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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알려주는 ‘전문가의 비결’

구본권 IT 저널리스트

by 뉴스프리존

인공지능(AI)이 이번엔 수학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수학 얘기만 나오면 주눅이 드는 ‘수포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위안과 상실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소식이다. “아무리 수학을 잘해봐야 인공지능보다 못하니, 수학은 이제 AI에 맡기면 된다”는 체념 섞인 위안이다.


수학 천재보다 똑똑해진 AI


AI는 작년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AI가 수학 실력을 끌어올린 방식은 AI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14.jpg 25년 7월 호주에서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서 참가 선수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문제를 푼 구글 딥마인드의 AI가 상위 11% 성적을 올려, 금메달을 받았다.


구글 딥마인드의 AI 챗봇은 지난달 19일 호주에서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 금메달에 해당하는 점수를 획득했다. 세계 각국의 수학 영재들이 경쟁하는 이 대회에서 AI는 학생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문제를 풀었고, 상위 11%에 들어 금메달 점수를 얻었다. 오픈AI도 자체 테스트 결과 자사 모델이 금메달에 해당하는 성적을 받았다고 밝혔다.


특히 AI가 최고 난도의 수학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도 공개됐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는 “수학올림피아드에 사용한 모델은 수학 전문이 아니라 범용 AI”라고 설명했다. 이 AI 모델은 GPT-5로, 오픈AI의 차기 버전으로 알려져 있다. IT 전문지 ‘디 인포메이션’은 지난달 27일 “GPT-5는 이전 모델보다 글쓰기, 과학 문제 해결, 웹 브라우저 사용 등에서 향상된 성능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오픈AI는 GPT-5 개발 중 다양한 어려움에 봉착했지만, ‘범용 검증기(Universal Verifier)’ 전략을 도입하면서 괄목할 성능 개선을 이뤘다. 이는 AI가 학습 과정에서 스스로 답변의 출처를 조사·확인·평가하는 ‘감사’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방식이다.


전문가의 비결은 ‘감식안’


GPT-5에서 활용된 ‘범용 검증’ 능력은 AI 분야만이 아니라 인간 전문가들의 핵심 역량이기도 하다. 다양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남다른 감식안’을 지닌 사람들이다. 자신과 타인의 결과물을 날카로운 잣대로 검토하고 판단하는 능력, 일종의 ‘매의 눈’이다.


14.png 미국의 정보기술 전문지 '디 인포메이션'은 오픈AI의 AI모델 GPT5가 수학올림피아드 난제를 푼 기술적 배경에는 '범용 검증기'가 핵심적이었다고 보도했다.(사진=디 인포메이션)


최고의 스포츠 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바로 감식안이다. 감독은 전략, 선수, 자금, 리더십 등 다양한 조건을 필요로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건 ‘선수와 경기를 보는 눈’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만들어낸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도 그의 탁월한 감식안 덕분이다.


2001년 1월부터 2002년 6월까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재임한 히딩크 감독이 부임 직후 선수들을 테스트한 뒤 내놓은 평가는 ‘예상 밖’이었다. 히딩크는 “기술은 좋은데 체력이 약하다”고 진단했다. 이는 당시 국내 전문가들이 “한국 선수들은 체력은 좋지만 기술이 부족하다”고 평가해온 것과 정반대였다. 그의 감식안은 정확히 한국 축구의 약점을 꿰뚫었고, 체계적 훈련을 통한 전력 강화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열광하고 신뢰하는 상이나 경연대회 역시 심사위원들의 감식안에 기반한다. 노벨상이나 쇼팽 콩쿠르가 권위를 인정받는 이유도 최고의 성취를 정확히 가려내는 심사위원들의 눈 때문이다.


2009년 시작해 음악 오디션 열풍을 불러일으킨 ‘슈퍼스타K’ 프로그램의 인기 배경에는 재능 넘치는 가수 지망생들의 열정뿐만 아니라, 정곡을 찌르는 심사평을 보태는 심사위원들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윤종신, 이승환, 박진영, 방시혁, 김태원 등 가수와 제작자로 활동하는 오디션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은 방송의 하이라이트였다. 예리한 심사평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가치와 재미를 높여준 동시에 심사위원들이 어떠한 전문성을 기반으로 오늘날의 지위와 명성에 이르렀는지도 생생하게 보여줬다.


AI 시대, 감별력은 누구에게나 필수


이제는 전문가만이 아니라 누구나 감식안을 갖춰야 하는 시대다. AI 때문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 AI가 제공하는 정보와 도구 덕분에 과거에는 전문가만 가능했던 일들을 일반인도 해낼 수 있게 됐다.


15.jpg 오픈AI도 자체 테스트 결과 자사 모델이 2025수학올림피아드대회에서 금메달에 해당하는 성적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특히 생성형 AI는 창의성, 논리력, 자격시험, 정교한 분석 등 고도의 지적 노동에서조차 사람보다 나은 성과를 내고 있다. 그렇다고 AI 덕분에 누구나 쉽게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가 되는 길은 여전히 ‘좁은 문’이다.


그래서 AI가 전문가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전문가가 되기 위한 형식적 장벽은 낮아졌을지 몰라도, 실제 전문가로 활동하기 위해선 오히려 ‘감별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만이 진짜 전문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AI 발달로 인해 진단방사선과 의사가 필요없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가고, 오히려 AI 덕분에 진단방사선 전공 전문의의 몸값이 크게 올라갔다는 사실이 대표적 사례다. 전문가는 강력한 도구의 용도를 잘 알고 적절하게 다뤄, 일반인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AI 기술과 서비스가 등장했다고 해서 전문가와 일반인을 나누는 구분선이 사라지지 않는다.


195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어떻게 해야 뛰어난 작가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헤밍웨이는 “훌륭한 작가가 되려면 ‘헛소리 탐지기(crap detector)’를 내장하고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소설가는 허구를 만들어내는 사람인데, 그 이야기가 거짓으로 보이지 않게 하려면 헛소리 감식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누구나 챗GPT를 이용해 순식간에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에서 ‘감별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학올림피아드에서 AI가 금메달을 따낸 비결이 ‘범용 검증기’였다는 것은 AI시대를 살아갈 모든 사람에게 감별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걸 알려준다. 앞으로 아무리 ‘AI 감별사’가 등장해 감식안을 제공해주더라도, 그 결과에 대한 최종적 선택과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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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프리존(newsfree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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