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낭독극이 끝나고 네가 바로 전화했지?
낭독극의 끝을 이어받아 내게 숙제를 주려고 말이야.
네가 어떤 일을 제안했을 때 엄마는 좀 당황했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고 엄마의 지난 시간밖에는 어떤 정보도 없었으니까.
그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지 아닌지 알 수 없기도 했고.
이런 인식이 엄마를 답답하게 하더라.
책에서 읽고 배운 것들이 작은 돌부리인 인식 앞에서 잠깐 깜빡거리는 거 있지.
그래서 엄마는,
할 수 있을까...? 하다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해봐야 아니까 그냥 하기로 결정했어.
"내가 뭐든 도울 거니까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해."
이렇게 엄마가 하는 모든 일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네가 있어서 마음이 든든하다.
그러면서 엄마는 네게 그렇게 했었나 지난 시간을 돌아봤어.
벌써 5년쯤 지난 일이네.
네가 '엄마, 나 캐나다에 갈까?' 하고 물었을 때 엄만 두 번도 묻지 않고 말했지.
"가! 여기서 머뭇거리지 말고 네 맘에 들어온 일이라면 어디든 가."
그래서였을까?
일 년 동안 그 고생을 하면서도 넌 힘들다 말하지 않았어.
낯선 곳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고 귀국하기 몇 달 전에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면서 네 앞에 놓인 기회를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너.
딸이지만 속으로는 정말 존경스러웠다.
약속된 일 년이 넘어 할머니의 임종을 위해 귀국하고 나서 네가 얼마나 그곳에서 진한 고생을 했는지 들을 수 있었어.
하지만 엄마는 안쓰러움보다는 네가 자랑스럽더라.
네가 한 고생은 너를 위해 낸 너의 용기였으니까.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나은, 계산'
'나에게 유리한 것을 알아낸, 이성'
결국,
용기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가슴이 아니다.
머리에서 이쪽보다 저쪽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서면 용기는 저절로 솟는다.
스스로에게 이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본성인지라 용기 역시 정확하게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스스로에게 이롭다는 것이 머리에서 이성적으로 이해되면 누가 뭐래도 용기는 자연발생적으로 드러난다.
- 관계의 발작과 경련, p. 56. 김주원, 건율원.
그래서 엄마는 용기 있는 너에게 부끄럽지 않게 엄마도 용기 내 보려고.
엄마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게 뻔한데도 가보려고.
엄마 생각에 인식은 잔잔바리 동전 같은 거야.
언젠가는 쓰겠지, 하고 계속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동전.
결국 맨날 짤랑거리면서 거슬리게 하다가 '용기'라는 저금통으로 들어가야 고요해진다.
그렇게 인식은 의식 속에서 자기 자리를 잡아야 조용해지더라고.
딸아,
이제 낭독극은 끝났어.
우리는 모두 제 자리로 돌아왔지.
제 자리는 뭘까?
우리 각자가 자신이 이루어야 할 목표 앞에 다시 섰다는 말이야.
누구는 에세이 쓰기로,
누구는 그림 그리기로,
누구는 소설 쓰기로,
누구는 교재 집필로,
누구는 논문 집필로,
어떤 사람은 약속했던 정기적인 브런치 발행으로,
어떤 사람은 새로운 환경을 준비하는 일로,
어떤 사람은 이끄는 단체가 공통된 방향으로 결집하는 일로.
이렇게 우린 목표를 향한 루틴을 실행하기 위해 움직인단다.
너도 지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위치에서,
엄마도 어떤 일 하나를 매듭짓고 또 하나의 시작 앞에서,
용기를 붙잡고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