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영 Oct 07. 2023

내가 항상 패배하는 이유

평정심을 잃는 순간 승패는 정해진다.

나는 항상 조급하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장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문제가 발생한 순간 끝을 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문제는 해결이 아닌 파국으로 치닿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조급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핑계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7살, 본격적으로 가장의 역할을 시작하면서 나는 꽃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무능한 부모라도 부모라는 그늘 아래 있는 것과 그 밖을 벗어나 사회에 들어가는 건 아주 다른 이야기다.


폭력과 가난에 달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가난과는 다른 형태로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는 꽤나 극한 직업이었다.

당시에는 내가 일하던 지역에 가장 인기 있던 패스트푸드점이라 퇴근 시간 무렵이면 항상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주문하고는 했다. 지금 각종 미디어에 나오는 진상들은 장난일 정도로 많은 진상들이 있었다.


심지어 사기꾼을 만난 적도 있었다.


옆 건물 미용실에서 햄버거 세트와 치킨 메뉴를 전화로 주문했다. 당시에 어플이 없었기 때문에 전화로 예약 주문을 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10만 원 수표만 있다고 거스름돈을 준비해 달라는 요청이 왔고, 잔돈을 챙긴 뒤 옆 건물 2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어떤 중년의 남자가 본인이 직원들을 위해 주문한 거고, 급한 일이 있어 먼저 가봐야 한다고 거스름 돈을 달라고 했다. 돈은 직원들한테 받으면 된다고. 당시에 나는 순진했던 건지 멍청했던 건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잔돈 7만 원가량을 그 사기꾼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를 지나쳐 미용실에 들어가자 모두가 의아한 눈빛으로 날 보기 시작했고, 뭔가 잘못됨을 느껴 계단으로 뛰어갔을 때... 이미 사기꾼은 도망간 후였다.


오랜만에 들어온 배달 주문에 신났던 것도 잠시... 식어버린 치킨과 햄버거를 들고, 없어진 돈 보다 더 무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다시 일하는 곳으로 돌아갔다.


매니저님께 사실대로 말하고, 쌍욕을 먹었다. 할 말이 없었다. 쌍욕을 먹고 피해받은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면 그런 욕은 계속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날 하루종일 매니저님은 날 따라다니며 욕을 했고, 난 저항 없이 욕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당장 방 값과 생활비도 빠듯한데 이 일로 인해 돈을 물어내라고 할까 봐 더 겁이 났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들은 이야기인데, 이미 점장과 매니저들 사이에 사기꾼 이야기가 돌고 있었고, 주의하라고 서로 이야기가 된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르바이트생들한테까지 전달이 안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화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손님들의 어처구니없는 불만에도 참고, 웃어야 했다. 손님에게만 욕먹으면 다행인데, 점장이나 매니저 같은 상위 직급자들도 고등학생이던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난생처음 들어보는 욕을 농담처럼 했다. 처음에는 무서웠고, 나중에는 화가 났고, 결국 나도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고등학생에게 학교를 마치고 고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쉽게 찾을 수 없었고, 버텨야 했다. 그래도 일은 꾀도 안 부리고 열심히 한 탓인지 어른들에게 인정받았고, 그때 높은 직급에 있던 분이 고등학교 졸업 후 입사를 권유했을 정도였다. 혹시나 나를 자를까 봐 마감시간이 지나도 홀청소부터 소스통 청소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추가 근무도 했다.(연장근무 수당 없이! 무일푼으로) 내 아르바이트 시간을 더 넣어달라는 나만의 사회생활이자 아부였다. 그리고 남은 음식을 집에 가지고 가고 싶다는 무언의 요청이었다.


마감업무를 하면 남은 음식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렇게 남은 치킨과 햄버거를 집에 가져가면 언니에게 주었다. 뿌듯하고, 행복했다. 보통 아르바이트를 하면 그 음식은 질려서 잘 안 먹는다고 하는데 난 3년 동안 아주 잘 먹었다. 주말에는 두 끼를 모두 햄버거와 치킨을 먹었다. 행복했다. 지난 글에서 알 수 있지만 내 중학교 때 꿈은 피자와 치킨을 배부를 때까지 먹는 거였다. 어떻게 보면 난 아주 빠른 시일 안에 내 꿈을 이룬 것이다.


고등학생이 생계가 걸린 알바를 하면 억울한 일이 많다. 참아야 하는 일이 많다. 그렇게 난 화가 많아졌고, 의심이 많아졌다. 예민해지고, 뾰족해졌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때 경험이 날 강하게 만들어주었지만, 날 가장 뾰족하게 만들어 주었다.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모든 일에 조급해졌다.

 




성인이 되고 나서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알바를 했다. 나에게는 주말이 없었다. 다 괜찮았다. 그렇게 돈을 조금씩 모아 주방이 없던 고시원을 벗어나 300만 원짜리 원룸으로 이사를 갔다. 곰팡이 천지에 화장실은 야외나 다름없었지만 주방이 생겼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고시원에는 모든 게 있었지만 원룸에는 모든 게 없었다. 근처 중고 매장을 찾아 5만 원짜리 가스레인지를 샀다. 티브이나 세탁기도 저렴하게 구매했다. 행복했다. 중고로 낡고 낡은 것들이었지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렇게 원룸 내에서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며 보증금을 올리고, 조금씩 좋은 상태를 가진 원룸으로 방을 옮겨 다녔다.


그러던 중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에게 정말 작은 돈이 생겼다. 그래도 그 돈이 생겨서 월세방 하나는 마련할 수 있었다. 이사를 가기 위해 원룸 주인 할머니에게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했다. 이삿날 당일 갑자기 월세를 못 받았다면서 그 돈을 보증금에서 차감하겠다고 했다. 우린 월세를 밀린 적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할머니는 우리 돈을 떼어먹으려고 처음부터 작정했었던 것 같다. 미리 말하지 않고, 당장 월세 보증금 내야 하는 당일에 그런 말을 한다? 심지어 한 번도 월세를 내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밀린 적도 없었다. 일처리 하나는 끝장나는 언니가 그동안의 월세 납입 내역을 다 보여주었음에도 보증금을 주지 않겠다고 버텼다.


눈물이 났다. 내가 안 먹고, 안 입고, 쉬는 날 없이 모은 돈인데 어떤 돈인데.... 억울하고 분했다. 화도 내고 빌기도 했다. 하지만 증거가 있음에도 주인 할머니는 돈을 다 줄 수 없다고 했다. 속이 까맣게 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동산 중개인 아저씨가 왜 잔금을 안 보내냐며 연락이 왔고, 사정을 말씀드리니 직접 찾아오셨다. 아저씨가 들어오고 다시 한번 증거를 내미니 그제야 돈을 다 주겠다고 했다. 도움을 주신 중개사 아저씨에게 감사했고, 이런 일이 왜 일어난 건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여자 셋이라서? 만만했나? 우리 돈을 떼어먹어도 된다고 생각했나? 아저씨가 오니까 겁이 나서 돈을 보내준 건가?...


여자 셋이 살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억울하고, 화가 났고, 분했다.

순둥순둥하고, 사람을 잘 믿던 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심이 많아지고, 화가 많아지고, 욕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조그마한 불합리함에도 참지 않았다.

누가 우리를, 나를 무시할까 봐 항상 신경을 곤두세웠다.

누가 보면 드세다고 했겠지만... 이것만이 가족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내가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렇게 아등바등하던 내가 가엾다.


단지 치킨을 많이 먹는 게 꿈이었던 나에게

세상은... 현실은... 무수히 많은 가시밭길을 선물로 주었다.



그렇게 나는 항상 조급하고, 예민하고, 화가 많아졌다.

세상을 살아가는...이겨내가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