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엄마가 요즘 코칭실습 중이라는 건 알지?
엄마 자신을 다채롭게 발견하게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넓게 이해하게 하는 큰 도구로서의 역할을 네게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사람에 대해 관심도 존중도 부족했던 엄마에게 이 일이 온 건 나를 통해서 이뤄야 할 과업이 있어서겠지?
처음에는 아주 생소했던 이 일이 엄마의 일상 전반에 녹여져서 삶을 세우는 좋은 도구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중이야.
평소에 엄마는 엄마를 알지 못해서 많이 헤맸어.
책을 읽고 책 속 내용을 엄마에게 대입할 때마다 엄마도 알지 못한 낯선 인물이 드러날 때가 많았어.
코칭을 받다보면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고 그래서 아주 흥미롭기도 해. 새로운 자신과 만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잖아?
나는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던 걸까?
대체 난 누구일까?
엄마는 엄마를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유연하고 너그러운 인물이라고 오해하고 있었어. 앞뒤가 꽉 막히고 아주 작은 품을 갖고 있어서 스스로 답답해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좀 당황했단다.
그렇다고 코칭을 주고받으면서 엄마의 숨은 얼굴만 발견한 건 아니야. 숨은 얼굴 뒤에 있는 약하고 고집스러운 면모도 보았어. 사랑하고 싶어하고 사랑받기 원하고 지금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도 발견했단다.
반면 자신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친 인식이 엄마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면서 삐뚤어진 잣대를 갖기도 했지.
그래서 잘못된 만남이 아니라 '잘못된 판단'은 엄마 자신에게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했어.
나를 알지 못하니 알지 못하는 내게서 벗어나 '아는 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
엄마 자신을 오해하면서도 오해인 줄 모를 때의 헛된 평안을 벗어버리려고 해. 지금은 다소 혼란스럽게 헤매고 있지만 진짜 모습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단다.
그래야 진정한 나를 자연스럽게 바라보며 하나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은 꽤 부담스럽기도 해.
진짜 엄마의 존재감을 회복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아서 말이야.
그런데 부담은 엄마가 더 큰 곳으로 나아가도록 미는 묵직한 힘의 발현이야.
부담은 어떤 의무나 책임을 지는 것이잖아.
엄마가 목표로 삼고 그 지점을 향해 커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게 되는 무게 말이야.
이 무게가 바로 존재감이야.
엄마가 살아있으니 무게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생존해 있으니 가치의 무게를 느끼는 것처럼.
무게 없이 살았던 이전의 나를 버리고 이제 묵직하게 존재를 세워보려고 해.
신의 섭리 안에서 책과 글, 사람을 이어주는 메커니즘으로서의 나.
그래서 내 안에서 이룰 일들을 항상 꿈꾸면서 간단다.
그러니까 너도 부담 갖고 살아라.
너에 대한 의무, 너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니 부담은 가지는 게 옳아. 부담은 무게니까. 무게가 없으면 부표처럼 떠돌아.
비록 지금 엄마의 모습은 약하지만 엄마의 창조와 꿈을 믿어.
어떻게 만나는지, 어떻게 커가는지 엄마의 길을 지켜봐 줄래?
네 꿈이 자라는 건 엄마가 봐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