 했습니다. 아침마다 받던 의사의 진찰은 없어졌지만 이젠 어머니의 전화를 받습니다. 


 “눈은 좀 나아졌냐?”

 “좋아지고 있어요. 하루아침에 반짝하고 다 보이는 거 아니니까 느긋하게 기다리세요.” 


 회복되지 않을까 봐 걱정이 클 것입니다. 만의 하나 그렇게 된다면 어찌 될까요? 이내 생각을 떨쳐버립니다. 매일 한 움큼씩의 약을 삼키고 있으니 곧 약효가 나타날 거라고 믿습니다.  


 부평가족공원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섭니다. 그런데 건너편의 신호등이 보이 지를 않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불편입니다. 누군가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를 따라 건너야겠습니다. 


 공원 묘역은 한가롭습니다.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엔 읽어야 할 것이 없으니 편안합니다. 휴대폰이 울립니다. 회사에서 온 전화입니다. 내 안부를 묻습니다. 그것보다는 언제쯤 출근할 수 있는지를 묻고 싶을 겁니다. 쉬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누군가 내 업무를 대신하느라 몇 곱절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사직하고 새 직원을 채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일하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몸이 이런데도 직장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참 속상합니다.


 퇴원 후 한동안은 이메일 글자크기를 30으로 확대해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10포인트 크기면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문 읽기에 도전합니다. 꼭 읽고 싶던 기사를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신문을 펼칩니다. 기사에 대한 기대인지 시력에 대한 기대인지 가슴이 떨립니다. 


 아! 탄성 소리기 다 나옵니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글자가 보입니다. 허겁지겁 마구 글자를 읽어 댑니다. 글자도 맛이 있을까요? 글자들을 꼭꼭 씹어먹고 싶습니다. 신문지를 구겨 우걱우걱 씹습니다. 침에 잉크가 녹아 혀와 이가 검게 물듭니다. 무슨 맛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글자에도 맛이 있습니다.   

 

 두 계절이 지났습니다. 재발 위험이 있다는 것도 잊고 발병 이전의 분주한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일상의 소소한 것 모두가 다 의미 있고 소중하더니 이젠 시들해져 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이 옅어지는 건 당연한 이치겠지요. 고통스러운 것을 잊는 게 망각의 순기능이라면 잊히는 것을 기억하는 건 인간의 노력 일 겁니다. 시력을 잃었을 때의 절박함, 회복되어 갈 때의 감사함, 소중한 것과 감사한 것들로 가득 찼던 지난여름을 이제 그만 잊어버려도 될까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일상적인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다급해집니다. 내 곁의 많은 소중한 것들을 알아채기 위해 지난여름의 일을 다시 기억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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