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권 IT 저널리스트
한동안 국내에서는 ‘코딩 열풍’이 불었다. 지난 2016년 ‘알파고 충격’ 이후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미래 세대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국가 차원에서 코딩 교육이 강조됐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초·중학교의 코딩 교육이 의무화됐으며 수학 학원을 운영하던 곳들도 간판을 ‘코딩 교육’으로 바꿔 달았다.
하지만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코딩 기술에 대한 시각은 급격히 달라졌다. 생성형 AI는 전문가 수준의 코딩과 프로그래밍 결과물을 순식간에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AI 시대에 코딩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코딩 교육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온 세계적인 교육 정책 전문가다. 그는 2019년 2월 파리 세계교육혁신회의 강연에서 “코딩 교육은 시간 낭비”라며 “지금 세 살짜리 아이에게 코딩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들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면 코딩 기술은 이미 쓸모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변화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다. 2021년 오픈AI의 ‘코파일럿’이 마이크로소프트의 깃허브에서 유료 서비스되기 시작했고, 이후 아마존의 ‘코드 위스퍼러’, 구글의 ‘바드’, 리플릿의 ‘고스트 라이터’ 등 거대 언어모델 기반의 코딩 보조 프로그램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올해에는 자연어 명령으로 인공지능이 코드를 자동 생성하는 ‘바이브 코딩(Vive Coding)’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코딩을 전혀 몰라도 말만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입 코딩’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AI 도구를 활용하는 개발자들은 코드 작성 및 디버깅 속도가 2배 빨라졌다고 말하며, 반복적인 작업의 경우 최대 80%까지 효율이 향상되었다고 주장한다. 빅테크 기업들도 AI 도구를 공개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순다 피차이 구글 CEO는 2024년 실적 발표에서 “신규 코드의 25% 이상이 AI에 의해 작성됐으며, 엔지니어의 검토를 거쳐 승인되었다”고 밝혔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도 “올해에는 AI가 개발의 절반을 수행할 것이며, 그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과거에는 코딩 기술이 디지털 시대의 유망 직업 진입 경로로 여겨졌다. 미국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코드아카데미(Codecademy)’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고소득 직종에 취업할 수 있었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코딩 교육 확대를 고용 증대 정책의 하나로 내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생성형 AI 등장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2024년에는 코드아카데미 설립자조차 “코딩 교육 이수자의 취업 전망은 암울하다”고 토로했으며, 아마존과 구글 등은 수만 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대규모로 해고했다.
코파일럿이나 코드 위스퍼러 등 AI 코딩 도구를 사용한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극명하게 엇갈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는 인공지능 도구로 인해 개발자로서의 미래가 암울해졌다고 느끼는 반면, 일부는 오히려 코딩 보조 기술이 개발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평가한다.
많은 개발자들은 한달에 10달러 수준인 코파일럿을 체험한 뒤, 직업적 불안감을 호소했다. “앞으로 개발자로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전직을 고려한다는 고민도 늘었다. 코딩 초보자도 AI를 통해 손쉽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개발 언어의 변화 속도를 인간은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2023년 개발자 신규 채용 인원을 각각 예년의 절반 이하로 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개발자들은 AI 코딩 프로그램을 환영한다. 이들은 AI가 코드를 자동 추천해주는 기능에 감탄하며, 여러 명이 오랜 시간 걸리던 프로젝트가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AI는 개발자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능력을 강화해주는 ‘도우미’라는 인식이다.
특히 ‘바이브 코딩’은 코딩 패턴과 구조에 익숙한 중장년 개발자에게 유리한 기술로, 손이 느려도 일의 효율을 높일 수 있어 개발자의 직업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평가된다. 이들은 AI 덕분에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AI 코딩 도구를 바라보는 개발자들의 입장은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보는 낙관주의자와 ‘반밖에 안 남았다’고 여기는 비관주의자의 대비와 닮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기술 수용 능력과 성취의 격차가 심화된다는 데 있다.
신기술을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개발자는 코파일럿 같은 최신 도구를 배우고 활용하는 데 소극적이 된다. 반면, 이를 자신의 직무 수행과 성장을 위한 기회로 여기는 개발자는 도구 학습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낸다.
이런 태도 차이는 개발자 집단의 역량 격차를 초래하며, 그 차이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현상이 코딩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직업군에서 AI로 인한 유사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결국 “코딩 교육이 유용하냐, 무용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배울 것인가가 더 핵심적인 문제가 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