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식 준비, 생활기록부 점검, 겨울방학 과제 안내, 겨울방학 안전 교육, 학기말에 처리해야 하는 일에 관한 수많은 메시지 확인, 수업, 밀린 숙제 미제출자 색출, 겨울방학중 학교 프로그램 확인받아 학생들에게 공식 안내, 교실청소지도, 방학중 공사가 있는 경우 교실 가구 옮기기, 쓰레기 버리기 등등...
한겨울이지만 콧등에 땀이 날 정도로 정신이 없는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렇게 짧고 굵은 방학식날 일과를 마치고 아이들의 행복한 마지막 인사를 듣고 드디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어쩐 일 인지 승우(가명)가 쭈뼛쭈뼛 다가와 끄트머리가 너덜너덜해진 엽서를 내밀었다.
"선생님 이거.. 방학 잘 보내세요."
아이는 수줍게 인사하고 떠났다.
승우는 우리 학교 운동부 학생이다.
많은 학부모와 교사들이 가진 편견과는 달리 내가 만난 운동부 아이들은 아주 착실하고 성실했다.
오히려 비운동부 아이들보다 더 수업에 열심히였고 호응도 좋았다.
되려 내가 감사한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 중 가장 무뚝뚝한 편이었던 승우가 내게 편지를 쓴 것이다.
편지의 내용은 간결하지만 따뜻하고 진실했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마음이 담긴 글이었다.
마지막날에 선생님께 주려고 얼마나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는지 가장자리가 지저분해져 있었다.
선생님! 1,2학기 동안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공부실력이 완전히 올랐습니다. 이제 선생님과 이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군요. 선생님과 수업을 하게 되어 행복했습니다. 매일 아침 20분 동안 책을 읽는 시간이 저는 좋았습니다. 저는 책을 읽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책 읽기가 좋아졌습니다. 집중력도 향상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 내년에도 밤하늘초에 있어주세요. 선생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승우 올림-
아직 남아 청소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급히 고개를 돌렸다.
코가 시큰해졌기 때문이다.
승우의 빼곡했던 배움 노트와 순수한 그 아이의 눈빛, 수업 중 늘 우렁찼던 대답들이 떠올랐다.
나는 처음부터 승우가 좋았다.
승우는 인사를 함에 주저함이 없었고 얼굴에 아이 다운 장난기가 가득했지만 장난이라는 이름 뒤에 숨지 않는 마음이 곧은 아이였다.
아이는 1년 동안 부족한 나를 정말 좋아해 주었다.
나는 승우가 나중에 커서 꼭 훌륭한 어른이 될 것이라 장담한다. 여기서 훌륭하다는 것은 운동선수로서의 성공뿐 아니라 인성이 훌륭한 어진 어른이 될 것임을 말한다.
나는 아이의 담임교사로서 그 아이를 보증할 수 있다.
나를 좋아해 주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이미 훌륭한 하나의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교사임이 만족스럽고 행복했던 날이었다.
승우는 정리정돈과미술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어떤 일이든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 하는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