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 앞에서

by 캐리소



딸아,

엄마가 요즘 낭독 연습에 매진하고 있어.

그래서 너희들에게 전화도 뜸했지?

갑자기 무슨 낭독극이냐고 물으면 엄마도 갑자기 받아 든 일이라 잘 몰라. 하나 확실한 건, 엄마도 너희들도 인지하지 못하는 시간에 고치를 뚫고 엄마 자신으로 탈피하고 있다는 거야.


사실 고치 속에 있을 땐 탈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어. 고치는 아늑했거든. 적당한 온기와 그냥저냥 늘어져도 괜찮은 시간들을 품고 있었지.


그런데 고치 안에 있는 엄마가 '이건 아닌데...'라고 느끼기 시작한 건 밖의 투명한 햇살이 고치를 뚫고 엄마에게 비쳤을 때란다.

햇살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말이지.

그걸 알아챘다는 건 엄마가 탈피해야 할 때여서 그랬던 것 같아.


독서가 엄마에겐 햇살이고 새벽에 나누는 토론이 엄마에겐 영양분이었나 봐.

거침없이 엄마를 밀어붙이는 일 안에서 써야 할 글인 엄마의 유산을 써냈고 이제 엄마 앞엔 낯선 일이 도착했구나!


그러고 보니 엄마는 참 많이 몰랐네.

엄마 자체가 커져야만 하는 존재라는 걸.

그래서 또 다른 살아있는 햇살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희미하게 느끼게 되었나 봐.


이제 대학로 낭독극 앞에 엄마는 와있단다.

또 어떤 새로운 탈피가 시작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완성형인 어떤 것이 있다는 믿음 앞에서 엄마는 두근두근 기대된단다.

그러면서도 기대 안 해!

일은 일이 가는 경로를 알고 있지만 엄마는 몰라.

그러니까 일을 따라가.


낭독극이라는 소소한 연결 하나가 우리에게 가져다 줄 거대한 결말이 뭔지 모르지만 그냥 해야 할 것을 하는 것만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다. 그 사실이 아주 담백하게 다가와.

많은 생각이 필요 없으니까.


변화는 극단의 상황에서 일어나.

이 극단의 상황 앞에 엄마는 어떤 의미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

혹시 너도 지금 그런 상황 앞에 서있다면 변화의 얼굴을 기대해 봐.

계산이 바로 서고 정확한 판단만 받쳐준다면 엄마가 원하는 것은 실체가 되고 현실이 되어 엄마 앞에 나타날 거야.

너도 그렇게 될 거야.


엄마도 엄마의 잠재력과 성장의 깊이를 잘 몰랐듯이 너도 아마 그럴지 모르겠다.

넌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

정확히 모른다면 단정하지 마.

단정하느라 너를 오해하지 않길 바라.

네가 갈 수 있는 만을 바라보고 미리 정하지 마.

그냥 열어 놔.

열고 걸어 봐.

이 길이 아닌가? 해도 돼.

해봤다는 경험이 남잖아.


매일 네 앞에 주어지는 미션을 해.

너를 열어두고 하루하루 도장을 깨.

그러면 흐르는 걸 느낄 거야.

부딪치고 넘어지고 꺾여도 계속 흐르는 물처럼 흐르는 너를.

그러면 너를 지켜낼 힘까지 생길 테니까.


딸아,

일상을 잘 만들어가는 너를 보면 엄마는 용기를 얻어. 또 하루를 잘 흘러갈 용기를.


탈피할 고치 앞에 끙끙대는 엄마를 잘 지켜봐.

멋지게 비상할 거니까.


https://www.geconomy.co.kr/news/article.html?no=313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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