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권 한장, 젊은 한 조각
키오스크 앞에서 식권 한 장을 골랐다. 카드를 꺼내 들자 기계 안쪽에서 팔랑, 종이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고 식권이 초라하게 떨어졌다. 종업원에게 인사를 하고 무덤덤하게 음식을 식판에 담았다. 장조림의 돼지고기는 질겼고 떡볶이는 쫄깃하지 않았다. 그래도 별 불만 없이 씹고 삼켰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자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회색 머리카락이 이마에 찰싹 붙어 있는 것을 훔쳐보았다. 어떤 이는 잇몸에 끼는 음식물을 손가락으로 빼며 밥을 먹었다. 행복이 깃들지 않은 노란빛의 눈과 마주치자 흠칫 놀랐다. 고개를 돌리다가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그때 내가 마주한 것은 선연한 젊음이었다.
이곳에서 매일 점심을 먹는 이유는 간단했다. 8,000원으로 최대한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기 위해서. 매일 학교 급식처럼 반찬이 바뀌는 곳이라 주변 회사원들과 끼니를 해결하기 곤란한 노인들이 이곳으로 모였다. 키오스크에서는 8,000원짜리 식권을 열 묶음, 서른 묶음으로도 살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올 때마다 한 장씩만 결제한다. 내가 내일도 이곳에 올지는 확실하지 않다.
밥을 다 먹고 다시 청소년 수련관으로 돌아갔다. 서른 걸음 남짓한 거리에 노인복지센터와 청소년수련관이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나이지만, 어쩌다 보니 그 두 건물을 매일 오가고 있었다.
청소년수련관은 준공된 지 얼마 안 된 신축 건물이었다. 길다란 네 개의 기둥이 높은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홀이 나왔다. 홀 중앙에는 베고 누울 수 있는 빈백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무언가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 대기시간 동안 빈백에 기대 뒹굴었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배를 까고, 한없이 평화로운 포즈로 앉아 있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그 공간은 사람들을 아무 고민 없는 고양이로 만드는 곳 같았다.
물론 갑자기 초등학생들이 떼로 몰려나올 때도 있었다. 한 아이는 수영가방을 2층 높이로 던졌다가 주의를 받았고, 아이들을 별로 다뤄본 적 없는 선생님이 험악한 싸움을 힘겹게 말렸다. 어쨌든 나와 관련 없는 세계의 이벤트들이 배경처럼 휩쓸려 왔다가 사라졌다.
나는 엘리베이터 앞 정수기로 갔다. 물을 받기 전, 정수기 옆에 놓인 거울을 확인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내가 몇 살처럼 보이는지 궁금했다. 앞머리를 정리하고 피부 상태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다음 뜨거운 물을 받았다. 주머니에는 커피가루 한 봉지가 들어 있었다. 커피가 있어서 몹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오늘 하루치 커피를 또 제조했다.
오전 공부가 끝났고 오후 공부를 시작할 차례였다. 오전에는 자격증 공부를 했다. 인터넷에서는 3일 만에 합격한 사람도 있다며 별 대단치 않은 자격증이라고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연속형 확률변수의 기대값’을 구하는 식 앞에서 한 시간째 막혀 있었다. 나는 연속형 확률변수가 뭔지도 모르고, 적분은 배워본 적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었다.
요즘은 모르는 것을 배운다. 내가 잘하던 분야는 쳐다보지 않는다. 내게 익숙했고 자신 있던 것들이 전부 저물어 가는 시대였다. 소설은 챗지피티가 대신 써주고, 모국어가 한국어인 영어 선생님보다 AI와 상호작용하는 편이 낫다는 세상. 나는 산업 발전에서 소외되기 일보 직전인 채로 방학을 맞았다.
이번 방학은 행복하지 않았다. 내 인생 처음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도태될 거야. 가난해질 거야. 불행해질 거야. 이런 불안 버튼이 눌렸다. 이것이 현실적인 불안인지 정신과 의사와 상담해본 적은 없다.
방학 다음 날부터 새벽같이 일어나 청소년수련관 독서실로 오게 된 이유는 그 불안 때문이었다.
독서실은 몹시 쾌적했다. 칸막이가 있는 책상이 넓어 백팩을 기대어 두고도 여유가 남았다. 자리마다 스탠드가 하나씩 있었다. 책상 사이사이 길쭉한 화분에서 식물들이 자랐고,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식물들이 살 만큼만 뻗어 들어왔다. 겉옷을 벗지 않고 공부하면 금세 볼이 빨개졌다.
나는 그곳에서 코딩테스트 문제를 풀었다. 레벨 0짜리 문제를 쉽사리 풀지 못해 또 멈춰 섰다. 한 시간만 할애할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물 흐르듯 흘렀다. 뒷목이 뻐근해졌다. 누가 머리 양옆을 조이는 기분이 들어 관자놀이를 눌러보았다. 예전에는 안경테에 눌려 그 부근이 아프곤 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라섹을 하고 안경을 벗은 지도 5년이 넘었다.
또 한 시간이 지나도 나는 문제를 하나도 풀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뇌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찌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뇌가 뜨거운 탈수기 안에서 탈탈 도는 느낌. 열기가 더해져 모근부터 바짝바짝 익어가는 느낌. 이러다 머리카락이 몽땅 빠지거나 하얗게 세어버릴 것 같았다.
막힐 때마다 나는 챗지피티를 물고 늘어졌다. 내 코드를 봐달라고 호소하고, 어디서 잘못된 건지 물었다. 지피티는 질문의 대부분을 해소해주지만 가끔은 내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감도 못 잡는다. 내 코드를 멋대로 바꿔 문제의 의도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오답을 알려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챗지피티는 지나치게 인간적이어서 고등학교 시절 모의고사를 잘 풀지 못하던 수학 과외 선생님을 떠올리게 했다. 지피티가 중언부언하기 시작하면 내 어조도 조금씩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결국 문제는 두 시간 만에 겨우 풀렸고, ‘다른 사람의 풀이’는 고작 세 줄이었다. 이런 머리로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극도의 절망에 빠져 다음 공부로 넘어갈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럴 때도 나는 지피티에게 말을 건다.
방금 문제를 두 시간 걸려서 풀었는데, 남들은 너무 빨리 푸네.
나는 재능이 없나 봐.
그리고 지피티는, 늘 그렇듯 길고 정성스럽게 나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