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안에 이미 부처가 있다

빛으로 터져나오는 내면의 자기사랑

by 전소현

당신 안에 이미 부처가 있다


이 그림을 그리면서 한 가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분홍빛 부처. 머리카락은 하트로 가득 차 있고, 눈은 빛으로 터질 듯 반짝인다. 별빛이 사방에서 쏟아진다. 고요한데 찬란하고, 성스러운데 어딘가 나 같다.

부처를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 그리고 싶었다.


불교 철학에서 불성(佛性)은 특별한 자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 안에 이미 깨달음의 본질이 내재해 있다고 한다. 화엄경은 말한다. 하나 안에 전체가 있고, 전체 안에 하나가 있다고. 우리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는 씨앗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들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판단, 충분하지 않다는 감각. 그것들이 층층이 쌓여 우리는 자꾸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는 일을 잊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함, 누군가의 아픔에 움직이는 마음, 아름다운 것 앞에서 멈추는 순간. 그것들은 밖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우리 안에 있던 것들이다.


부처의 눈이 빛난다.

감은 듯 고요하지만, 그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나는 그것이 깨달음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어둠을 밀어내는 빛이 아니라, 안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빛. 밖을 향하지 않고 안을 밝히는 빛.

하이데거는 존재란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빛이 공간을 밝히듯, 존재는 자기 자신을 열어 보임으로써 비로소 존재한다고. 그렇다면 우리가 자기 자신을 외면할 때, 우리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자기사랑이란 어쩌면 존재론적 행위다. 내가 나를 바라볼 때, 비로소 내가 온전히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


하트로 가득 찬 머리카락을 그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은 사랑을 언제나 밖을 향해 쏟는다. 타인에게, 이상에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게. 그러면서 정작 가장 가까이 있는 자신에게는 가장 인색하다.

스피노자는 코나투스(conatus)를 말했다. 모든 존재는 자기 자신을 보존하고 지속하려는 본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이 존재의 근본 충동이라고. 그런데 인간은 유일하게 그 힘을 스스로 거스른다. 자신을 깎아내리고, 부정하고, 충분하지 않다고 선언한다. 그것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일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근본적인 자연의 명령에 응하는 것이다.


선불교에는 이런 화두가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처음엔 불경하게 들리지만, 그 의미는 이렇다.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라는 것이다. 어딘가에 있는 완전한 존재를 숭배하고 모방하려는 한, 우리는 영원히 자기 밖을 헤맨다. 진짜 깨달음은 내가 이미 부처임을 아는 것. 찾는 행위를 멈추는 것. 이미 여기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자기사랑도 그렇다. 언젠가 더 나은 내가 되면, 무언가를 이루면, 그때 나를 사랑하겠다고 미루는 한 그 순간은 오지 않는다. 사랑은 조건이 충족된 이후에 오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이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림 속 부처는 눈을 감고 있다.

밖을 보지 않는다. 안을 본다. 그 빛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흘러나와 사방으로 퍼지는 것이다. 그 방향이 중요하다.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득한 것.

우리는 종종 사랑받기 위해 무언가가 되려 한다. 더 나은 사람, 더 완전한 사람. 그런데 부처는 아무것도 되려 하지 않는다. 그냥 있다. 그 존재 자체로 이미 빛난다.

당신 안에도 그 빛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 꺼진 적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곂쳐진 파프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