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권 IT 저널리스트
토목·건축 공사는 설계, 시공, 감리의 공정으로 진행된다. 아무리 뛰어난 설계, 시공사가 수주했어도 감독·평가하는 감리 공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부실 공사가 된다. 엔지니어링 영역만이 아니라, 모든 일에서 감리와 감독이 부실하면 품질을 담보할 수 없다.
누구나 간편하게 고화질 사진을 찍어 온 세상에 공유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사진작가가 되지는 못한다. 차이는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사진작가들이 아마추어 사진동호회나 일반인들의 장비에 비해 특별히 비싸고 뛰어난 장비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촬영 기술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윽한 수묵화와 같은 소나무 풍경을 담아내는 배병우 작가의 사진은 높이 평가받는 예술 작품이다. 인물사진 위주로 작업하는 조세현 작가의 경우에는 수많은 유명인이 피사체가 되기를 고대한다고 한다. 그는 표정과 내면을 섬세하게 잡아내 자연스럽게 인물의 개성과 매력을 드러내는 데 뛰어나다. 누구나 이미지로 소통하는 세상에서 사진작가들이 가진 남다른 능력은 무엇일까? 섬세하고 남다른 감식안이다.
탐구 대상의 특징, 현재 위치, 취약점, 한계 등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감식안은 거의 모든 전문직 종사자들이 갖춰야 할, 무엇보다 강력한 능력이다. 질병 치료에 정확한 진단이 필수이듯, 어떤 분야에서든 정확한 진단의 첫걸음은 감별 능력이다. 자신의 영역에서 미세한 차이를 식별해낼 수 있는 감별 능력을 갖춰야 진정한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 시대에는 감별 능력, 감식안이 전문가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핵심 역량으로 부상하고 있다. 몇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업무 처리 유형이 정형화된 직무들은 빠르게 기계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의 위협 속에서 직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이 각자의 직무에 끼치는 영향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나 기술 변화가 자신의 직무와 관련해 가져오는 크고 작은 변화를 감별해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감식 능력이 필요하다. 챗GPT처럼 자연어로 작동하는 챗봇형 인공지능은 특별한 기술이나 요령이 필요하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공짜로 제공되는 도구는 그 미세한 차이를 감별해내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활용할 수 있다.
셋째, 감별 능력은 직무능력 중에서 최고 기술이다. 기술 발달은 다양한 역할과 업무 가운데 감리와 감독의 역할과 권한을 극대화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설계 및 시공 과정은 점점 기계에 의해 자동화하지만, 최종 단계인 감리·감독은 결국 사람이 맡아 책임져야 한다.
넷째, 사람이 만든 것과 기계가 만든 것이 구별되기 어려운 생성 인공지능 시대는 감별 능력을 최고의 능력으로 요청한다. 생성 인공지능과 챗봇이 24시간 쉬지 않고 방대한 규모로 콘텐츠를 생산함에 따라, 인터넷엔 사람이 만든 것보다 기계가 만들어낸 콘텐츠가 더 많아지고 있다. 점점 더 기계가 만들어낸 가짜가 사람이 만든 것과 구분되기 어려운 세상이 됨에 따라, 둘의 차이를 식별하는 감식안은 어느 때보다 소중해진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대에 갈수록 중요해지는 감별 능력을 어떻게 하면 기를 수 있을까? 과거에는 제도적으로, 관행적으로 정형화한 교육·수련 절차를 통해서 각 분야에서 필요한 감별 능력을 갖춘 전문가를 길러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달라졌다. AI시대에 달라진 감별 능력을 키우는 법으로 몇 가지 구체적인 방법들이 있다.
첫째, 먼저 해당 분야에서 필요한 기본 지식을 익혀야 한다. 인공지능 에이전트와 같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가장 효과적으로 배우는 방법은 직접 써보는 경험이다. 그런데 이는 조작법, 사용법을 아는 것으로 되지 않는다. 딥엘(DeepL)과 같은 자동번역 서비스나 코파일럿(Copilot) 같은 코딩 보조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외국어와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으면 안 된다. 번역 서비스의 결과물과 코딩 보조프로그램이 추천한 코드를 선택해 사용하려면 그 결과물에 오류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산수를 할 줄 모른다면 우리는 전자계산기를 쓸 수 없다. 기계가 잘못된 결과물을 내놓더라도 사용자가 이를 식별할 수 없다면 신뢰하고 쓸 수 없다.
둘째, 기술 사용법보다 기술의 구조와 영향에 대한 이해가 훨씬 중요하다. 과거 전문가는 기술과 지식에 대한 숙련도가 특징이었지만,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 덕분에 기술 사용법은 점점 편리해져서 기술적 숙련도의 중요성은 가치가 떨어진다. 코딩을 배우지 않아도 자연어로 작동하는 코딩 보조프로그램을 쓸 수 있는 현실이다. 감별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술의 특징과 구조에 대한 이해, 향후 발달 방향과 그로 인한 영향을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
셋째, 눈앞의 현상 너머에 있는 배경과 맥락, 의도를 고려할 때 감별 능력을 키울 수 있다. 특정한 문제 해결에 있어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은 주어진 과제를 빠르고 완벽하게 해결하는 것 같지만 한계가 있다. 사람과 달리, 숨어 있는 의도나 배경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다. 사람들은 같은 말이나 행동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곤 한다. 미묘한 차이를 감별해내는 전문가들은 숙련도도 높지만 상황과 의도를 잘 읽어내는 사람들이다. 범죄 프로파일러는 용의자가 말할 때 발언 내용만이 아니라 그의 표정, 시선 처리, 몸짓, 음성 떨림과 높낮이 등 비언어적 행동을 면밀히 관찰해 그 의미를 읽어내는 사람이다.
넷째, ‘암묵지(tacit knowledge)’를 습득해야 한다. 기술의 의도, 배경 등을 통해 전체 상황을 이해할 때 본질적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기계가 따라 할 수 없는 암묵지를 익힐 수 있다.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지식은 과거에 중요했지만, 이젠 인공지능이 가장 잘 처리하는 상황이 됐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기 어려운 능력은 명시화할 수 없고, 그래서 학습하기 어려운 암묵지다. 데이터를 통한 기계학습이 아니라 사람이 오랜 기간에 걸쳐 대상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통해 갖추게 되는 통찰이 암묵지의 한 형태다.
이처럼 AI시대엔 감별능력, 즉 감식안을 갖추고 있어야 AI 서비스를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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