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야 피는 꽃이 있다
비를 피하고 싶었다.
감정이 쏟아지는 날,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는 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그런 날들을 나는 오랫동안 나쁜 날이라고 불렀다.
빨리 지나가야 할 것들.
없었으면 좋겠는 것들.
비비안코는
비가 내리는 구름 위에 앉아 있다.
피하지 않는다.
그냥 거기 있다.
그리고 꽃이 피어 있다.
비 맞은 꽃이.
젖어 있지만 살아 있는 꽃이.
감정을 통과한다는 건
감정을 이겨낸다는 뜻이 아니다.
억누르거나,
빨리 털어내거나,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아니다.
그냥 — 비가 오면 비를 맞는 것.
젖어도 괜찮다는 걸 아는 것.
이 비가 언젠가 그치리라는 걸,
몸으로 믿는 것.
슬픔은 나를 망가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슬픔을 꾹꾹 눌러 담을 때
나는 더 단단하게 굳어갔다.
표정이 없어지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게 되고,
꽃이 피어야 할 자리가 말라버렸다.
감정은 흘러야 한다.
비처럼.
웅덩이에 빛이 반짝인다.
비가 고인 자리에서
별이 반사된다.
가장 낮은 곳,
가장 젖은 곳에
빛이 담긴다.
우리가 가장 약해진 순간에
뭔가 새로운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꽃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피어날 수 없다.
햇빛만으로는 피지 않는 꽃.
촉촉하게 젖어야만
뿌리가 내리는 꽃.
그 꽃이 나일 수도 있다.
아직 비를 맞는 중이라면,
괜찮다.
지금 당신은 꽃이 피기 직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