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혼자가 된 뒤, 집을 사기로 결심했다.

by 버치카

설거지를 하며, 출근길 언덕을 오르며, 런닝머신 위를 달리며,

나는 로제의 ‘아파트’를 내적으로 흥얼거린다.


Game start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uh, uh-huh, uh-huh


단지 이뿐인데도 짜릿하다.
어떤 나라에서는 ‘sex’를 외치고, 또 어떤 나라에서는 ‘파티’, ‘모르핀’을 부르짖는다지만,
우리는 ‘아파트’만을 반복한다.
유쾌한 리듬 안에 간절함과 절박함을 숨기고.

이혼을 하자 내게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남편과 함께 가족과도 끊어졌다.
구속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안정감도 무너졌다.
내 마음을 짓누르던 것들이 사라졌지만, 이상하게 허전했다.

나는 다시 기대어 살 수 있는 구조를 바랐다.
그게 내게는 아파트였다.



주거 문제 해결은 내 오랜 숙원과도 같았다.
2018년에 취직하며 반쯤 독립을 시작했던 때, 처음으로 현실을 깨달았다.
내 월급으로는 아무리 아껴도 아파트를 살 수 없다는 것.

그때는 부끄럽게도, 결혼을 번듯한 주거 공간을 얻게 해주는 제도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취직 후 3년 동안 아파트 값은 하늘을 찌르듯 올랐다.

나는 점점 겁이 났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묘연해지고, 수도권에서, 충청권에서도 밀려날 것 같았다.
그렇게 밀려나지 않으려면, 나는 집 있는 남자를 찾아야만 했다.



삶의 문제를 결혼으로 간단히 해결하려 했던 내가,
결혼 첫날 신혼집에서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인과였을지도 모른다.

상대에게는 그 말이 단순히 ‘나 화났다’의 다양한 표현 중 하나였을지 몰라도,
내게는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왔다.
황망했다.


결혼 전의 나는, 최소한 2년 동안은 집주인이 함부로 내쫓지 못하도록 법의 보호를 받았다.
하지만 결혼 후의 나는, 남편의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이혼을 결심하기 전까지는
어떤 모욕도 감내하며 그 집에 남아 있었다.
버텼고, 매달렸고, 집을 끝까지 붙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바람처럼 떠났다.



이혼하자마자 집을 사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모두 만류했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건 좋지 않아.”

특히 부모님의 반대가 거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반대를 마주한 순간
나는 오히려 내 결정에 더 확신이 생겼다.

결혼까지는 부모님이 정해준 길이었지만,
이혼부터는 내가 개척하는 길이었다.
내가 살 곳은, 부모님이 반대하는 길 너머에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내 수중의 돈은 아파트를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대한 문제는 아니었다.
대출이라는 훌륭한 제도가 있으니까.

문제는 지금까지의 내가 지켜온 신념 —
빚을 지지 않는다 — 을 깨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내 손에는 이미 ‘혼인’을 깨버린 성능 좋은 망치가 들려 있었고,
기왕 도구를 든 김에, 구닥다리 신념 따위는 단숨에 박살낼 수 있었다.



퇴근 후 3주는 매일 발품을 팔았다.
공인중개사 여러 곳과 컨택을 하고 집을 보러 다녔다.

그때 나를 이끌었던 수많은 관록의 여인들,
내가 엿보았던 여러 집들.

이상하게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이 거의 없었다.
어떤 집 현관에 선 채, 구겨진 신발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동했다.

내가 지금껏 박탈당해온 평범한 일상이
명명백백한 삶의 흔적으로 그 안에 묻어 있었다.
나는 그런 삶을 가지고 싶었고,
그 삶을 담을 공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디 그것뿐이었을까?


실은, 평범함 너머의 더 큰 행복을 소망했다.

결국 내가 계약한 집은 17평짜리 신축 아파트였다.
푸른 잔디가 깔리고 수목원을 방불케 하는 조경이 펼쳐진 집.

나는 예산을 따져가며 욕망을 줄이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 힘으로 얻고 싶었다.
설령 매달 내야 하는 대출 이자와 원금 상환으로 빠듯해질지라도.

나는 회복할 공간이 필요했다.
깨끗하고 예쁜 집에서 자고 일어나,
꽃과 나무를 보며 매일 산책하고 싶었다.



아파트에 짐을 옮기자마자, 베란다 창문을 열고 나는 외쳤다.
“자유다.”
비록 내게 텅 빈 아파트뿐이었지만.

결혼의 와중에 친구들도 잃었고,
연인도, 썸남도 없다.
마음을 나눌 이도 없다.
취미도 없고, 도파민 거리도 없다.
마음을 둘 목표가 없다.

아주 다행히, 밥벌이는 한다.
고작 그 수준이지만,
집을 얻었다는 이유로 행복을 꿈꾸기 시작했다.

조금 설렌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남편도 없고, 부모님도 없다.

나는 이제
내 삶에 대한 주도권을 100% 회복했다.


작가의 이전글운동화 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