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권 IT 저널리스트
인공지능 기술 발달로 고소득과 안정성을 보장받던 일자리와 직무가 속속 기계에 의해 대체되면서 일자리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에 대한 정확한 대응법은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인 전국시대 한비자 ‘오두’편에 나와 있다. “세상이 달라지면 일이 달라지고, 일이 달라지면 대비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世異卽事異 세이즉사이, 事異卽備變 사이즉비변)”는 게 그 정답이다. 다만 과거와 달리, 기술 변화가 워낙 빠르고 새로운 서비스들이 정신없이 이어지다보니, 어떻게 따라잡고 대비해야 하는지가 막막하다는 게 현재의 과제다.
챗GPT, 미드저니, 제미나이, 코파일럿 등 생성 인공지능 서비스가 속속 출현하면서 기존의 직무와 일자리가 AI에 의해 대체되고 고용 불안이 커지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의 대량 해고가 신호탄이다. 수년간 AI 열풍 속에서 빅테크 기업들은 개발인력을 대거 채용했지만, 이들이 개발한 AI 서비스가 본격 활용되자 ‘개발인력 대량 해고’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아마존 등은 주가 상승 등 기업 가치가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만의 사례도 아니다. 챗GPT가 인기를 끌면서 챗GPT에 요령있는 질문을 입력해 유용한 답변을 끌어내는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수억원의 몸값에도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1~2년새 사정이 달라져 불필요한 일자리로 여겨지고 있다. 코파일럿, 퍼플렉시티, GPT4-o 등 개선된 인공지능 모델이 서비스되면서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역할이 사라지는 게 배경이다.
정보사회에서는 이렇게 숨가쁜 기술 변화를 관통하는 철칙이 몇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정보기술의 가장 큰 변화는 얼마나 사용법이 쉬운지에 달려 있고, 결국 가장 사용하기 편리한 기술이 기술 경쟁의 승리자가 되고 영향력이 커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원칙을 일찌감치 파악해서 정보기술 혁명을 일으키고 그 과실을 수확한 사람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다.
빌 게이츠는 지난 2023년 3월 자신의 블로그(Gates Notes)에 “인공지능 시대가 열렸다”는 글을 올려 챗GPT가 자신이 만난 두 가지 혁명적 기술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빌 게이츠는 “나를 놀라게 한 혁명적인 기술을 두 가지 꼽을 수 있는데 첫번째는 1980년 (제록스 팔로앨토연구소에서) 소개받은 그래픽사용자환경(Graphic User Interface)이고, 두번째는 2022년 오픈AI 개발진이 보여준 인공지능(AI) 실험 결과”라며 챗GPT 기술을 극찬했다.
빌 게이츠는 “1980년대 그래픽사용자환경이 윈도와 맥OS 운영체제의 등장으로 이어졌듯, 인공지능 기술이 비슷한 수준의 혁명을 이끌 것이라고 믿는다”라면서 “인공지능이 사람들이 일하고 배우고 여행하고 건강을 관리하고 서로 소통하는 방식을 모두 바꿔놓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빌 게이츠가 자신의 인생에서 혁명적인 기술 두 가지라고 말한 이 기술은 각기 다른 기술이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첫째, 두 기술 모두 모두 마이크로소프트의 적극적인 투자와 상품화로 이어졌다. 제록스 팰로알토연구소(PARC)에서 만난 그래픽사용자환경은 문자 명령어였던 컴퓨터 조작방법을 누구나 아이콘과 마우스를 이용해 손쉽게 바뀌면서 실질적으로 개인용 컴퓨터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존의 도스(DOS) 운영체제를 윈도 운영체제로 대체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인공지능시대를 예견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와 장기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100억달러(약 13조8000억원)를 투자하며 지분의 49%를 확보했고, 그 성과는 AI 오피스 도구 출시와 시장 가치 폭등으로 나타났다.
둘째, 그래픽사용자환경(GUI)와 생성 인공지능(챗GPT) 두 가지 모두 혁신적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기술이라는 점이다. 그래픽사용자환경은 그 이전까지 전문가와 프로그래머들의 도구였던 컴퓨터를 손쉽고 편리한 조작방법을 통해 누구나 다룰 수 있게 만들었다. GUI는 ‘컴맹’이라는 말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오늘날 정보화 혁명, 스마트폰 혁명, 모바일 혁명을 가져온 기술이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 인공지능 도구도 손쉽고 편리한 조작도구라는 점에서 40여년 전의 GUI와 비슷하다. 생성 인공지능 도구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인공지능 개발자 또는 프로그래머, 데이터과학자 등 전문가 일부에 불과했다.
그런데 챗GPT는 누구나 일상 언어를 입력하거나 말하는 것만으로 인공지능을 간단하게 이용할 수 있다. 복잡한 명령어나 기계학습 전문용어를 알지 못해도 생성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완성하고 작곡을 할 수 있게 된 세상인 것이다. 생성 인공지능은 GUI처럼 그 조작방법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소수 전문가들만 조작할 수 있던 인공지능 이용을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전망이다. 즉, GUI도 챗GPT도 쉽고 편리한 사용방법을 통해서 사용자 경험을 완전히 바꿔내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래픽사용자환경이 등장하던 1980년 초에 30~40년 뒤의 오늘날 같은 모바일 혁명, 정보화 혁명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예상하기 어려웠던 것처럼 생성 인공지능 초기인 지금 시점에서 미래 인공지능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전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인공지능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모든 사람의 일상과 사회 구석구석이 인공지능으로 인해서 거대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이나 기업은 특정한 용도나 목적을 머릿속에 그리며 기술을 설계하지만, 일단 개발돼 사용자의 손에 넘어가면 기술의 방향이나 영향력은 개발자의 손을 떠나게 된다. 전문가들의 연구와 정보소통 목적으로 개발된 인터넷이 초기엔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양하게 활용되는 게 현실이다. 사용법이 어려운 기술은 이용자를 늘리지 못하지만, 쉬운 사용법은 결국 모든 사람을 기술 이용자로 만든다. 아이콘과 마우스 방식의 윈도 컴퓨터, 터치 방식의 직관적인 스마트폰 사용법(UI)이 사례다.
챗GPT는 역사상 가장 단기간에 널리 확산된 기술이라는 평가에서 알 수 있듯, 현재 인공지능은 말로 작동시킬 수 있는 가장 편리한 기술이다. 프로그램 언어를 배운 전문가들의 영역이던 코딩에 생성AI가 활용되면서 말로 코딩을 하는 ‘바이브 코딩’이 등장해, 누구나 코딩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리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는 바로 사람(의 말)”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인공지능을 사용하게 되면, 개발자나 법률가, 연구자는 생각지 못한 용도로 기술이 활용되게 된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일자리 불안은 앞으로 닥쳐올 거대한 변화를 고려하면, 아주 작은 물결에 불과하다. 앞으로 점점 더 큰 파도가 계속 몰려올 것이라는 걸 알고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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