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선 교차로에서

이혼 후, 건너지 못한 감정

by 버치카

나는 살기 위해 강제로 갓생을 시작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달걀 두 개와 사과 반쪽을 먹었다.
남들보다 한 시간을 더 일찍 출근해 하루를 준비했다.
퇴근하고 나서는 한 시간 가량 운동을 했다.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내가 새롭게 전문성을 가지고 싶은 분야를 한 시간 더 공부하다가 잤다.
그렇게 아무 빈틈 없는 하루를 보내며 내가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고 되뇌었다.



한 가지 소극적인 분야가 있다면, 사람들과 어울리기였다.

아무에게나 연락해 나 이혼했다고 털어놓으면서 울고 싶기도 했고,
또 아무 남자나 술 마시고 품에 안기고 싶기도 했다.

그랬어야 했나?
난 아직도 정답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상처 입은 야생 짐승이었다.
산 깊이 들어가 혼자 몸을 누이고,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인간 사회는 상처 입은 채로 나갔다가는 또다시 공격의 대상이 되는 곳이었다.



괜찮아지고 있나?
그런가?



그래도 밥벌이는 해야 했기에 회사를 나갔다.
문제없이 지내야 했기에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가끔은 퇴근 후 밥을 먹기도 했다.

동료들은 나를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떤 일도 참고, 넘기고, 웃고.

하지만 그들이 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선하지만 어딘가 딱한, 큰 일을 맡기기에는 조금 허술해 보이는 사람.

나는 이상하게도 사회성은 없으면서 내 평판에는 민감한 편이었다.
점점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말을 잃어갔다.



그렇게 차곡차곡 덮은 감정들이
이상한 삶의 틈새에서 폭발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헬스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의 8차선 도로에서.


검은 밤.
인적이 많지도 적지도 않은 횡단보도 앞.

차들이 굉음을 내며 달릴 때 나는 알았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울어도 내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거라는 걸.

갑자기 내 몸 전체가 진동하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울음통이 쪼여들어 목에서 으으으, 이상한 신음 소리가 났다.

나는 슬퍼하는 걸까, 화를 내는 걸까?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죽을 거라고.
죽어서 귀신이 될 거라고.
그래서 널 따라다니면서 네 인생에서 원하는 건 죄다 망치겠다고.

그때 나는 정말 귀신이 된 것 같았다.

원하는 대로 떠나왔고
행복한 인생을 살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끊임없이 과거로 회귀했다.
분노를 쥐고, 증오하고, 원한을 품는 데 인생을 허비했다.



파란불이 바뀌고 멈춰 있던 사람들이 다시 생을 획득한 것처럼
더듬더듬 움직여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나는 그 무리에 낄 수 없어서
보도블록 끝에 세워둔 볼라드에 몸을 기댄 채 떨기만 했다.

고작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에 실패한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감정에 휩싸인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감정의 주도권을 되찾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냉장고 앞에 보드판을 붙이고 썼다.

용서.

하지만 그 뒤에는 물음표도 붙였다.

용서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혼을 하고 나면
‘그렇게 하지 말 걸 그랬지’라는 후회가 이어진다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말했어야 했는데.
내가 한 대라도 더 때리고 왔어야 했는데.
그 자식 내가 죽이고 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홀로 남아 뜨겁게 분노를 발했다.



‘감히, 나한테…’라고 읊조리며
꺽꺽 울음을 토해내는 나를 달랠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내가 나서야 했다.

‘아이고, 그래. 네 스스로가 그렇게 끔찍하니?’
스스로를 퇴마하듯 중얼거렸다.

‘이제 앞으로는 귀하고 귀한 너에게 좋은 것만 주지 그래.’
뜨거워진 이마 위에 얼음을 올리듯 열을 식혔다.

‘용서를 하려면 내가 일단 잘 살아야 할 것 아니야.
그놈의 갓생 집어치워.
나는 풍요로운 인생을 원해.
즐겁고 행복하고 싶단 말이야…’

아이처럼 발버둥치는 내 어리광을
묵묵히 들어주기로 했다.

여전히 내 목표는 용서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지기로 했다.
나는 다음 파란불에는 주섬주섬 혼을 챙겨 건너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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