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눈먼 자가 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야.
눈이 단지 ‘보는(see)’것만은 아니야. 보되 제대로 봐야 해(sight)’
진심의 눈으로 봐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면 어둡고 흐린 것들만 눈에 담게 돼.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내면에 ‘빛의 씨앗’이 심겨져 있단다. 그것을 보지 못하면 밝힐 수가 없어. 그러니 꼭 봐야만 해.
밝음이 들어오면 어둠은 숨을 수밖에 없어.
주저앉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의 어둠을 싹싹 쓸어버려.
니체도 너의 눈에서 잠과 흐릿한 온갖 것들, 캄캄한 것을 씻어내라
주 1)고 말하고 있어.
빛은 어둠을 지워. 어둠을 지운 너는 날아가고 싶은 방향을 향해서 빛을 쏘는 것이지.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는 사람은 없어. 등은 등경 위에 올려놓고 방안을 밝게 만드는 주 2)거야.
그래서 성장은 빛처럼 위에서 모두를 비추는 등이야. 네가 성장하면 너만 밝은 게 아니라 너를 둘러싼 많은 것이 환해지는 것이지.
둘째, 내적 귀머거리가 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야.
성장하려고 하면 내 안에서 소리가 들려. 힘들다고, 안 하겠다고, 모르겠다고!.
그런데 더 큰 자아의 소리도 함께 들린단다. 해보라고, 더 할 수 있다고, 이번에는 잘 해낼 거라고.!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아플 때, 힘들 때, 멈추고 싶을 때, 들려.
사람들이 내면의 소리를 들어라, 하고 말하는 데 이 소리는 기막히게 성장이 이뤄지는 이들에게 들리는 소리야. 내면의 소리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네 안의 자아를 열어주어 너를 살리는 참된 소리를 분별하게 한단다.
셋째, 몹쓸 혀를 가져서는 안되기 때문이야.
어리석은 말로 사람들을 실족하게 하고, 자신의 귀에 가장 먼저 실패자의 말을 들려주어서는 안되는 것이지. 니체는 반항적이며, 까다로운 혀 주3) 를 높게 평가한다고 했단다. 내 진심을 말할 줄 알고, 어떤 문제에서 ‘그렇다’와 ‘아니다’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혀는 너 자신을 너 답게 표현하는 도구란다.
넷째. 분별력을 잃은 손과 발이 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지.
어디를 가리켜야 할 지, 어디로 향해 가야 할 지, 가르쳐주고 돕는 손,발이어야 하잖아?
잡아야 할 것은 결코 놓치지 않고 잡지 말아야 할 것을 뿌리칠 수 있는 손이라면 손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이니까. 진짜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하고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가게 되는
분별력을 잃은 발을 가졌다면, 허깨비로서 영혼의 빈민구제소에 수용 주4)되어야 하겠지.
다섯째, 성장은 몸 뿐 아니라 영혼을 가꾸는 것 주 5)이지.
육체엔 성장의 상한선이 있지만 정신의 성장은 무한 하단다.
성인의 몸은 성장을 다하면 어느 시점부터 성장의 반대편으로 가게 되어 있어.
하지만 정신은 사방으로 빛을 뿜어 자신의 길을 완성하지. 정신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살아있는 것이야. 아니, 죽어서도 우리의 정신은 면면히 이어지는 존재야.
신은 나약한 영혼이나 흐물흐물한 육체를 사랑하지 않으며, 나약한 영혼은 오랫동안 육체에 항거할 인내력이 없다 주 5)는 말은 강인한 영혼만이 육체를 소명(召命)으로 이끌고 나갈 수 있다는 말이야.
그러니 성장은 너 자신이 마땅히 누릴 권리이며 너 스스로에게 행해야 할 의무란다.
이런 성장을 위해 엄마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어.
이미 성장으로 완성된 너 자신을 바라보고 새기는 일 말이야.
바로 관조(觀照)라고 하는 from의 시선이란다.
그 시선에서 현재의 너를 보고 성장으로 끌어 당겨주는 힘, 그 힘을 가져와야 해.
원하는 그 자리에 네가 서서 지금의 너를 바라보는 시선.
그 곳에 두 개의 손짓이 있단다.
하나는 멈추라는 손짓이야.
열망하고, 그려내고, 완성된 네 모습을 새기지 않고 지체하면, 가차 없이 빼앗긴 단다!
누구에게?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관성에게,
여유를 빙자한 거짓된 오만에게,
좀 더 쉬라는 달콤한 나태에게,
이것들이 네 귀에 속삭여.
이제 괜찮다고,
이쯤에서 만족하라고!
너를 끌어내리려는 거짓말에 속아 참된 감각을 닫아버리고 네 자아를 빼앗아.
또 하나의 손짓은
일어나라고!
건너오라고!
한달음에 달려오라고!
멈추지 말라고!
넌 어떤 손짓에 따를래?
화산 속 마그마는 자신이 화강암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저 마그마는 마그마의 일을 했을 뿐이야. 엄마도 두렵고 불안하고 엄마의 힘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까 봐 겁나지만, 다 내려놓고 그저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야.
진짜 힘들 때 엄마에게 힘이 되어준 문장이 있단다. ‘나는 뻣뻣하고 닥닥한 검은 화강암 덩어리이니, 어떤 손도 나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주 6)는 카잔차키스의 말이야.
음. 엄마가 진짜 두려울 때 첫째, 신은 화강암처럼 분출한 엄마 옆에 있으니 맘껏 엄마를 성장시키라는 말로 읽히고,
또 둘째, 신이 이미 화강암으로 변해버려서 엄마를 도울 수 없으니 혼자 엄마를 키워내야 한다고, 그래서 엄마는 신이 엄마 옆에 있든, 화강암으로 변해서 엄마를 도울 수 없든, 그저 오늘 해야 할 몫을 해내는 중이야.
오직 우리의 이성이 필요로 하고 명령하는 그대로를 따르는 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실행해 나가는 방법 주7)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행동으로 하나씩 보여주는 것이지.
누구에게?
나에게!
내게 주어진 환경을 바라보는 게 아니고 내가 도달하고, 내가 되어야 할,
미래의 나!
원하는 나!
가지고 싶은 나!
주 1)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주 2) 성경. 마태복음 5장 5절.
주 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주 4)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 5) 나를 아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주 6) 영혼의 자서전. 니코스 카잔차키스.
주 7) 황제의 철학. 아우렐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