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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Oct 21. 2021

체크메이트

<블레이드 러너> 해석

 혹시 유진 구스트만을 아시나요? 유진 구스트만은 인간의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입니다. 그의 이름이 유명한 이유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튜링 테스트란, 인공지능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테스트입니다. 먼저, 인공지능과 대조군 인간, 그리고 인간 실험자를 각기 다른 방에 넣습니다. 실험자는 인공지능과 인간 대조군을 구분하지 않고 1 : 1 채팅을 합니다. 만약, 실험자가 인간과 인공지능을 구분하지 못하면, 인공지능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합니다. 이런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과연 인간과 구분할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서, 복제 인간이라면 복제 인간과 인간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는 관객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과 레플리컨트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는 바로 눈입니다. 인간은 레플리컨트에게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반응으로 레플리컨트를 구분합니다. 주로 동공반사를 확인하는데요. 영화 중반부터 레플리컨트의 눈은 모두 동공에 빛이 반사되어서 독특한 이미지를 연출합니다. 마치 가짜 눈처럼 묘사되는데, 레이첼과 로이, 프리스 그리고 부엉이 모두 그러합니다. 로이가 창조주인 타이렐을 죽일 때도 눈을 터뜨려서 죽이죠. 왜 눈에 대한 언급이 많이 등장할까요? 인간은 눈을 비롯한 감각기관을 통해 경험합니다. 이런 경험들이 모여서 한 인간을 정의하죠. 여기, 22살의 레플리컨트와 인간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레플리컨트는 영화와 같이 넥서스 6 기종으로 수명이 4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정합시다. 인간과 레플리컨트의 깊이가 같을까요? 아닙니다. 인간은 체험을 통해 수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레플리컨트는 프로그램된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하죠. 감각기관의 대표인 눈은 그렇기에 인간과 레플리컨트를 구분할 수 있는 기관입니다. 이것이 데커드와 타이렐 회장의 눈과는 달리 레플리컨트의 눈이 가짜 같아 보이는 이유입니다.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을 살펴보면 데커드의 레플리컨트에 대한 생각 변화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영화 초반, 데커드가 단서를 위해 살로메를 찾아갑니다. 살로메는 블레이드 러너임을 눈치채고 도망칩니다. 데커드가 살로메를 죽이는 순간, 배경에는 마네킹들이 즐비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데커드에게 레플리컨트는 마네킹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레이첼을 만나고, 그녀가 레옹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주는 모습을 보며 인식이 바뀝니다. 프리스와 싸우는 장면의 배경은 유전자 공학 인형들입니다. 멈춘 마네킹들과는 달리 생명을 가졌죠. 레플리컨트가 생명이라는 생각을 가진 데커드의 인식 변화를 의미합니다. 데커트의 인식은 로이가 데커드를 살려둔 장면에서 크게 변합니다. 마지막에 읊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에겐 얼마나 남아있는 걸까?"는 레플리컨트와 다르지 않게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돌아보는 질문이죠. 타이렐 회사의 "More Human than Human"이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성공한 셈이죠.


 데커드의 동료 가프의 종이접기 또한 인식 변화를 나타내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가프는 종이나 성냥을 이용해 동물과 인간의 형태를 만듭니다. 데커드와 브라이언 반장이 대화할 때, 뒤에 앉아 종이로 닭을 접습니다. 이후 가프와 함께 레옹의 집을 수색할 때 성냥으로 인간의 모양을 만들죠. 마지막 장면에서는 레이첼을 살려두고 바닥에 유니콘 모양의 종이를 남기고 떠납니다. 공예는 기성적인 제품을 익숙하거나 기능적인 물건으로 바꾸는 예술 행위를 의미합니다. 종이 접기가 대표적이죠. 이렇게 탄생한 물건은 만든 이로 하여금 쾌감, 성취감을 주거나, 팔아서 금전적인 이익을 보는 데 사용됩니다. 레플리컨트와 완전히 동일한 기능이죠. 버트가 처음에 닭을 접은 이유는 레플리컨트들을 가축 수준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넥서스 6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죠. 레옹의 집을 방문할 때 만든 인간 성냥은 인간과는 구별할 수 없는 레플리컨트를 의미합니다. 마지막 장면의 유니콘은 그들이 인간을 넘어섰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동료인 가프는 레이첼을 살려둡니다. 데커드는 도주하며 가프가 그들을 살려준 이유를 생각합니다.

Gaff had been there and let her live. 4 years he figured. He was wrong. 

 데커드는 레이첼이 4년 뒤에 죽는다고 생각한 가프가 그녀를 살려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은 다릅니다. 필자는 가프가 레이첼이 발전된 레플리컨트임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종이 유니콘이 이를 뒷받침하는데요. 가프는 레옹의 집에서 레플리컨트와 인간을 구별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모두 기억을 가지며, 제한된 시간과 죽음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이죠. 그러나 레이첼은 다릅니다. 나이 들지 않죠. 더 발전된, 상상 속의 동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가프의 유니콘은 발전된 레플리컨트, 레이첼을 상징합니다. 그럼에도 살려둔 이유는 레이첼이 인간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데커드와 가프는 레플리컨트를 인간이 만든 가축 수준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로이 일당을 만나며 인간과 구분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졌고, 레이첼을 통해 레플리컨트가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었음을 깨달았죠. 가프는 레이첼을 죽이면 자신 이상의 존재 즉, 신을 죽이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블레이드 러너>는 체스로 현재 상황을 표현합니다. 세바스찬의 집에 들어온 로이는 책상에 놓인 체스판을 보고 상대가 누구인지 묻습니다. 상대는 로이의 창조주, 타이렐이죠. 로이와 프리스는 세바스찬을 이용해서 타이렐을 찾아갑니다. 세바스찬은 퀸을 내주고 체크메이트로 승리합니다. 이 장면에서 세바스찬의 체스 기물은 나무를 깎아서 만든 새의 모양이지만, 타이렐 회장은 금속으로 만든 인간의 형태임을 주목해야 합니다. 세바스찬과 타이렐은 레플리컨트를 만든 핵심 인물입니다. 각자 넥서스 6의 외형과 내면을 만들었죠. 그들의 체스 기물은 각자의 일을 암시합니다. 또한, 세바스찬이 체크메이트로 체스를 승리한 상황은 레플리컨트가 타이렐을 죽인 상황과 일치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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