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너의 정서상태가 심각하다고 선생님께 걱정을 들었을 때,
너의 의지와 달리 엄마를 떠나 처음으로 지방에서 독립했을 때,
네가 엄마 눈치만 보며 감정을 숨기는 조용한 사춘기를 보냈을 때,
네가 약한 몸으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무려 1시간 반 이상의 거리를 통학했을 때,
네가 상사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너 자신을 찾지 못하고 헤맬 때,
수시로 엄마는 널 키우며 불안했어.
엄마가 정서적으로 약해서일까?
아냐, 엄마는 그렇게 나약하지는 않거든.
어쩌면 우리의 불안은 대단한 사건 때문이 아니라 일상 속 소소한 데서 발생하는 사건들 때문인 것 같아.
사실, 사람이 굉.장.한 이변 앞에서는 의외로 굉.장.한 힘이 나온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 소소한 것들에서는 약한 마음이 튀어나오는 건 왤까? 아마도 엄마 내면의 약한 자아가 ‘공상’을 '실체'로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스스로를 상실했기 때문* 일거야.
네가 어련히 잘 귀가할 텐데 괜히 마음대로 공상하면서 걱정과 불안을 만들어냈던 거지.
그 불안의 시간들은 나를 깎고, 다듬을 수 있는 담금질의 순간이었다고 생각해. 그런데 이런 담금질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건 단순히 일상 속에 섞여 흐르듯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네가 성장의 문 앞에 서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
결코 편안하게 성장하는 일은 없어. 성장은 변화를, 변화는 지금의 파괴를 의미하니까.
주 1)
엄마도 지금 성장의 문 앞에 서 있어.
그러니까 불안하고 답답하고 괴롭고 두려운 건 당연하겠지. 누구나 익숙한 이곳에서 낯선 그곳으로 갈 때처럼 말이야.
그런데, 잠깐 엄마의 성장을 말해줄까?
오래전부터 엄마는 ‘작가’가 되고 싶어 했어. 문학가로서 엄마를 드러내고 싶었거든.
그런데 너에게 ‘정신’을 남기기 위한 이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엄마 내면에 자리 잡은 ‘드러나고 싶은 존재’라는 옷을 벗고 ‘남겨야 할 정신’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해서 다소 어렵고 진지해져야 했어. 그래서 엄마의 정신체계부터 먼저 갈고닦아야 했지. 이렇게 엄마의 정신세계를 낱낱이 쓰는 걸 보면 너도 알겠지?
느리고. 더디지만 성장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너 아니?
성.장.
때로 우리가 쓰는 언어에는 활자로서 표현되지 않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단다. 이 '성장'이란 두 글자에도 활자로 표현되지 못한 깊은 정의와 개념과 의미가 담겨 있어.
성장은 화강암이다!
무슨 말이냐고?
돌! 돌이라는 말이야.
돌이 어디서 나온 줄 알아?
물에서 나왔어.
지표면 저 깊은 아래에 열이 가해지고 가스가 보태지면 물이 되거든.
그 물이 수 백 만년 동안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마그마를 응고시켜.
그러면 점점 압력이 가해지지.
압력은 반드시 분출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거든.
그래서 스스로를 외부로 폭발시키지.
이것 봐, 화강암이 사람하고 뭐가 다르니?
사람이 진짜 화나면 '폭발'해 버리는 거랑 똑같지 않니? 이렇게 엄마도 내면의 강력한 진동을 통해 뭔가 시원하게 뿜어내려는 진통 중이야.
지금까지 엄마도, 너도, 살면서 다양한 사태들을 겪었고 그것들이 내면에 섞이고 엉키고 뭉쳐서 혼란스럽게 잔재해 있다가 어느 자극을 만나 진동을 일으키지. 그래서 뭔가 내뿜으려고 답답한 거잖아. 그게 불안이 아닐까?
흙이고 물이고 가스였던 것들이 화학변화를 일으켜서 높이높이 자기를 치솟게 하고 땅으로 쿵!
떨어지고 흐르고 흘러 자기화(自己化)되는 것처럼, 엄마의 내부도 지금 자기화를 이루기 위해 이글거리는 불이 시작되었어.
불이야.
뜨거워.
뜨거움은 열정(熱情)이고 열망이고 열의야.
뜻하는 바를 그야말로 뜨겁게 바라고, 또 바라는 갈증이지.
이것들을 계속 견딜 거야.
그러면 솟구칠 것이거든.
그렇게 폼페이의 화산처럼 저 높이까지,
내 생에 없었던 가장 높은 곳까지 솟구칠 거야.
그리고 다시 착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세계에서 존재와 현상은 일치하거든. 주 2)
그러니 엄마 내면의 욕구가 솟구쳤다가 땅으로, 그러니까 현실로 내려앉을 때 아주 강인하게 굳건하게 단단하게 나만의 돌, 암석이 될 수 있어.
이제 이 현상이 나를 뚫고 더 큰 세상으로 폭발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 앞에 엄마를 세워둔 것이지. 인류는 항상 이렇게 진보했어.
내 안에 있는 흙과 물과 가스가 섞여 뭉쳐지고, 가스는 계속 발생하고, 부피는 점점 커지고, 밀도는 높아지고, 압력은 상승해.
그러면 공간은 좁아지고 어쩌지 못하는 에너지가 공간을 뚫고 위로 솟아올라.
솟구쳐 오르다가 아래로 끝없이 수직낙하!
이윽고 지표면을 녹이고, 태우고, 부수고, 깨뜨리고 서서히 열이 식으면서 굳어져 자기만의 모양을 만들어 암석이 되는 것이야.
대지의 흙과 물과 가스가 서로 섞여 뭉치듯 엄마의 꿈과 간절함과 노력, 열정이 서로 섞여 뭉쳤어. 대지의 가스가 계속 뭉친 그것들을 자극해서 부피를 키우고, 밀도를 높이고, 압력을 상승시키듯 엄마 역시 그래.
그러다가 드디어 폭발!
화산이 솟구쳐 오르다가 아래로 끝없이 흘러내리듯 엄마의 욕망도 반드시 솟구칠 때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현실세계에서 엄마의 창조물로 만들어지는 것이야.
이 과정이 성장이 아니면 뭐겠니?
기존관념 속의 딱딱한 덩어리로 막혀버린 환경을 뚫고 올라가 화강암이 되는 것!
그러니까 성장의 결정체는 화강암이야.
이것을 보면 인간도 하나의 자연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
가슴이 뜨거워진 인간이 지평을 바꿀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과정이 성장이야.
하다못해 돌덩이도 그렇게 만들어지는데
네가 돌덩이보다 단단하지 못하다면 말이 되겠니?
네가 불덩이보다 가열차지 못하다면 말이 되겠니?
네가 흙덩이보다 솟구치지 못하다면 말이 되겠니?
네가 땅 위로 낙하한다고 아파한다면 말이 되겠니?
성장은 자기 안에 있는 정체(停滯)를 뚫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터뜨리는 폭탄 같은 에너지야..
결국, 성장은
내면의 파괴가 외면의 생성을 유발하는 원동력이야.
네 열망 속 심지의 핵심에 불 지피는 발화력이야.
네 갈증의 응축 속 통증에 물 붓는 의지력이야.
네 갈망의 촉발 속 내부에 발생하는 열응력(熱應力)이야.
네 갈구는 마그마 속 분출을 목적하는 지지력이야.
늦출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게 성장의 속성이지.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
그래서 성장은 역동적인 생명인 것이지.
생명. 살아있다는 말이야. 살아있는 것은 무언가의 희생을 담보해.
희생을 담보했음은 그에 대한 대가로 스스로 성장시켜야 할 의무가 부여되고,
부여된 의무는 이미 네 안에 장착된 씨앗을 본성대로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야.
씨앗은 토양에 묻혀야 하고 발아해서 싹을 틔워야 해.
만약 우리가 세상 속의 한낱 구경꾼**이라면 굳이 스스로에게 의무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지. 굳이 사명 따위 신경 쓰고 피곤해할 필요도 없겠지. 그러나 세상을 살며 관찰하고 즐기고 누린 대가로서 또한 우리의 거주지로서 자연 속에서 살아 숨 쉬었다면 우리 각자는 스스로를 창조해야 할 필요가 반드시 있는 것이 아닐까?
- 다음에는 우리가 왜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이야기해 줄게.
주 1) 엄마의 유산. 김주원.
* 키에르케고르
주 2) 정신의 삶. 한나 아렌트.
**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저서 ‘정신의 삶’에서 만약 우리가 세상 속에 한낱 구경꾼이었다면, 중대한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구경꾼은 세계를 관찰하거나 즐기고, 세계 때문에 즐거워하고자 세계에 투신했으나 우리의 자연적 거주지로서 어떤 다른 영역을 점유하고 있는 신을 닮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창조해야 한다. 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