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어려운 90년대생 - 나만 이런가,
나는 사실 전화가 좀 어렵다.
전화가 오는 건 반갑지만,
내가 전화를 거는 것은 조금의 용기가 필요하다.
카톡이나 문자 외에도 전화가 필요한 순간은 분명 많아졌는데,
상대방이 통화가 어려운 상황이면 어쩌지,
갑작스러운 전화를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
이런 ‘불필요한 걱정’들이 통화 버튼을 누르기까지의 저항감을 키운다.
어쩌면 우리 90년대생의 환경 때문일지도,
중학생 때 즈음 휴대폰이 처음 손에 쥐어졌고,
그때부터 주로 문자로 소통하는 데 더 익숙해졌다.
전화는 뭔가 급하거나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되었던 것 같다.
“하아... 지금 전화를 해, 말아, 해, 말아”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고민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먼저 전화를 걸어주면
나는 그 성의 자체에 감동하는 편이다.
이 모든 저항감을 뚫고
나에게 통화 버튼을 눌러주었다는 사실에.
(물론 상대방은 안 그럴 수도 있다^^)
특히 연말 클로징의 시기,
편히 카페에서 쉬고 있던 어느 오후였다.
2년 간 함께 일한 일명 낙천가 지점장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휴가 중인 걸 알고 계셨기에, 이 전화가 업무가 아닌 순전한 '연말 인사’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요즘 어떠냐며 자연스럽게 물어보고,
서로의 마음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내년에 여러 어려움과 변화들이 또 있겠지만
'퐈이팅!' 을 주고받았다.
이 전화 한 통으로 한편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래, 나도 이렇게 먼저 전화를 좀 잘하자.’고 다짐하며, 업계 선배에게 한 수 배웠다.
그리고 오늘,
최근 안타깝게 퇴사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던 유난히 큰오빠 같이 듬직하고 입사 직후 의지를 많이 했던, 영업부 동료분께 용기 내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번 울리지도 않아 그분도 애교가 섞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었다.
함께 호흡 맞추며 정말 신명 나게 일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 재미가 가장 피크에 이르렀을 즈음,
그분은 다른 부서로 승진 발령이 났다.
하지만 그 부서의 일은 결국 잘 맞지 않았다고 했다.
함께 일했던 소중한 동료들과 시간이 너무 아쉽지만,
이제는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담담히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허탈함, 아쉬움이 가득 묻어났다.
그 감정이 전해져 나 역시 마음이 좋지 않은 채로
그래도 잘 되신 거라고, 앞으로 또 좋은 길이 열릴 거라고 위로를 전했다.
그리고 그는 내게 정말 많이.. 고마웠다고, 말했다.
묵직한 그의 진심이 느껴지며 훅 눈물이 치고 올라와 황급히 전화를 마무리했다.
소소하게라도 송별회라도 하자고
다음을 기약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했다.
혹시, 그동안 내가 미뤘던 전화는 없을까.
내가 괜히 망설이다 전하지 못하고 놓쳐버린 마음은 없을까.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고마움과 진심을 표현하는 것을 미루지 않기 위해
이젠,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통화 버튼을 누를 것이다.
(제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