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가깝게

by 캐리소



"딸, 보내준 엄마 낭독극 영상 봤어?"

"응, 본 건 아니고 귀로만 들었어."

"왜?"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서 귀에다 대고 듣기만 했는데 엄마가 또 한다고는 안 했으면 좋겠어!"

"왜?"

"모르겠어. 엄마가 못한 건 아닌데 가서 보고 듣는 게 자신 없어."


네가 그랬지.

자기나 언니를 이렇게 숫기 없게 낳아놓은 건 엄마니까 어쩔 수 없다고!

오글거리는 건 볼 수가 없고 겸연쩍을 땐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다고!

세상 수줍고 소심한 너희들을 엄마는 잠시 짠하게 바라본다.


두 딸과 아들 하나.

엄마의 아이들인 너희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이렇게 순두부 같았어.

슴슴하고 밍밍하니 자극적인 리액션 하나 없이 내외하고 외면하지만 결국 엄마를 건강하게 하는 것.

일상에서 일희일비하는 일이 적으니 엄마의 심장이 튼튼한 것 같아.

엄마가 우릴 이렇게 낳아놨으니까 더 바라지 말라고 했지?

그래. 더 안바라.


이런 너희들인데도,

자신의 삶 앞에서는 현실을 당당하게 직시하고 숫기 있게 대처하는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걸까?

엄마는 그런 너희들의 내면에 단단한 기둥 하나를 본단다.

바로 숫되다!

'숫되다'와 '숫기 없다'는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 다른 의미라서 엄만 재밌더라고.

'숫기'는 활발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기운이지만 '숫되다'는 순진하고 어수룩하다는 말이어서 서로 상반되 보이기도 해.


순진하고 꾸밈이 없는 '숫된' 너희들의 본성이 내면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이 아닐까.

거짓이 없다는 건 불순물이 없다는 것이잖아.

비록 겉으로 보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지만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는 담대해지는 특성이 있다는 걸 엄마는 알아.

선량하고 순진하며 천진난만하다는 건 자연에 가까운 성질이잖아.

그런 면에서 자연은 내재된 힘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해.


아기는 어른보다 세상을 살아갈 힘은 약하지만 자연으로는 어른보다 더 많이 열려있고 숫된 존재야.

외식적이지 않고 그래서 꾸밀 필요가 없지.

언제나 숫된 것이 그렇지 못한 것을 가르치고 열어놓는단다.


그렇다고 활발한 것과 표현을 잘하는 것을 비난하려는 건 아니야.

그건 또 다른 면을 밝히고 있는 것이니까.

그저 너희들이 갖고 있는 성향을 자연으로 받아들여 스스로를 세우는 시야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 거야.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있는 각자의 자연적 성향도 인정하게 될 테니까.


에머슨 아저씨는

자연의 경내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등에 짊어진 배낭을 내려놓게 된다고 해.

우리에게 다정하고 꾸밈이 없으며 소박한 즐거움을 주고 모든 종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신성함이 있고, 영웅들을 불신하는 실체가 있다고 말하지.*


그 정도로 자연에 가까운 것은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본질을 생각하게 한단다.

자연을 사랑으로 볼 줄 아는 시야를 가진다면 자연이 사랑받는 이유도 알게 될 거야.

자연은 자신의 법칙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넘어서기도 하니까.

너도 너의 법칙을 지키면서 너를 뛰어넘는 일에 주저하지 마.

거짓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거짓의 수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자연은 판단을 하지 않지.

그냥 자신으로 살아.

자신에게 오는 것들을 거부하지 않아.

그건 의무니까.

네가 오글거리는 엄마의 영상을 귀로라도 들어본 것.

그게 엄마에 대한 인정이고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듣느라 애썼어.


하지만 자연은 또 우릴 어디에 세울지 모르니까 거스르지 말자.

엄마도 그럴게.






* 자기신뢰 철학, 랄프 왈도 에머슨.



목요일 연재
이전 06화인식과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