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네", 라는 말의 위로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한번씩 설레게 하는 말

by 정작가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서 듣는 “그대로네”라는 말은 참 이상하다.

화려한 칭찬도 아닌데

괜스레 가슴 한 군데를 톡 건드리며,

마음속에서 작은 나비가 날개 짓을 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 말 속에서 ‘시간이 흘러도 너는 너다’라는

은근한 안도감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지난주, 1년에 한 번 열리는 연말 송년회 같은 업계동문모임이 있었다.
올해는 조금 더 특별했다.
전 총무 이사님의 긴 설득 끝에,

가장 막내에 가까운 나였지만

선배님들의 뜻을 받아 총무이사 역할을 맡게 되었고
이번 모임은 그 역할로서 주최한 첫 행사였다.

그리고 이 모임에서는 한 분의 존재가 늘 중심이었다.

모 유명 글로벌사의 대표직을 10년 넘게 맡고 계신, 업계의 전설 같은 선배님.
동문들 사이에서도 그분은 우리의 존경과 자부심의 상징 같은 분이다.

모임 준비를 위해 부랴부랴 회사를 나와 약속 시간보다 30분 정도 먼저 도착했는데,
이미 그 선배님이 와 계셨다.

대표님의 비서 분께서 6시로 저장해두어 약속 시간을 착각하셨다며 웃으시며 맞아주셨다.

그러고 건네신 한마디.
“그대로네~”
크게 반가움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으시면서, 특유의 단정하고 따뜻한 표정으로.

나도 자연스럽게
“아이구, 선배님도 그대로이십니다.” 라고 답했다.

약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서로의 얼굴과 기운에서 그대로라는 말이 전해질 때,
그 말은 결국
‘잘 있었구나’

‘성실하게 살았구나’

하는 조용한 위로와 반가운 마음으로 느껴진다.

다른 분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단 둘이 나눈 20분이라는 시간.
맥주 두 잔과 트러플 감자튀김을 사이에 두고
건강, 근황, 커리어, 일에 대한 생각, 사람에 대한 마음에 대해 깊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짧았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어쩌면 ‘그대로네’라는 말이 주는 힘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 가운데서도 지켜온 마음의 자리에 대해
누군가가 조용히 확인해주는 순간에서 오는 게 아닐까.

그 온기를 오래 기억하고 싶어, 이렇게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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