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얼른 잠들고 싶은 의도였는데 역시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어.
의도를 가지지 않으면 잠은 저절로 찾아올 텐데 말이야.
여기서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못하게 하려는 욕구와 억지로 이루려는 욕구 사이에서 정확하게 중용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새로운 것을 생기게 해주는 것은 중용이 가져다주는 평온함이다. 주 1)
지난밤 엄마는 뤼디거 달케의 문장을 그대로 몸으로 체화하고 말았지 뭐니.
잠자리에는 9시 반에 누웠지만, 잠은 1시 반에 들었단다.
그 사이 시간에 엄만 중용의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저 책을 읽고 싶은 욕구와 글카페를 들락거리고 싶은 욕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다람쥐의 명민한 눈빛보다 더 분주한 발놀림의 회오리를 지나가고 있었단다.
책 읽기, 글쓰기를 하루 쉬었더니(브런치 글 발행은 일상의 옵션이 되었지만) 맘이 불편하고 심리적으로 지친 상태를 맛보았어.
우리 리더 작가님은 번아웃이 오면 어떻게 극복할까요?라는 질문에 번아웃이 오면 좋아하라고 했다.
내 한계까지 왔으니 바닥을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기회라고.
엄마는 번아웃을 경험해보지 못했어.
(아직 바닥이 아닌가?)
그냥 힘들어서 잠시 징징거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중얼중얼 기도하는 방법을 택했거든.
몸이 아프면 아프면 되는데, 마음이 힘든 건 어디에다 쏟아놓아야 살 수가 있더라고.
아주 귀여운 번아웃이 왔으니 조그맣게 좋아하면 되겠지?
엄마가
성장이라는 키워드의 글을 쓴다는 건 알고 있지? 근데 읽으면 읽을수록 앙상한 나의 뼈다귀를 보는 것 같다.
현실의 나는 풍성한 살로 뒤덮여 '앙상'이 뭔지 절대 떠올릴 수 없지만 글은 정말 날씬하더구나.
(좋은 뜻이 아니란 건 알지?)
아무리 읽고 읽고 읽어도 남루하고 건조하기만 하니 엄마의 성장역량이 이만큼인가 봐.
잘 쓰고 싶다는 의도에 힘을 꽉 주고 있으니 아무래도 경직되면서 화강암 같은 윤기 있는 웅대한 글이 되지는 못하는 것 같아.
성장의 글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아직 화강암까지 이르지는 못했어.
이제 서론 부분에서 머무르고 있으면서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내부, 술렁술렁하니 뒤숭숭한 모습 속에 엄마가 보인다.
글과 내가 하나가 되는 과정이겠지?
눈에 보이는 성장은 머뭇거리는 것 같아도 역사는 땅 밑에서 일어나는 것이니까 - 마그마의 생성처럼 - 그저 땅이 땅의 일을 하도록 기다려야 하겠지.
조바심 밀어놓고.
우리의 내면은 이상하게 둘로 나뉩니다. 최선을 원하지만 너무 쉽게 평균 수준에 정착해 버립니다. 위대한 목표를 추구하지만 너무 쉽게 타협합니다. 정직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진실을 왜곡합니다. 절대자를 간절히 열망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가 만든 '우상'을 선호합니다.
주 2)
자크 엘룰은 엄마의 마음속 너저분한 먼지나 티끌을 쓸어 내주는 빗자루란다.
둘로 나뉘어진 내면이 아니라 하나로 모아지는 화합, 위대한 목표 앞에 타협하지 않는 단단함, 진실을 그릇되게 하는 어떤 것에도 선명하게 살아있는 판단력을 가지기 위해 정신의 빼빠질을 계속하려고.
그래서 내가 만든 허상이나 우상을 경계하고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성장'이라는 키워드 앞에 나를 세워놓는단다.
기도 한 꼬집 잊지 않고 말이야.
영혼의 기도
나의 총명을 오류로부터 보호하소서.
나의 입술을 거짓으로부터 보호하소서.
나의 성품을 죄악의 모양으로부터
보호하소서.
- 굿데이 성경(신약)에서 인용. p. 95
주 1) 몸은 알고 있다. 뤼디거 달케, 토르발트 데트레프센.
주 2) 묵상록. 자크 엘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