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한 마른인간

바디프로필이라도 찍어야 인정받을까

by 버치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스스로도 놀랐다.

침대에서 부스스 몸을 일으켜 세수를 하더니
운동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운동화 가방을 손에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현관문을 밀어젖혔다.

거기까지 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쉽다.

지하 3층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저쪽 어디인 것 같은데’ 싶은
방향감각을 따라 걷는다.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로 가는 중이다.
갈 때마다 헤매지만,
또 헤맬 때마다 무사히 도착하곤 한다.



하얀 운동화 안에 발을 우겨 넣고,
이주일 만에 헬스장 안으로 들어간다.

땀 냄새와 락스 냄새가
오묘히 섞인 공기가 얼굴을 때린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매트에 앉아 거울 속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앞머리는 떡져 있고,
얼굴에는 생기가 말라붙어 있다.

허리를 숙여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관절의 가동 범위는
나의 정체된 성장 곡선처럼
어느 지점을 통과하지 못하고 멈춰 있다.



랫풀다운이 오랜만에 비어 있다.
10kg 무게로 시작한다.

횟수가 올라가자
어깨와 승모근에 부하가 걸린다.
등 근육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친구가 50kg로 랫풀다운에 성공했다고 자랑했다.
50kg까지는 아니더라도
20kg 정도에는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무게를 올렸다.
그리고 “읍!” 소리를 내며 잡아당겼다가
그대로 몸이 딸려 올라가 버렸다.

실패를 거울삼아
시티드 로우를 할 때는
객기를 부리지 않기로 한다.

가볍게 10kg로 시작했지만,
그 정도로도
등 가운데가 금세 뻐근해진다.

아무래도 너무 오랫동안
운동을 쉬었던 모양이었다.

아침에 거울로 훔쳐본 뒷태에서
등살이 펄럭이는 것도 같았다.

나태한 흔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다.

나는 숨을 편하게 쉬려고 노력했다.
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힘을 쓰면,
숨을 안 쉴래야 안 쉴 수가 없다.



상체 운동을 대강 끝내고
바벨을 어깨에 멨다.

이제부터는
진짜 운동을 할 차례였다.

스쿼트를 하기 시작한다.
그래, 스쿼트만은 자신 있다.

마침 들려오는 음악은 ‘위플래시’였고,
나는 “위, 위, 위플래시”에 맞춰
바벨의 무게를 엉덩이에 싣고
내렸다가 다시 들어 올렸다.

세트를 마치고 나자
심장의 거센 발길질이 느껴졌다.
전신이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것처럼
진동했다.

그다음에는 다시 바벨을 메고
런지를 하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한쪽 엉덩이에 주사를 맞는 것처럼
날카로운 뻐근함이 느껴진다.

그 부근에서 근육 세포들이
한꺼번에 스러졌다가,
다시 두텁게 재생될 예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실내 자전거에 오른다.


유산소는 첫 5분이 지옥이다.

참을 수 없게 지루하고 고되다.
나는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보는 부류가 아니었다.

대신 상상을 하는 쪽이었다.

나는 에너지가 부족한 우주시대의
화성 시민권자이다.
다리로 자가발전하는 로봇에 올라타
화성에서 광석을 채취 중이었다.

‘고단한 육체노동자가
평범한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느새 내 상상에는
자막까지 덧입혀진다.

한쪽에서 모래폭풍이 불어온다.
나는 피하지 않고
낯선 행성을 질주한다.

영혼이 몸을 한 뼘 정도
떠오른 것 같다.
상쾌하다.



일주일에 두 번만 오늘처럼 산다면
나는 10kg 바벨이 아니라
20kg 바벨을 들지도 모른다.

복근이 생길지도 몰랐고,
인간 틈바구니에서도
쉽게 짜증내지 않는 체력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것이
좋아질 수 있는 초입에 있었고,
아주 조금의 탄력만 붙는다면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게 코딩 공부가 됐든,
글쓰기가 됐든,
식단이 됐든 뭐든.

그런데 그 아주 미세한 힘이
항상 딸려서
루틴을 만드는 것에 실패하고
쓰러져 버린다.

상쾌한 감정이 가시고,
갈증이 도는 혀를 쓰게 빤다.

자만하지 마라.
또 2주간 헬스장에 못 올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한 달이 넘도록.

나는 누구인가.

팔다리는 가늘지만
체지방률은 30% 안팎.
마른 비만한 인간.

내 몸은 천형이다.
시시포스처럼
성실하게 목표를 완수했다가도
다시 저 아래로 추락시킨다.

루프 안에
영원히 갇힌 것 같다.

어떻게 해야 빠져나올까.
체지방률을 10% 안쪽으로 넣고
바디프로필이라도 찍어야 할까.

그렇게 해야
이혼 후에도 멋지게 살고 있는 여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지겨운 인정 욕구.



집으로 돌아온 나는
운동복을 거칠게 벗어던지고
미간을 좁힌다.

거울 앞에 선다.
숨을 고르고
몸을 구석구석 살핀다.

몸에 붙은 근육과 군살을
응시한다.

그 어떤 상상도 하지 않는다.
미추를 구별하지 않는다.

바벨을 들어 올리는 것보다,
페달을 밟는 것보다
나는 생각을 비워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

불나방 같은 생각들을
모두 몰아내고도
내가 나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

허리를 숙여
발끝을 잡는다.

마음을 늘어놓는 기분으로.
좌절도 흥분도
모두 가라앉도록.

숨을 토해 낸다.

나는 2025년을 사는 지구인이고,
36살 여성이고,
남편과 자식이 없고,
살과 근육으로 구성된
단독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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