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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 Apr 21. 2024

나도 학부모가 되었다

조금 다를 줄 알았나봐

학부모는 내게 어떤 의미었나 되돌아본다.

나는 학부모가 힘든 대상이었다.

학부모들은 어떤 고민을 하는지에 대한 숙고는 없었다.

그냥 불신 혹은 신뢰라는 밭을 깔고 한번씩 씨앗을 뿌리거나 똥을 뿌린다고만 생각했다.

나는 어떤 밭을 깔았나?

생각해보면 나는 밭을 깔지 않았다.

나는 그 무엇도 깔지 않았고 관찰할 수 밖에 없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그리고 이제야 학교라는 기관에 대해 수요자가 되어보면서 각 기관의 특성을 파악한 것이다.

어린이집은 교사-학생 중심 기관이다. 교사가 주는 사랑과 관심 애정으로만 아이가 기관에 적응하고 생활해간다.

유치원은 그보다 훨씬 학생들간의 관계가 중요한 기관이다.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도 너무 중요하지만 수업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교우관계라는 것이 생기고 단짝친구도 생겨나고 배움도 일어난다. 물론 아직은 똥도 교사가 닦아주고 돌봄도 해주는 돌봄과 교육의 사이에 있는 기관이다.

어떤 기관이 좋다고 말할 수가 없다. 아이의 성향에 따를 뿐. 아이가 애정받는 것을 좋아하고 거기서 행복감을 느끼는 아이라면 7세까지 어린이집에 있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가 배우고 느끼는 거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한다면 유치원이 더 좋다.

학교는, 교사가 학생에게 돌봄을 하는 공간이 아니다. 그래서 약 투약같은 것을 교사에게 부탁해서는 안된다. 아이는 학생이 되었고 교육을 받아 성장하는 곳이다. 교사와의 관계가 좋으면 좋겠지만 교사는 아이의 배움에 관찰자 혹은 인솔자 일뿐, 학교에서의 메인은 학생들간의 관계, 학생들이 배우는 지식과 기능이다.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아이가 학교에 가서야 뼈저리게 느낀다.

학교는 교사가 마치 강사처럼 수업시간에는 강의를 하면서 쉬는시간에 생기는 문제들을 "책임"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있어 주는 곳이다. 그 이상의 사랑이나 열정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그런 내가, 학부모가 되니 희한하게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같은 사랑을 바랐던 것 같다.

주 1회 이상 올려주던 아이의 사진을 내가 기다렸던가.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더 사랑해주기를 기다렸던가.

학부모의 고민을 교사가 알아주리라 기대했던가.

입학 첫날은 자기소개활동을 하기를 기대했던가.

아마도 그랬었나보다. 참 이기적이다. 참 모순적이다.

학부모가 되어가면서 나의 이 간사하고 모순적인 마음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게 되었고 이제는 내 직업에 대한 보다 큰 고찰이 필요하게 되었다.

나는 이일을 좋아해서 열정적으로 하다가 매너리즘에 빠진 적이 없다. 새롭고 긴장했으며 버거웠다.

열정이라기보다 스트레스였고 매너리즘보다 트라우마였다.

이 일을 좋아했던 적이 있긴 했던가?

내가 과연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일일까?

나는 어째서 이 일을 선택했는가?

나는 어떨 때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는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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