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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Jan 08. 2024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영상을 사이에 두고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가 노란 불빛 아래로 흐른다. 휴대전화 화면 속 우리는 어색한 웃음을 달고 서로 엇박자로 손뼉을 치고 있다. 정작 축하 노래의 주인공은 화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옆으로 돌린 얼굴에 슬몃 계면쩍은 웃음만 흐른다.


그래도 기뻐하는 건 맞겠지?


이 우스운 이벤트를 제안한 사람은 남편이다. 아들에게도 같이 불러주자고 했지만, 창피해서 싫다며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냥 우리 둘만 엉겁결에 열어버린 문처럼 휴대전화 앞에서 재롱을 부린다.

사위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생일이었다.

감히 넘볼 수 없고 성스러운 예수님, 그분만이 그날의 주인공이었는데. 사위가 가족이 되고 나서 그의 생일도 12월 25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잊어버리려야 잊을 수 없는 기념일 하나를 더 얻은 셈이다.


남편은 딸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한 후 처음 맞는 사위의 생일이라면서 특별한 게 필요하다고 우겼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사위 생일 선물을 골라 보내기도 했는데... 이벤트라니 너무 닭살이다.

평소 남편은 이벤트 같은 것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같은 날도 티 나게 챙기지 않았다. 바쁘지 않거나 문득 생각나면 챙기고 아니면 그냥 지나가도 서로 뭐라 하지 않았다. 내심 신경 쓸 일이 줄어들어서 편하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이벤트에는 문외한인 우린데... 우째 이런 일이!
그런 남편이기에 이런 제안이 내겐 갑작스럽다. 어색해서 싫다는 아들뿐만 아니라 나도 거절하고 싶었지만, 평소 남편의 행동과 달라서 의아한 생각에 그저 못 이기는 척 따랐다.


이벤트를 끝내고 갑자기 왜 사위 생일을 챙겨주고 싶었는지 물었다. 모임에서 지인의 가족이 영상통화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데 좋아 보이더라고. 그래서 사위에게도 짜릿한 기쁨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단다. 가상한 장인어른이네.

남편이 나이 먹더니 은근히 철이 드는 것 같아서 나도 우쭈쭈 칭찬해 준다.


다음날 딸이 이벤트의 후기를 들려준다.

다소 부끄럼을 타는 사위는 우리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동안 얼굴이 벌게져서 눈을 내리깔고 새색시처럼 듣기만 했는데 영상이 끝나고 나니 너무 좋아하더란다.

부모님께도 한 번도 받지 못한 귀여운 이벤트였다고. 난생처음 받는 애정과 사랑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이런 장인어른 장모님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며 감격했다고 한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잠깐의 쪽팔림을 감당했을 뿐인데 이런 후기를 들을 줄이야. 이벤트는 되로 주었는데 우리야말로 감동을 말로 받은 기분이다.

이게 주는 기쁨이구나.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받는 사람이 기쁨으로 받으면 주는 사람은 더 큰 선물을 돌려받는 거로구나.

평소에 남편에게 무조건 나만 따라오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남편 말을 들으니 생각지도 못한 흐뭇함을 얻게 되었다.

그러니 서로가 어떤 일을 부탁하면 일단 들어보고 한 걸음 나아가 서로 도움이 될 방법을 강구해 보기로 했다.
그게 예수님과 사위가 세트로 기뻐하는 일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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