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리소 Feb 09. 2024

우린 무슨 사이냐, 이놈아

밥 뜸이 아직 들지 않아서 기다리는 중이다.

밥통 속에 식은 밥이 좀 남아 있어서 나 혼자 밥을 먹고 아들에겐 새 밥을 해주려고 쌀을 씻어 안쳤다.

녀석은 밥이 다 되면 부르라며 하던 게임을 계속한다.


쇠고기를 굽고 쌈장과 김치를 꺼내놓은 다음 아들을 부른다.

식탁에서 밥을 먹는 아들은 웃통을 벗은 채다. 옷 좀 입으라는 내 말에 남자는 맨몸이 국룰인 거 몰랐어. 엄마? 가소롭게 외친다. 겨울추위에도 남자의 마초성을 버리지 못하는 아들이 우습다. 결국 나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추운 날에도 실내온도를 쉽게 올리지 않는다. 집이 추우면 지가 설마 옷을 안 입고 버티겠어? 그러는 사이에 피해자가 나온다. 집이 왜 이렇게 춥냐고 묻는 남편.  모자 사이에 벌어지는 집안 온도의 암투를 남편은 모른다. 우리 둘의 싸움에 속도 모르는 그의 새우등이 속수무책 터진다.


흐흐흐.

입가에 복수의 미소를 띠고 손을 휘두를 준비를 한다.

사샤삭 그림자처럼 녀석의 뒤로 다가가 밥을 먹는 아들의 허리를 왼손으로 감싼다. 호리호리한 허리가 내 한 팔로도 다 감긴다. 왼쪽 귀를 아들의 목덜미에 가만히 대본다. 몇 년 간 복싱을 하다가 헬스를 다닌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등과 어깨 쪽에 귀여운 잔근육이 느껴진다. 귀를 대고 있는 쪽에선 숨겨진 하악골의 움직임이 철컥철컥 전달되어 웃음이 다. 언제 이렇게 자랐나? 부단히 엄마를 귀찮하면서도 크는 일을 멈추지 않는 녀석이 신기하다. 아들은 그냥 밥 먹기에 집중한다. 엄마가 뒤에서 식사를 방해하는데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우린 그런 사이다. 끊임없이 서로 귀찮게 해주는 사이.

거의 매일 벌어지는 풍경이 하나 있다. 설거지를 하는 내  뒤에서 녀석은 불온한 내 옆구리에 손을 뻗거나  슬며시 배를 쓰다듬어서 모골이 송연해진 나를 펄쩍 뛰게 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추리소설에나 나올 법한 겨울갈고리 같은 녀석의 긴 손가락을 처치하기 위해 나는 옆차기를 해대고 그러는 통에 녀석이 비누거품을 뒤집어쓰기도 하였다. 그 후에도 녀석은 종종 내 짧은 다리 맛을 몇 번 보았지만 절대로 그만두지 않는다. 우린 그런 사이다.

상대가 무엇엔가 집중하고 거나 하릴없이 긴장을 늦추고 있는 시간을 놓치지 않는다. 빠르고 짧게 상대의 허점을 노린다. 그러나 많은 경우 내가 더 여러 번 당한다. 그렇지 않은가. 난 세월에 스러져가는 늙은 엄마고 녀석은 뭐 하다가 늦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느지막이 내게 찾아와 아들이라는 위치에서 엄마를 구워삶는 중이니까 그럴 수밖에.


좀 전에는 골프 프로그램에 빠져 있는 아빠의 옆구리를 공략하다가 잔소리 폭격을 당한다. 남편은 징그럽다며 아들에게 주먹을 날리고 아들은 가드를 올리고 쉭쉭 아빠의 주먹을 피한다.  

녀석은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라서 귀엽단다. 그렇게 보이는 녀석의 시선이 이상하고 요상하고 알다가도 모르겠다. 녀석의 눈엔 우리가 동글동글한 푸바오같이 느껴지는가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 만한 이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