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해보았습니다.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제게 밸런타인데이 따위가 뭔 그리 기념할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아주 엉뚱한 걸 좋아하는 저는 오늘 작은 페레로 로셰 초콜릿 두 개를 사서 하나를 아들에게 건넸답니다. 아들도 평소 같지 않은 제 행동에 깜짝 놀라서 엄마, 뭐야? 누가 줬어? 설마, 샀어? 합니다. 그래, 이눔아. 샀다. 왜? 오왕~엄마 고마워. 이렇게 비싼 초콜릿은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 합니다. 세상에, 지가 뭘 그리 오래 살았다고 저런 너스레를 늘어놓는지 모르겠지만 사천 원짜리 초콜릿 하나에 이렇게 기뻐하니 그동안 그냥 넘어갔던 그 모든 날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미안해집니다. 하나는 출근하고 없는 남편 방 책상 위에 놓아둡니다. 퇴근하고 오면 발견할 테죠? 아마 둔한 그가 미처 모르고 지나간다면 냉큼 들어가 그의 코앞에 다시 대령하면 그만이지요. 총 팔천 원으로 전 기쁨과 흐뭇함, 그리고 기대를 샀습니다.
젊을 때는 시간의 휘두름에 쫓기듯 매일 앞만 바라보고 뛰었습니다. 사는 일이 해치워야 하는 숙제처럼 무겁게만 생각되었어요. 육아와 직장에 집안일에 치여 마음 안에는 숨 쉴 수조차 없는 좁은 기류로 힘들었습니다. 그럴 때 아, 이런 생에 쉼이 있기나 할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짓누르기만 했어요. 이제는 타이트한 시간에서 조금씩 풀려나 느슨하고도 따뜻하게 릴랙스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계절을 느낄 수도 있고 과거를 반추하고 현재와 미래를 곱씹어 보기도 하는 틈이 생겨서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사실은 제 스스로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지만 아이들은 자랐고 가정을 이루었고, 직장에서 자리를 잡았고 우리 부부는 나이가 들었지요. 어찌 보면 시간은 이때를 참고 인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장을 마련해 두고는 시치미를 똑 따고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아직 오지 않은 날들 속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삶을 수긍하고 수긍한 자리에서 방법을 찾고 하나하나 해나가는 걸음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시간은 또 우리에게 친구가 되어주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은 또 오늘 치의 사랑과 즐거움과 인내가 펼쳐진다면 기쁨의 꽃이 초콜릿처럼 필지 누가 알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