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어.
우린 일 년에 한 번씩 만나는 사이야.
만남의 텀이 길다고 해서 서로를 잊지는 않는단다.
그렇게 만나도 서로를 배려하며 신뢰 있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거든.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배울 점이 있어서 고마운 만남이야.
그런데 오늘 몇 년 동안 엄마가 들을 '잘했다'는 말을 한 트럭이나 들은 것 같아.
책을 썼대도 잘했다 하시고, 낭독극을 했대도 잘했다 하시고, 그림을 그려야 할 일이 생겼대도 잘했다 하셨어.
넌 '뭐야? 영혼은 있었음?' 하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네.
근데 엄마는 그분의 눈을 보고 알았지. 진심으로 잘했다고 여기는구나, 흡족해하시는구나, 하고 말이야.
글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입은 빨강을 얘기하고 있는데 온몸으로 파랑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잖아.
그분은 빨강을 말하고 빨강을 내밀고 있었어.
그 말은 지금까지의 단편적인 엄마 삶을 잠깐이라도 돌아보게 하는 말이었어.
그리고 엄마는 '그 말을 내 입으로 나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 하고 잠시 주춤했지.
왜 그런 거 있잖아.
열심히 칭찬받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을 왜 좀 더 일찍 하지 못했느냐는 책망을 받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소로우의 문장도 그런 엄마의 아이러니에 눈을 찡긋 해주더구나.
당신이 뒤의 것을 칭찬하면 앞의 것을 비난하게 될 것, 주)이라는 말로!
잘했다는 말은 이제야 엄마 자신으로 살기 시작했다는, 이제야 순종한다는, 고집을 내려놓고 좀 말랑해졌다는 인정으로 들렸어. 그러니 이제부터 더 나답게 살아도 좋다는 허락처럼 말이야.
그동안은 그냥 주어진 엄마의 노릇만 했다면 - 그것도 엄청 중요하니까 - 이젠 엄마가 마음에 품었던 것들을 해도 되겠구나. 신이 엄마에게 품게 했던 일을 이 핑계 저 핑계로 도망치지 않을 수 있구나, 하는 흐뭇함으로 들렸다면 엄마가 너무 비약한 것일까?
그러면서 그분이 말하길 엄마처럼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길을 찾아 하나씩 성장하는 모습에서 자신에게 울컥 버튼이 되었다며.
그러니까 너무 잘했다고, 연신 잘했다고 하셨어.
엄마가 쓸 에세이의 모토가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잖아.
그렇다면, 엄만 글대로 살고 있는 걸까? 글이 엄마를 끌고 가는 걸까? 순서가 뭐 중요하겠어? 그 안에 어떤 본질이 있느냐의 문제지.
딸아,
엄마는 왜 이 얘기를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을까, 엄마 자랑을 하고 싶었던 걸까?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아. 세상에는 엄마보다 비범한 사람들이 넘쳐나잖아. 그냥 엄마가 네게 조그마한 증거가 되었으면 하는 귀여운 바람이 아닐까 싶어.
아직 너 자신의 잠재력을 알아차리지 못한 네가 엄마를 보고 떠올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
어떤 과업 앞에서 자신의 못남보다 자신이 이뤄야 할 더 큰 과업을 바라보는 눈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야. 그렇다면 엄마도 너도 스스로에게 '잘했다!' 하고 당당히 말해줄 수 있겠지.
정신에 있어서나 육체에 있어서나 너는 너의 인생을 무언가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드는 데에 있어서 솔로몬이나 시저나 플라톤보다도 더욱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다. 주 2)
어떤 사람보다도 더 위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우리가 우리를 몰라봐서야 되겠니?
어쨌든 오늘 한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켰다면 오늘 하루의 역할은 잘한 것 같아.
주 1)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 2) 아카바의 선물, 오그만디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