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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은 AI에 더 취약한가?

구본권 IT저널리스트

by 뉴스프리존

생성 인공지능 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다른 직군보다 전문직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다.


대표적인 연구결과를 보면 ▲2024년 국제통화기금 보고서 ‘인공지능세대: 인공지능과 일의 미래’ ▲2023년 한국은행 이슈리포트 ‘AI와 노동시장 변화’ ▲2024년 산업연구원 보고서 ‘AI시대 본격화에 대비한 산업인력양성 과제’ 등이 있다.


전문직이 타격을 받는 이유는 전문가가 되기 위한 문턱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생성 인공지능은 글쓰기, 그림그리기, 작곡하기, 추론과 판단 등의 작업에서 전문가 수준의 결과를 내놓고 있다. 과연 인공지능 시대에는 전문직의 일자리가 더 위험하고 불안한 것일까?


힌튼 “영상의학 전문의 양성 당장 중단해야”


전문직의 일자리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사례가 있다. 첨단 의료 인공지능이 영상의학 분야에 끼친 영향이다.


토론토대학의 제프리 힌튼 교수는 딥러닝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전문가로,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힌튼 교수는 지난 2016년 한 행사에서 “영상의학 전문의 양성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5년 안에 딥러닝이 영상의학 전문의를 능가할 것이 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AI 의사 대체론’이 확산됐고 인공지능 기술은 숨가쁘게 발달했다. 제프리 힌튼의 발언 이후, 인공지능 질병 판독 기술은 영상의학 전문의의 능력을 뛰어넘었다. 기술 발달은 힌튼의 예측대로였다.


사진7.PNG 인공지능 연구 성과로,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딥러닝의 아버지'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 교수 (사진=노벨재단 제공)


하지만 현실에서 인공지능이 영상의학 전문의를 대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인공지능 시대에 영상의학 분야는 과거보다 전문의 지원 경쟁이 훨씬 치열해진, 인기 전공으로 바뀌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달했지만, 영상의학 전문의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상의학 전문의는 최신 인공지능을 영상의학 진단에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고, 누구보다 빠르게 관련 기술을 학습해 실제 진료에 인공지능을 투입하는 직업군이었다. 실제로 영상의학 전문의들은 적극적으로 인공지능 관련 지식 습득에 나섰고, 그 결과 AI를 의술에 잘 활용하는 능력을 갖게 됐다.


영상의학 전공의, AI시대에 오히려 인기 전공으로


신기술과 지식으로 인해 작업 환경이 바뀌었는데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정보를 학습한다면 최신 도구나 기술에 밀려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가 가져온 변화를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되어 더욱 역량과 중요도가 커진다. 그것을 빨리 알아내서 자신의 새로운 도구로 삼는 게 바로 진정한 전문가의 역량이다.


사진8.PNG 인공지능을 활용한 영상의학 진단 도구가 발달함에 따라, 영상의학 전공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그래픽=Castle Hill Diagnostics 제공)


영상의학 전문의들이 인공지능에 대처한 방식은 전문가와 전문직이 인공지능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전문가가 되려면 과거에는 특별한 교육과 공식적인 허가·인증, 협회 소속, 경력, 사업장 같은 형식적 요건이 중요했다. 이젠 달라졌다. 앞으로의 전문가에게는 지난날에 요구되던 정형적이고 구체적인 요건보다 내용적이고 실질적인 역량을 갖췄는지가 훨씬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전문가의 정의와 역할이 달라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격증 같은 형식적 기준이나 과거 관행에 머물러 있다면 그 지위는 사라지거나 대체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기술과 변화로 인해 전문가가 대체될 위험이 높은 이유다.


한편 전문가의 역할과 요건이 달라졌음을 알고 자신의 영역에서 생겨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를 적극 수용하고 학습하는 전문가는 지위와 역할이 더욱 굳건해진다. 인공지능이 영상의학 전문의를 위협하는 상황이 닥치자, 앞장서 진료 과정에 인공지능을 도입하고 이를 활용하는 법을 익힌 영상의학 전문의들이 사례다.


AI시대, 전문가의 정의와 역할 달라진다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전문가는 앞으로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 연구기관들이 예측하는 대로다. 하지만 인공지능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전문가의 역할과 가치는 약화되지 않는다. 전문가의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 졸업장, 자격증이나 인허가에 의존하면 위험하다. 앞장서서 자신의 영역과 그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탐지하고, 새로운 상황에 맞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직무를 규정하는 사람이 전문가다.


사진9.PNG 'AI와 노동시장 변화'는 직종별 인공지능 노출 지수를 분석했는데, 이른바 '고소득 전문직'일수록 AI 노출지수가 높아, AI에 대체될 위험이 높았다. (그래픽=한국은행 갈무리)


이는 기술 개발이나 학술 연구, 또는 스포츠 경기에서 모두 통용된다. 전문가가 되어 남들이 하지 못한 의미있는 연구 업적을 세우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서 지금까지 이뤄진 연구의 전체적 지형도를 파악하는 게 먼저다. 기술 개발, 연구, 스포츠에서도 새로운 업적을 만들어내자면 무엇보다 현재의 지형도를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 현재의 지형도는 지금까지 무엇이 밝혀졌고 무엇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인가를 보여준다. 또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알려준다. 첨단기술 개발, 연구의 최전선은 현재 시점에서의 경계선 즉, 한계를 다루는 일이다.


최고의 전문가는 해당 분야에서 가장 기술이 뛰어나거나 탁월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분야에서 경계선과 한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한계는 실수, 실패와 관련이 깊다.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전문가는 아주 좁은 범위에서 일어날 법한 실수란 실수는 모두 경험해본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앤드류 응 “AI 활용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 대체할 것”


딥러닝 연구를 개척하고 구글 브레인을 설립하는 등 인공지능의 4대 석학으로 불리는 앤드류 응 스탠퍼드대 교수는 “인공지능은 사람 일자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사람 역량을 강화하는 도구”라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직업 전체가 아니라 일부 직무들을 대체하기 때문에 사람은 기존 직무들을 인공지능에 위임하고 다른 직무를 개척하고 수행하면 업무 능력이 오히려 증강되고 일자리 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그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전문가가 그렇지 않은 전문가를 대체할 따름이지, 인공지능이 전문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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