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흐른다

by 전소현

감정은 머문다, 그리고 흐른다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다고 상상해본다.

그 구멍으로 무언가가 들어오고, 통과하고, 빠져나간다. 멈추지 않는다. 슬픔도, 분노도, 그리움도. 잠깐 머물다 간다. 우리는 그것이 영원히 남을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 감정은 처음부터 통과하는 것들이었다.


그림 속 토끼의 가슴을 보면,

수많은 눈물방울이 일렬로 관통하고 있다. 들어오는 쪽도, 나가는 쪽도 있다. 막혀있지 않다. 토끼는 눈을 감고 그것을 그냥 두고 있다. 저항하지 않는다. 손으로 가슴을 막지도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를 안은 채, 그 모든 것이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

그게 전부다.


감정은 우리 안에 사는 게 아니다.

우리를 지나가는 에너지다. 슬픔이 나인 게 아니라, 슬픔이 지금 나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내가 슬픔이라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 하지만 슬픔이 나를 지나가는 중이라면, 나는 그냥 여기 있으면 된다.

통과하도록 두면 된다.


우리가 감정을 두려워하는 건,

그것이 나를 삼킬 것 같아서다. 한번 열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닫는다. 꾹 누른다. 괜찮다고 말한다. 그런데 닫힌 곳에서 에너지는 썩는다. 흐르지 못한 것들이 쌓인다. 결국 더 무거워진다.

두려운 건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만 넘기면, 감정은 알아서 흘러간다.


모든 것은 흐른다.

기쁨도 오래 붙잡을 수 없고, 슬픔도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우리 안을 지나가는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주고, 때로는 그것이 지나가도록 가만히 있어주는 것. 그게 감정을 산다는 것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토끼는 울면서도 구름 위에 서 있다.

눈물이 가슴을 관통하는 동안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흐르게 두었기 때문이다. 감정을 통과시킬 만큼 자기 안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뚫린 가슴은 약한 게 아니다.

흐를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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